우아한 페라리

페라리 포르토피노의 본질은 균형 잡힌 우아함이다.

엔진 3.9 V8 트윈 터보 | 최고 출력 600마력 | 최대 토크 77.5 kg.m | 변속기 7단 듀얼 클러치 | 총중량 1664kg | 최고 속도 320km/h | 제로백 3.5초 | 기본 가격 2억8800만원부터

“우아함은 거절에서 나온다.”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즐겨 했던 말이다. 다이애나 브릴랜드는 1960년대 <보그>의 편집장이었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그녀의 말을 종종 인용하곤 한다. 세속적 욕망이 넘실대는 속세에서 욕심을 버리고 거절이란 우아함을 지킨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다이애나 블리랜드의 말 속에 담긴 삶의 지혜가 더 명징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페라리 포르토피노의 운전석에 처음 앉았을 때도 다시 한번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말을 떠올렸다. 누구보다 우아하게 페라리를 몰아보고 싶었다. 3.9 V8 트윈 터보 엔진에서 600마력을 뿜어내는 최고 시속 320km의 페라리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건 더 운전 기량이 뛰어난 자동차 전문 기자의 몫이었다. 페라리 포르토피노의 본질은 따로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였다. 힘을 뺐다.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페라리이기에 원하면 얼마든지 앞장설 수 있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페라리답게 누구보다 강하지만 구태여 힘을 뽐내지 않는 최고수이고 싶었다. 시동을 걸자 페라리 특유의 중저음의 배기음이 유혹을 했다. 가속페달을 밟은 오른발에 힘이 들어가려는 게 느껴졌다. 거절했다. 대신 부드럽고 편안하게, 그리고 가볍고 균형 있게 페라리 포르토피노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한적한 휴양도시 바리 일대의 해안 도로를 달렸다.

페라리 포르토피노는 그럴 만한 페라리다. 70년 역사 동안 여러 페라리가 있었다. 모두가 혈관에 붉은 피가 흐르는 페라리였지만 어느 것 하나 똑같은 페라리가 없었다. 1962년형 250GTO는 양산형 레이싱카의 효시였다. 1984년형 붉은 머리 테스타로사는 스포츠카의 디자인 혁신을 이뤄냈다. 70주년 기념 모델인 라페라리 아페르타는 역대 최강의 페라리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다. 페라리는 매번 전혀 다른 개성의 페라리를 만들어내면서 페라리 팬들을 열광시켰다. 페라리 포르토피노도 마찬가지다.

페라리 포르토피노의 개성은 균형이다. 페라리 포르토피노는 퍼포먼스와 운전의 재미와 실용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슈퍼카라고 하면 흔히 퍼포먼스는 뛰어나지만 운전하긴 어렵고 일상의 실용성도 떨어지는 괴물 같은 자동차를 상상하기 쉽다. 과거의 페라리도 그런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유난히 낮은 차체 탓에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페라리 포르토피노는 다르다. 에브리데이 페라리다. 일상생활에서 타고 즐길 수 있는 매일 타는 페라리 말이다. 그걸 위해서 페라리 기술진은 성능과 운전성과 실용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조리 잡기로 작정했다. 그러자면 절묘한 균형 감각이 필요했다.

페라리 포르토피노의 개성은 균형이다. 페라리 포르토피노는 퍼포먼스와 운전의 재미와 실용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실제로 페라리 포르토피노를 몰아보면 페라리 기술진이 찾아낸 균형의 묘가 느껴진다. 흔히 차를 얼마나 쉽게 운전할 수 있느냐는 차의 퍼포먼스나 차의 응답성 같은 운전의 재미와는 반비례하기 쉽다. 차를 누구나 쉽게 운전할 수 있게 만들려면 그만큼 전자 장비의 개입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엔진 성능은 그만큼 다루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페라리 포르토피노는 서로 상충하는 성능들을 조화시켜서 황금 비율을 찾아냈다.

그러기 위해 맨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모든 것에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욕심을 버리는 일이었다. 페라리 창업주 엔초 페라리는 V10 이상의 대형 엔진을 선호했다. 아들이 만든 페라리가 V6 엔진을 달았다는 이유로 페라리라는 이름을 붙이기를 거부할 정도였다. 아들이 만든 페라리는 오랫동안 디노라고 불렸다. 페라리 포르토피노는 V8 트윈 터보 엔진을 달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느 페라리 못지않은 강력한 주행 성능을 보여준다.

페라리치곤 작은 엔진으로 페라리다운 퍼포먼스를 만들어내기 위해 페라리는 많은 걸 버렸다. 정말로 버렸다. 페라리 포르토피노의 전신은 페라리 캘리포니아T다. 포르토피노는 캘리포니아T보다 무게를 80kg이나 줄였다. 차체 전체 중량의 20%에 달한다. 차체의 뼈대와 엔진과 내·외장과 전자 장비에서 모조리 혹독한 다이어트를 했다. 이전엔 21개의 부품으로 조립했던 엔진 부분을 단 2개의 부품으로 완성했다. 알루미늄 합금을 섀시와 보디에 확대 적용하고 용접 부위마저 최소화했다.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렸다. 덕분에 페라리 포르토피노는 V8 엔진으로도 V12 엔진 못지않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게 됐다. 줄어든 무게만큼 반응성도 높일 수 있었다. 또 실내에 뒷좌석을 마련하고 거기에 5cm나 레그룸을 넓혀서 실용성을 높일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게 욕심을 부려서가 아니라 욕심을 버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아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누구보다 우아하게 페라리 포르토피노를 몰아보고 싶었던 건 그래서였다. 이렇게 그 어떤 페라리보다 우아한 선택을 통해 탄생한 페라리 포르토피노의 본질을 이끌어내보고 싶었다. 시승 코스의 길이는 130km 정도였다. 바리 일대의 해안 도로와 시골 마을과 산간 도로를 골고루 경험하게 짜여 있었다. 스티어링 휠에 달린 페라리 특유의 주행 모드 조정기인 마네티노 스위치를 컴포트 모드로 고정시켰다. ‘컴포트’라고 쓰고 ‘우아함’이라고 읽었다.

이탈리아 남부의 시골길은 솔직히 도로 관리가 엉망진창이었다. 아스팔트 곳곳이 패어 있었다. 꼬불꼬불한 길도 많았다. 마을로 들어서면 오가는 사람도 많고 마주치는 자동차도 많았다. 여느 페라리였다면 페라리의 기량을 만끽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구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페라리 포르토피노는 달랐다. 도로 조건이 불량한 구간에서든, 제법 위험한 추월을 시도하게 되는 와인딩 로드에서든, 저속 주행을 하게 되는 마을 정체 구간에서든, 그때그때 운전 환경에 딱 알맞은 균형을 찾아내서 변신을 했다.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변속기의 우아함이었다. 페라리에 변속기는 약점이었다. 특유의 수동 변속기는 조작도 어려웠지만 자칫 고장 날 수도 있었다. 페라리 포르토피노에 적용된 듀얼 클러치는 매우 적극적인 변속 성능을 보여줬다. 마을 구간에서의 1단이 마을을 빠져나와 교외 도로로 나가자마자 순식간에 7단까지 자동 변속됐다. 변속 충격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매우 우아한 변속이었다. 불량한 아스팔트 구간에서는 페라리 특유의 E-Diff3 시스템이 빛을 발했다. 노면 상태에 따라 서스펜션의 상태를 조절해서 어떤 상황에서든 최적의 승차감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페라리 포르토피노는 비단길이든 자갈길이든 어디에서나 우아했다.

꼬불꼬불한 와인딩 로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구태여 과속을 하진 않았다. 그래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추월을 해야만 하는 상황은 반드시 있었다. 그때 페라리는 후륜 구동 특유의 우아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미끄러지면 잡아주고 미끄러지면 잡아주면서 미끄러졌지만 미끄러지지 않는 정중동의 주행 성능을 만들어냈다. 이것이야말로 페라리만의 운전 재미였다. 사륜 구동은 안전하지만 지루하다. 전륜 구동은 편리하지만 상식적이다. 후륜 구동은 재미있지만 어렵다. 같은 후륜 구동이라도 전자제어가 너무 완벽하게 들어가면 사륜이나 전륜과 별다를 게 없다. 페라리는 달랐다. 미끄러지게 내버려두는 듯하지만 결국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전자제어로 안전한 재미를 선사했다.

예전부터 페라리가 악기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페라리를 사랑했다는 건 유명한 얘기다. 엔초 페라리와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같은 지역 출신이다. 페라리의 엔진 소리는 엔진 회전수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를 낸다. 3000rpm 이하에선 베이스에 비유되고, 4500rpm 전후에선 테너와 같고, 6500rpm 이상에선 소프라노처럼 들린다. 페라리는 실제로 베이스와 테너와 소프라노에 비유될 만한 엔진 배기음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악기처럼 차를 튜닝한다. 일부 페라리 애호가들은 이것도 모자라서 스스로 엔진음을 튜닝한다. 자신의 페라리를 파바로티로 만들고 싶어 한다.

실제로 페라리를 만드는 과정도 악기를 만드는 과정과 유사하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악기는 음악적으로도 최상의 소리를 낸다. 공학적으로 완벽한 자동차는 미학적으로 최상의 소리를 낸다. 페라리 포르토피노의 배기 라인에는 곡선이 없다. 차체 밑바닥을 타고 흐르는 배기 라인은 거의 굴곡이 없고 관의 지름도 크다. 잘 만들어진 관악기와 같단 말이다. 여기에 전자식 밸브 개폐 시스템을 도입했다. 덕분에 페라리는 시골 마을을 달릴 때는 주변에서도 듣기 좋은 중저음 베이스를 내고, 곡선 구간을 폭발적으로 돌파할 때는 주변 차들이 흠칫 경계하게 만드는 특유의 소프라노 소리를 낸다.

페라리 포르토피노는 하드톱 컨버터블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컨버터블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바깥 공간과 내부 공간이 깔끔하게 차단되는 프라이버시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붕을 열었을 때 운전석까지 밀려들어오는 바람의 와류가 피곤하기 때문이다. 지붕을 연 채 한참을 달리다 보면 머리는 산발이 되기 일쑤다. 바람 소리 때문에 옆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어렵다. 들려오는 엔진 소리도 시끄럽기 일쑤다. 페라리 포르토피노의 하드톱은 시속 40km 이하에서 불과 14초 만에 여닫힌다. 14초 만에 운전 환경을 180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일단 오픈했을 때 외부 바람도 매우 효과적으로 제어해준다. 에어로다이내믹을 고려한 디자인 덕분이다. 차체 밑바닥을 흐르는 풍향의 흐름까지도 제어해서 소음을 잡고 퍼포먼스를 높인다. 무엇보다 바로 이때야말로 완벽하게 튜닝된 악기 같은 페라리 특유의 엔진음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구태여 외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음악을 크게 틀 필요가 없다. 엔진음 자체가 음악이기 때문이다.

페라리 포르토피노는 밸런스가 잘 잡힌 이탈리아 와인 같은 페라리다. 도대체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편안하면서 자극적이고 관능적이면서 우아하다. 이쯤 되면 자동차라기보다 예술 작품으로 불려도 될 만하다. 이탈리아 바리에서 만난 페라리 포르토피노는 이제까지 페라리가 갈고 닦은 관록의 균형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무엇보다 페라리의 이런 예술적 성취는 치밀한 공학적 계산을 통해 가능했다. 페라리는 단순한 슈퍼카 메이커가 아니라 기술로 예술을 만드는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페라리 포르토피노 덕분에 이제 페라리는 궁극의 슈퍼카일 뿐만 아니라 에브리데이 스포츠카라는 또 하나의 개성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덕분에 페라리 포르토피노가 국내에 출시되는 올해 6월 이후에는 서울의 도로에서 더 많은 페라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탈리아 바리에서 세상 우아한 페라리를 탔다.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