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공원 이야기

1996년부터 2017년까지, 김영삼부터 문재인까지, 20세기부터 21세기까지, 청와대 앞에 있는 통의동 마을마당에 얽힌 이야기.

청와대, 통의동 마을마당 - 에스콰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대통령 리무진에 올라 청와대에 들어가고 있었다. 청와대에 차로 들어가려면 광화문과 경복궁역 사이에 있는 효자로를 지나야 한다. 청와대에 들어가는 차량 기준으로 오른쪽은 경복궁 담, 왼쪽은 서촌이라고 부르는 낮은 주택가다. 문재인 대통령이 특유의 미남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 때 몇 사람이 효자로 길가에서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뒤에 붙어 있는 현수막에는 글귀가 선명했다.

청와대가 이 공원을 민간에게 넘겼습니다. 우리 모두의 공원을 지켜주세요.

이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는 잠깐 1996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1996년은 IMF 외환 위기가 발생하기 1년 전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하고 H. O. T.가 데뷔한 해다. 지하철 5호선이 개통해 여의도가 지하철 생활권에 들어온 해이며, 이렇게 하위권에만 있을 거면서 왜 가입했나 싶은 OECD에 가입한 해다. 한국 최초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가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해다. 호황의 분위기가 가득하던 해, 한국이 이미 선진국이 된 듯한 우쭐함과 반성이 사회 곳곳에 자리 잡기 시작한 해다.

1996년 9월 서울시는 ‘소규모 시유지 자투리땅 10곳 1531평에 녹지와 시민 휴식 공간을 갖춘 마을마당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이 사업의 출사표 격인 <마을마당 조성 기본 및 실시설계>가 남아 있다. 책에는 ‘시설 위주의 계획에서 서비스 위주의 계획으로, 대형 위주의 계획에서 오픈 스페이스 체계의 조성으로, 공급자 위주에서 이용자 위주의 계획으로’ 공원 녹지 계획에 접근한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다. 1990년대 특유의 진취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 결과 서울시는 시가 가진 자투리땅 10곳을 ‘마을 정원’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오늘의 주인공 통의동 마을마당은 이렇게 태어났다.

공원이 되기 전 이 땅은 그냥 집터였다. 서울시는 1986년 모 광업 회사가 가지고 있던 땅을 사서 10년이 지난 1996년, 시대의 너그러운 분위기에 따라 이 땅을 공원화한 것이었다. 마을마당이라는 이름처럼 공원은 소박했다. 나무 몇 그루와 원두막 모양의 정자가 전부였다. 오히려 그 소박함이 이 공원의 멋이었다. 턱시도를 입고 음식 쓰레기를 버리러 가지 않는 것처럼 동네 공원은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사람과 시간과 나무가 통의동 마을마당을 채웠다. 21년 전이니까 그때의 아기 나무가 이제 큰 나무가 되었다. 입구의 나무가 많이 자라서 한여름엔 공원 안쪽을 가릴 정도다. 통로에는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느티나무는 천연기념물에 많이 등재된 나무이기도 하다. 수직으로 곧게 크고 옆으로 쭉 뻗어서 그늘이 넓고 보기에 멋지다. 통의동의 느티나무도 청년의 나이가 되어 안정적으로 크고 있었다. 그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가만히 앉아 있기도, 그냥 쉬어 가기도, 이른바 ‘서촌 투어’ 같은 걸 할 때 출발점으로 삼기도 했다. 노숙자가 오기도, 누군가는 오며 가며 쓰레기를 버리기도, 가끔은 신진대사의 결과물인 대소변을 보기도, 그걸 또 누군가는 치우기도 했다. 그 시간과 손길이 쌓여서 통의동 마을마당은 자연스럽게 동네의 일부가 되어갔다. 2010년까지는.

청와대, 통의동 마을마당 - 에스콰이어

공원의 벤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앉았다 간다.

2010년까지는.통의동 마을마당은 누구나 탐낼 만한 땅이다. 위치가 좋다. 바로 영추문 맞은편이다. 서촌이 뜨기 전부터 경복궁의 좌우 날개인 서촌과 삼청동은 살기 좋은 곳이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았다. 청와대 근방이라 고도 제한이 걸려 있고 매장 문화재도 많아서 호젓한 분위기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노려볼 만했다.

부동산이나 삶의 조건으로만 좋은 땅이 아니었다. 2010년 경찰이 이 땅을 노렸다. 종로경찰서가 청와대를 경비하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찾다가 통의동 마을마당 일부를 경찰 대기 시설로 쓰려 했다. 동네 사람들이 반발했다. 2010년이면 공원이 생긴 지 벌써 15년이 지난 후다. 나무도 사람들의 기억도 그만큼 쌓여 있었다. 공원을 비롯한 도시 녹지가 확충되는 게 시대적 흐름이기도 했다. 도시 녹지를 확충한다면서 통의동의 좁은 땅을 경찰이 쓴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이때만 해도 관청이 주민의 말을 들어주었다. “주변 주민들의 여론을 수렴해보니 해당 경찰관들의 중복 방문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심려를 끼쳐드려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우리 경찰에서는 주민들의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여 현재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효자공원(통의동 마을마당)을 용도 변경할 계획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건축가 황두진이 보여준 경찰 측의 답변이다. 통의동 마을마당은 이렇게 한 번 위기를 넘겼다.

황두진이 누구냐고?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가다. 통의동 마을마당에 대한 일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알리기도 하고, 통의동 마을마당 바로 옆에 있는 자택 겸 사무실 목련원에 사는 사람이기도 하다. 주민 겸 건축가 겸 활동가 역할을 하는 그가 이 이야기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그는 2010년에 종로경찰서가 공원 부지를 쓰려고 한 일을 ‘1차 공원 대란’이라고 불렀다.

청와대, 통의동 마을마당 - 에스콰이어

건축가 황두진. 자기 방식으로 공원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술자리든 전쟁이든 1차가 있으면 2차가 있다. 2차 공원 대란은 2016년 11월에 일어났다. 황두진은 민원을 보냈다.

“통의동 7-3 소재 통의동 마을마당(효자공원)이 민간에게 매각되었다는 설이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돌고 있습니다. (중략) 2011년 4월에도 공원을 없애고 경찰 관련 시설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국민신문고를 통해 경찰청으로부터, ‘검토를 한 것은 사실이나 계획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받은 바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국민신문고를 통해 경찰청에 문의하였으나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고, 종로구청 등의 공원녹지과에 재차 문의하였으나 토지 소유자인 청와대에 직접 문의하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위 내용에 대해 답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6년의 상대는 그게 누구인지 몰라도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대통령 비서실 소관 업무인데, 이재만 비서관 공석, 경호실은 무응답으로 답변 불가능’이 황두진이 받은 대답이었다.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민원을 보냈지만 관료들은 액티브 X처럼 요지부동이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도시관리국 공원녹지과는 이런 답을 보냈다.

“2010년 6월에 토지 소유권이 서울시에서 대통령경호실로 이전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건물 건립설, 민간 매각설 등에 대하여 토지 소유 기관인 대통령경호실에 문의하였으나 내부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을 들었음을 알려드리오니 양지하여 주시기 바라며 좀 더 자세한 사항은 토지 소유 기관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국민신문고의 답변 기관에서 청와대는 빠져 있었다.

집 앞의 작고 소박한 공원이 없어지려 한다. 아주 크고 거대하고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무서울 듯한 상대가 뒤에 있는 것 같다. 당신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까? 공원이 그냥 넘어가는 걸 지켜볼까? 언론사나 시민 단체에 민원을 넣어 쟁점화시킬까?

황두진은 지극히 자기다운 방식을 택했다. 그는 건축가다.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는 게 업무의 일부다. 그는 등기부등본을 떼어 통의동 마을마당 부지의 소유권 이전 여부를 확인했다. 과정은 조금 복잡했다. 청와대가 어딘가에 땅을 가지려 했다. 아마 안가를 늘리려는 목적이었던 걸로 추정된다. 청와대는 땅 주인과 거래하기 위해 통의동 마을마당 부지를 안가 예정 부지와 교환하려, 즉 ‘대토’하려 했다. 황두진은 이 과정을 확인하며 무력감과 ‘스위치가 켜지는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고 했다. “한번 해보자 싶었죠. 이게 어떻게 되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한번 해보겠다고.”

청와대, 통의동 마을마당 - 에스콰이어

통의동 마을마당 소나무에 달아둔 서명촉구 전단.

청와대, 통의동 마을마당 - 에스콰이어

통의동 마을마당의 무인 서명대. 한 번도 손상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만의 운동을 시작했다. 기존의 시민 단체나 시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와는 거리를 두었다. 마을마당 앞에 서명대를 만들었다. 아는 기자들에게 사연을 알렸다. 어차피 기자는 요리사가 진귀한 식재료에 끌리듯 그럴싸해 보이는 이야깃거리에 이끌리는 사람들이다. 거기 더해 그는 2400명 이상의 페이스북 친구를 거느린 파워 SNS 사용자다. 황두진은 작년 12월부터 꾸준히 통의동 마을마당에 대한 페이스북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황두진은 운동권 세대지만 적극적으로 학생운동을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시민 단체나 기존의 연대가 하는 방식은 황두진과 맞지 않았다. 과정이 뭐가 됐든 우르르 여론을 만들어서 어쨌든 원하는 걸 이룬다는 방법은 황두진의 정서와 맞지 않았다. 그는 2월 1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이제 뭘 더 해야 하지…”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이런 답이 달렸다. 공원을 구하는 일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공원을 사들인 사람의 배후를 파서 음모론으로 이슈를 만드는 건 어떻겠느냐고. 본질은 흐리지만 관심을 끌기엔 좋지 않겠느냐고. 황두진은 거기에 아주 인상적인 답을 달았다. “저희는 NGO도 아니고, 조직화된 시민 단체도 아니고, 심층 취재하는 언론도 아니고, 그냥 안타까워서 발 동동 구르는 33명의 오합지졸일 뿐입니다….”

황두진은 이런 방식이 멋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을 기다리는 날에도 당근색 바지를 입고 있던 멋쟁이다. 하지만 멋은 중요하다. 결과로의 멋뿐 아니라 멋을 추구하는 과정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 거듭 말하지만 황두진은 건축가다. 맨땅을 파고 구조를 올린 후 건물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관여한다. 내적 구조의 아름다움과 외적 결과물의 아름다움에 모두 민감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결과적으로도 과정적으로도 꽤 우아하게 이 운동을 계속했다.

황두진은 스스로의 싸움을 탄광의 카나리아에 비유했다. 정권이 청와대 주민들에게 어떻게 하는지가 국정 운영의 자세를 상징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일리가 있었다. 2016년의 상대방은 정체가 묘연했고, 대답을 하지 않거나, 대답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거나, 대답을 거부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던 때 불통이라는 말이 많이 돌았다. 그 정부는 문민정부를 내세우며 청와대 앞 빈터를 공원으로 만들어준 20년 전 정부와는 좀 달랐다. 자기 이익은 챙기되 불필요한 마찰은 만들지 않는 7년 전의 정부와도 달랐다.

청와대, 통의동 마을마당 - 에스콰이어

그러는 동안 청와대가 들썩였다. ‘운명의 소용돌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기묘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일을 거쳐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부의 지지율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 촛불 시위가 계속됐다. 통의동 마을마당 앞으로도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이 오갔다. 삽시간에 작은 마을 공원이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황두진도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의 운동을 계속했다. 그는 이성을 잃지도 않았고 목소리를 크게 높이지도 않았다. 공원을 치우고 사람들의 서명을 모으고 꾸준히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황두진은 담담하게 자신의 두려움을 말했다. “나와 맞선 것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뭔가 중후장대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의 두려움이 있죠. 친구들은 ‘지금 네가 아무렇지 않아 보일지는 몰라도 내상이 있을 수 있다’고 했어요.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그래서 내가 버티려면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공원은 그에게 고통보다 더 큰 위로를 주었다. 공원을 둘러싼 사람들의 시민 의식 자체가 큰 위로였다.

하지만 공원은 그에게 고통보다 더 큰 위로를 주었다. 공원을 둘러싼 사람들의 시민 의식 자체가 큰 위로였다. “여기 방명록은 무인 방명록이에요. 저도 생업이 있으니 계속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몇 달 동안 서명대를 운영하면서 종이 한 장도 찢어지지 않았어요. 한 번도요. 서명대가 놓인 테이블도 한 번도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비가 오는 줄 모르고 밤새 방명록을 밖에 둔 적이 있어요. 다음 날 아침에 ‘아이고 젖었겠다’ 하면서 가봤더니 누가 비닐 한 장을 끼워뒀더라고요. 그런 성숙한 시민 의식이랄까, 그런 것이 모여 큰 힘이 되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국정은 황교안 국무총리 대행으로 넘어갔다. 통의동 마을마당을 둘러싼 일도 잠깐은 조용하게 지나갔다. 사람들은 여전히 하던 대로 공원을 이용했다. “청와대가 이 공원을 민간에 넘겼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만 조금씩 바래고 있었다. 2017년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다. 대통령이 바뀌고 딱 일주일이 지난 5월 16일 저녁에 <한겨레> 홈페이지에 기사가 올라왔다. “전 정부가 판 ‘통의마당’ 서울시가 사기로.” 통의동 마을마당의 운명은 한 번 더 시민 쪽으로 가는 듯 보인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서울시 이원목 재정기획관은 “교부금 제도를 활용해 종로구가 매입할 수 있고, 도시계획 구역으로 지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2차 공원 대란이 해피 엔딩에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청와대, 통의동 마을마당 - 에스콰이어

마을마당은 20여년의 시간 끝에 울창한 나무 입구를 갖게 됐다. 자연스러워서 더 소중한 일상의 일부가 됐다.

황두진은 더 큰 미래와 더 근본적인 대책을 본다. 그는 이제 시민과 공원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이 땅을 사는 거예요. 아주 적은 액수여도 좋아요. 그러면 누구나 이 공원에 대한 책임 의식과 주인 의식이 생길 거예요. 간이 의자를 10개쯤 놓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배치해서 앉도록 해도 좋을 겁니다.” 이런 식의 생각이 더 모이고 쌓일 때 마을과 공원이 조금씩 더 우아해지지 않을까.

“통마(통인동 마을마당)는 밤이 되어 어둠이 깔리고 적막합니다. 낮에 꽤 붐볐는데 생각보다 쓰레기도 거의 안 보이네요. 아까 오전 중에 서명록 한 ‘송이’를 하나 더 따왔는데 그사이에 서명이 또 늘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등기부등본상 소유자가 서울시로 바뀌는 것까지 봐야 이번 일이 일단락되는 것이겠지요.

당장 오늘 드는 생각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축하하고 기뻐해줄 일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서촌에 오시면 마음 놓고 몇 시간이건 무료로 머물 수 있는, 작지만 쾌적한 공공 공간이 계속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황두진이 <한겨레> 기사가 나온 날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그의 말처럼 작지만 쾌적한 공공 공간이 남은 게 중요하다.

황두진이 공원을 지켰을까, 시민들이 공원을 지킨 걸까? 어쩌면 공원 자체가 사람들을 끌어모아 자신의 생명을 이어간 건지도 모른다. 사람은 건축으로 공간을 만들지만 사람이 만든 공간 역시 사람을 키운다. 사람이 만든 공간은 사람의 쓰임과 사람의 기억을 원료 삼아 서서히 나무처럼 자라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공원은 남았고 이제는 초여름이다. 공원 느티나무의 그늘이 점차 짙어질 때다. 서촌에 들르는 분이라면 한 번씩 가보는 것도 좋겠다. 새로워진 청와대 구경도 해볼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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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표 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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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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