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품위

정려원이 말했다.

“<마녀의 법정>이라는 드라마가 성범죄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는데요. 사실 감기처럼···.” 2017년 12월 31일, KBS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받은 정려원은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잠깐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이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 있지만 가해자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용기는 어디서나 으스대는 것이 아니라 덜덜 떨면서도 조금씩 전진하는 것이다. 이날의 정려원처럼. 잘 준비했고 열심히 연습했을 텐데도 그녀는 몇 번씩 말을 잇지 못했다. “저희는 이 드라마를 통해서 성범죄 (잠시 침묵) 성폭력에 대한 (침묵) 법이 더 강화돼서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고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더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침묵) 범죄 피해자분들 중에서 성폭력 피해자분들이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침묵)하기 때문인데요. 저희 드라마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이성애자 남자이자 유명인이 아닌 나는 정려원의 침묵에 고인 감정을 여자만큼 생생하게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의 말과 침묵에는 차이를 넘어서 타인에게 닿고야 마는 힘이 있었다. 그녀는 고마운 사람의 이름을 재빨리 말하고 깃털처럼 자리를 떠났다. 아직 세상은 품위 있는 용기를 칭송한다. 정려원의 수상 소감은 웬만한 대상 수상자보다 더 높은 관심을 끌었다.

사람의 눈이 쏠리는 시상식의 수상 소감 자리는 극적으로 멋진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기회다. 정려원의 말은 여러 면에서 모범 답안이었다. 생중계 연설의 활용법에 대해, 한 명의 예술가가 대중의 관심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 아울러 스스로의 한계와 가능성을 아는 한 명의 여성이 세상에 하는 말이기도 했다. 곳곳에 쓰여 있는 못된 말을 보며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세상은 조금씩 나아진다고 믿는 편이 좋겠다. 정려원의 수상 소감 마지막 말처럼, “약한 데에서 가장 강한 것을 끌어내는” 경우도 있으니까. 수많은 여자들이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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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일러스트 한 도훈
출처
29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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