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석은 왜 여의도의 돈키호테가 됐나

안민석은 여전히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안민석은 왜 여의도의 돈키호테가 됐나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1월호

안민석마저도 두려웠다.

지난 11월 29일 밤이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여옥 대위를 찾아서 텍사스 샌안토니오 브룩스 아미 메디컬 센터를 방문했다.

조 대위는 2016년 8월부터 미 육군 의무학교에서 6개월짜리 연수를 받고 있었다. 적어도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에는 미국에 머물 예정이었다.

조여옥 대위는 국군간호사관학교 51기다.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 16일 당시 청와대에 파견 근무 중이던 간호 장교 2명 중 한 사람이다. 이른바 세월호 7시간의 비밀을 풀 열쇠를 가진 결정적인 인물이다.

안민석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 동안 적어도 한 차례 이상 주사를 맞고 잠이 들어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있다. 상식적으론 납득이 잘 안 되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에 어쩌면 사이비 종교보다 더 강력한 약물 의존이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조여옥 대위는 주사를 잘 놓았다. 명석한 데다 여성이라 VIP가 가까이했던 걸로 알려졌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시로 각종 주사를 맞았다면 주사를 놓은 장본인은 대통령 주치의였던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나 이병석 연대 세브란스 병원장이 아니었을 수 있다.

안 의원은 조여옥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조여옥이 입을 연다면 4월 16일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약물 의혹까지도 한꺼번에 밝혀낼 수 있다.

최순실 게이트엔 지금 ‘왜’가 빠져 있다.

국정 농단의 정황은 일부 드러났다. 국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 최고 권력이 연루된 만큼 범죄 사실이 너무 광범위해서 파도 파도 끝이 없을 뿐이다. 정작 도대체 왜 박근혜가 유독 최순실과의 관계에선 그토록 무기력하고 의존적이었는지는 납득하기 어렵다. 안민석이 조여옥한테서 확인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안민석 의원은 하루 전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 대표한테만 슬쩍 귀띔한 뒤 그 길로 공항으로 달려갔다.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청문회가 본격화되기 전에 조여옥 대위를 만나야 한다는 일념에서였다.

한 발 늦고 말았다. 조 대위는 부대 밖 숙소를 황급히 떠난 뒤였다. 미군 부대 내의 영내 호텔로 몸을 숨겨버렸다.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이었다. 한국에서 파견된 무관이 조여옥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감시하고 있었다.

안민석 의원은 일단 숙소에서 잠을 청했다. 안 의원은 말한다.

“그날 혼자 잠을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옆방에서 자고 있는 지인한테 가서 같이 자자고 그랬어요. 정권 입장에서 보면 제가 얼마나 밉겠어요. 죽이고 싶겠죠. 말 그대로. 여긴 외국이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사건 사고로 가장해서 얼마든지 위해를 가할 수 있지 않겠어요?”

괜한 얘기가 아니었다.

대통령과 약물 주사의 연관성은 단 한 자락이라도 의혹이 사실로 입증될 경우 정권의 정당성을 송두리째 붕괴시킬 수 있는 핵폭탄이었다.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이 단 한순간이라도 약물 주사에 취해 있었다면 나머지 박근혜 대통령 임기 동안 결정되고 시행된 모든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용이 산산조각 날 수 있다. 국가의 붕괴다.

조여옥이 그 열쇠를 쥐고 있었다. 안민석이 턱밑까지 추적해 들어온 셈이었다.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 지난 3년 가까이 일개 국회의원 신분으로 무모하게 청와대 권력과 맞짱 떠온 안민석마저도 그때만큼은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지난 12월 9일 금요일 오전 11시에 국회의원회관 620호 의원실에서 안민석 의원을 만났다.

오후 3시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표결을 불과 4시간 남짓 남겨둔 시각이었다. 그날 국회 분위기는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여의도 국회 정문 앞은 탄핵안 가결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집회 탓에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찬성표 236표.”

마주 앉자마자 안민석 의원이 단언했다.

격앙된 국회 밖과 긴장된 국회 본관과 달리 국회의원들의 사무실이 모여 있는 국회의원회관은 지독하리만치 차분했다. 안민석 의원도 결과는 나왔고 표결만 앞두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찬성 236표로 통과될 겁니다. 야권표 172표에 새누리당 과반 64표까지 더해서 236표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날 안 의원의 예측은 거의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12월 9일 오후 3시에 진행된 18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20대 국회의 탄핵 표결은 찬성 234표로 찬성으로 결정됐다. 무효 7표 중 2표도 찬성을 뜻하는 ‘가’ 표기였지만 표기를 잘못한 걸 감안하면 예측이 완벽하게 적중한 셈이다.

안 의원은 결과를 예측한 게 아니었다.

의회 물밑 정치를 통해 표를 헤아려봤고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다만 막판 변수나 변심을 우려해 말을 아꼈을 뿐이다.

안민석이야말로 12월 9일 오늘이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안민석의 얼굴에서 지난 시간이 스쳐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안민석은 왜 여의도의 돈키호테가 됐나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1월호

© 권영탕

안민석 의원이 최순실 게이트의 악취를 처음 맡은 건 2013년 7월 23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전 10시 국무회의에서 ‘체육계 비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발언을 한 날이었다.

안 의원은 중학교 때까지 운동을 했다. 그리고 체육교육과를 나왔다. 체육인이면서 교육인이다. 내리 4선을 하는 동안 내리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만 활동했다.

교육 체육 전문가 안민석이 듣기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뜬금포였다. 박 대통령은 의원 시절에도 체육과 교육과는 무관했기 때문이다. 국방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했다.

“승마계 문제는 체육계를 잘 모르는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어젠다로 삼기엔 너무 뜬금없고 상관없는 일이었단 말입니다.”

2013년 7월 23일 대통령 국무회의에서의 발언은 최순실의 작품이었다. 최순실은 당일 아침 대통령의 국무회의 말씀 자료를 미리 받아서 감수까지 했다. 당시엔 안 의원도 몰랐다.

“이듬해 초에 박창일 신부님을 만나서 뒷얘기를 처음 접하게 됐어요.”

박창일 신부는 북한 어린이 돕기에 앞장서고 있는 종교인이다. NGO 단체 평화3000의 운영위원장이다. 평화3000은 북한에 두유 공장과 두부 공장을 짓고 평양시체육단 축구장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한 단체다. 안민석 의원 사무실엔 2007년 11월 9일 평양시체육단 축구장 기증식 당시 평양에서 박창일 신부와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 걸려 있다.

박창일 신부는 어느 모임에서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주워들었다. 최순실이란 이름은 처음 듣지만 최태민의 딸이라는 얘기에 귀가 쫑긋해졌다. 최순실의 딸이 승마를 하는데 최순실의 등쌀에 승마계가 벌집 쑤셔놓은 듯하다는 내용이었다.

안민석은 말한다.

“박창일 신부가 그러셨어요. 그 얘기를 처음엔 흘려들었는데 밤에 자려고 누웠더니 예삿일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얘기해준다고. 좀 알아보라고.”

안 의원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지그시 눈을 감으면서 말했다.

“그것이 시작이었죠.”

그때부터 두 달 동안 퍼즐을 짜 맞췄다.

2013년 4월 상주에서 한국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가 열렸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름이 정유연이었다. 마장마술 경기에 출전한 정유연은 2위를 한다.

이게 사달이 났다. 갑자기 상주경찰서가 승마 심판들을 불러 조사를 했다. 경찰이 승마 대회 심판을 조사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승마 심판과 상주 경찰 한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였다. 승마 심판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상주 경찰이 이렇게 대답했다.

“위에서 내려온 수사야. 저쪽 위 말이야, 청와대.”

청와대에서 경찰에 조사를 지시한 당사자는 문고리 3인방 중 하나인 안봉근 비서관이었다.

안민석은 이걸 포착해냈다. 최순실과 청와대가 처음으로 짜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안 의원은 이런 퍼즐 조각을 모아서 짜 맞춘 끝에 박근혜-최순실의 체육계 비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안민석이 생각한 그림은 정유연 대학 보내기였다.

시나리오는 이랬다.

정유연이 고2 때인 2013년엔 전국승마대회를 비롯한 국내 승마 대회를 내리 휩쓴다. 고3 때인 2014년에는 국내 대회 성적을 발판으로 국가 대표로 발탁된다. 2014년 9월 열리는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다. 2015학년도 대입에서 체육 특기생으로 입학한다.

2014년 4월 8일 안민석 의원은 마침내 최순실 게이트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였다. 연단에 선 안민석 의원은 작정한 듯 의혹 제기를 시작했다. 2014년 11월 28일 이른바 <세계일보> 사건으로 정윤회의 이름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기도 전이었다.

안민석은 맨 먼저 정윤회와 최순실의 이름을 거론했다.

“정윤회와 최순실 부부의 딸이 국가 대표로 선발돼 특혜를 누린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이 선수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굳이 실명을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정 아무개 선수는 대통령 최측근이라고 불리는 정윤회 씨의 딸입니다. 어머니는 최태민 목사의 다섯째 딸 최순실 씨입니다. 승마협회가 쑥대밭이 되었다는 게 승마인들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정윤회 씨 딸이 국가 대표가 되는 과정, 협회장 사퇴 압력 배경과 실체, 마사회의 마방, 공주 승마 특혜 배경과 실태, 이런 것들을 조사하는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적 채널에 의해 국정 통치가 된 중대한 사건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권력 실세에 의한 특혜 아니겠습니까?”

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시계는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국회의 탄핵 표결까지는 이제 3시간 정도 남아 있는 상태였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지난 3년 동안의 노력이 앞으로 3시간에 달려 있었다.

안민석이 말했다.

“2014년 대정부 질의를 하기 전에 먼저 제 주위를 돌아봤어요. 이건 권력의 역린을 건드리는 거잖아요. 저는 아직도 정유라가 왜 그렇게 박근혜 대통령한테 중요한 존재인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정유라를 건드리면 반드시 보복이 돌아오리란 건 알고 있었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복이 돌아올 텐데 나는 걸릴 만한 게 없을까. 나는 떳떳할까. 분명히 저들이 내 계좌를 털 텐데. 내 주위 사람들의 계좌를 털 텐데. 나는 걸릴 게 없을까. 제 주위를 돌아봤어요.”

잠시 머뭇거렸다.

“고백하자면 혹시라도 찝찝하게 느껴지는 게 한두 가지 있었어요. 그것도 다 정리했죠. 신변 정리를 이미 2014년 4월 대정부 질의 전에 마쳤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모르는 하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돈 문제를 포함해서. 저들이 제 신상 털기를 했을 때 걸릴 게 없어야 되지 않겠어요? 각오하고 당당하게 대응했어요.”

2016년 12월 6일 화요일에 열린 국조특위 1차 청문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한테 질문하던 안민석 의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안민석 의원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말했다.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장충기가 이재용 부회장한테 이러저러해서 정유라한테 말 사주고 돈 줬습니다. 기업을 위해서 필요한 겁니다. 이런 보고를 안 했습니까? 자꾸 머리 굴리지 마세요. 300억원이 껌값입니까? 300억원이라는 부정한 돈이 건너가는데 장충기라는 자가 부회장한테 보고를 안 했다? 그러면 책임을 물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그냥 둡니까?”

이재용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안민석은 이재용한테 일침을 가했다.

“적어도 세계 굴지의 기업인 삼성이라면, 그 기업의 후계자라면, 진정 사죄하는 모습을 통해 앞으로 삼성이 잘하겠구나 하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실상 안민석은 대한민국의 양대 권력인 청와대 권력, 삼성 권력과 정면 대결을 선택한 셈이었다.

이번 국조특위의 새누리당 간사인 이완영 의원은 청문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삼성전자가 구미에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다가 베트남으로 이전했지요. 베트남에 투자한 금액의 3분의 1만 구미나 한국으로 오면 좋겠습니다.”

이완영 의원은 삼성의 최순실 로비 과정에서 금전 출납 창구 역할을 한 장충기 사장의 증인 채택을 끝까지 막아선 장본인이다. 국회 안에 삼성 장학생이 있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안민석 의원의 지역구 오산이 속한 경기 남부 지역은 삼성그룹의 경제적 영향력이 막강한 곳이다. 안민석 의원도 그걸 모르는 바보는 아니다. 알면서도 달려드는 바보일 뿐이다.

“청문회를 보고 친구가 그러더군요. 너, 큰 정치 해야 될 텐데 삼성과 적이 돼서 되겠느냐고. 삼성이 너를 가만두겠느냐고. 특히 이재용한테 그렇게 독하게 몰아치면 앞으로 삼성이 앞길을 방해할 텐데 청문회에서 뭐하러 그렇게 심하게 얘기했느냐고.”

이 대목에서 갑자기 안민석의 목이 메였다.

“이렇게 대답했어요. 나는 박근혜를 감옥에 보내고 정치를 그만할 거라고. 그런 각오로 하는 거라고. 나의 정치 인생을 걸고 이걸 하고 있기 때문에 내 다음 정치적 진로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그런 생각 한다면 이 일 자체를 할 수 없어요. 좌고우면하고 겁나면 이걸 못 합니다.”

문득 안민석 의원실의 책장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꽂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돈키호테>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그 꿈을 이룰 수 없어도, 싸움을 이길 수 없어도, 슬픔을 견딜 수 없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걸으리라.”

안민석은 여의도의 돈키호테였다.


돈키호테처럼 이길 수 없는 권력의 풍차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하자 안민석한테도 동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데뽀 돈키호테한텐 길잡이 산초가 필요하다. 그중 한 사람이 <시사IN>의 주진우 기자였다. 주진우 기자는 누구보다 오랜 기간 최순실과 최태민의 뒤를 캐온 탐사 보도 기자다.

저널리스트로서 주진우의 최대 장점 중 하나가 스케일이다. 여느 기자들이 입증 가능한 작은 팩트 취재에 집착할 때 주진우는 통 크게 스케일을 그려놓고 온갖 조각을 짜 맞춰나간다.

작은 도둑은 잡혀도 큰 도둑은 안 잡힌다는 말이 있다. 부패한 권력은 큰 도둑질을 해서 아무도 건드릴 엄두를 못 내게 만든다.

검찰도 경찰도 기자도 월급쟁이다. 작은 혐의와 사실 입증에 집착하기 쉽다. 그래야 주어진 시간 안에 결과를 낼 수 있고 승진도 하기 때문이다.

주진우는 아랑곳없이 큰 도둑을 잡기 위한 큰 그물을 짠다. 논란거리가 됐던 이명박 대통령과 BBK 관련 보도가 대표적이다. 지금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은닉한 비자금이 있다는 심증을 갖고 이른바 저수지 프로젝트를 취재하고 있다.

언제 결과가 나올진 모른다. 결과를 못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진우의 빅 스케일 취재는 취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도둑들한텐 위협적이다.

안민석은 왜 여의도의 돈키호테가 됐나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1월호

© 박남규

안민석도 주진우를 만나면서 더 큰 그림을 보게 됐다. 정유라 대학 보내기 정도가 아니었다. 주진우와 만나 서로의 퍼즐 조각을 맞춰보면서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가 국정 전반에 걸쳐 독버섯처럼 퍼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정유라 대학 보내기는 정유라 국회의원 만들기였다. 정유라는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그 배경을 지렛대 삼아 IOC 선수위원이 될 예정이었다. 정유라가 30세가 되는 2024년 총선에선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시킨다는 그림이었다. 이걸 삼성이 지속적으로 후원하기로 돼 있었다. 안민석과 주진우는 그렇게 읽었다.

“박태환한테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라고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강요한 것도 정유라의 앞길을 막지 말라는 뜻이었죠. 박태환의 약물 파동도 음모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박태환한테 호르몬제가 든 약물을 주사한 의사는 잠적했어요. 박태환은 호르몬제가 없다는 말만 믿고 처방을 받은 거고.”

김종 전 차관이 노골적으로 김연아를 싫어한다는 발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태환처럼 김연아 역시 정유라의 IOC 선수위원 선발에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정유라를 이화여대에 입학시키려고 무리수를 뒀던 것도 다 같은 맥락이었다.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이 박근혜를 정치인으로 키워낸 방법과 대동소이했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걸 각인시키고 대중적 이미지를 조작해 정치권력의 중심으로 밀어 넣었다.

박근혜는 최씨 일가의 작품이었다.

이번엔 최씨 핏줄인 정유라 차례라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박 대통령이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한 채 퇴임한다면 정치적 후광까지 등에 업을 수 있었다. 정유라가 최씨 일가에는 제2의 박근혜였는지도 모른다. 이젠 물거품이 돼버렸지만 말이다.

안민석이 말한다.

“저는 정유연이 정유라로 이름을 바꾸는 걸 확인한 순간부터 이 일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예감했습니다. 계속 정유연을 추적했는데 사라졌어요. 이름을 바꿨으니까.”

정유라는 이대에 입학하고 1학년 2학기 때 정유연에서 개명했다.

“이름을 바꿨다는 건 나중에 알았죠. 역술을 잘하는 대학교수한테 물었더니 어떤 운명을 가르는 일이 있을 경우에 점쟁이가 이름을 바꾸라고 그런다는 겁니다. 최씨 일가 사이에서 운명의 전체적 흐름을 바꿔내야 하는 그런 사안이 있었을 것이고. 그때 느낌이 온 거죠. 대학 보내기 프로젝트가 끝났는데도 이름을 바꿨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사건인 거다.”

이름을 바꾸고 꼬리를 자르는 정유라와 최순실을 다시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안민석 의원은 세월호 참사 이후 아이들에게 생존 수영을 가르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안 의원한테 세월호는 각별한 사건이었다. 교육자이자 정치인으로서 꽃다운 아이들이 그렇게 죽어갔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치인의 미사여구가 아니었다. 정말로 안민석은 세월호 얘기만 나오면 여지없이 눈시울이 불거진다.

“때로는 신변에 대한 두려움도 느꼈지만 그럴 때마다 세월호로 죽은 아이들 생각하고, 유가족 부모들 생각하면서 돌파했던 것 같습니다. 죽은 300명의 아이들의 목숨에 비하면, 부모들의 절절한 심정에 비하면, 내가 느끼는 두려움 따위는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죄스럽던 세월호가 최순실 게이트의 끊긴 맥을 이어줄 줄은 몰랐다.

2016년 8월이었다. 청소년 수영 교육 정책을 논의하러 서울교대를 찾았을 때였다. 무더운 날이었다. 수영 교육 모임 관계자들과 함께 서울교대 후문의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그 자리에서 우연히 ‘최순실이 이대를 찾아가서 딸의 학점 문제로 교수한테 난리를 쳤다’는 얘기를 엿듣게 됐다. 안 의원은 그 얘기를 듣자마자 피가 거꾸로 솟는 게 느껴졌다. 세월호 아이들이 최순실과 정유라를 찾아줬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안 의원은 최순실한테 폭언을 들었다는 이대 교수를 찾아냈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정유라는 국가 대표도 아니면서 승마를 핑계로 학교에 출석을 안 했다. 당연히 지도 교수가 제적을 경고했다.

이게 화근이었다.

안 의원은 최순실이 교수를 찾아왔고 “너 따위가”라는 폭언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대가 정유라에 대해 조직적인 학점 관리를 해주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했다. 안민석은 이걸 효과적으로 이슈화시킬 방법을 찾았다. 이번엔 <한겨레>와 공조했다.

<한겨레>의 류이근 기자가 국회 교육문화체육위원회의 국정감사에 맞춰 기사를 터뜨려줬다. ‘[단독] 딸 지도 교수까지 바꾼 최순실의 힘’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9월 27일에 터진 이 기사를 근거로 안민석은 9월 28일 국정감사에서 최순실과 정유라의 입시 부정과 학사 부정을 쟁점화시켰다.

최순실과 정유라를 국민적 공분의 대상으로 만든 이대 사태의 시작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붕괴는 정유라에서 시작됐다. 정유라라는 단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붙잡고 늘어진 건 바로 안민석이었다. 정유라의 페이스북을 매일 살피면서 임신 사실을 맨 처음 알아낸 것도 안민석 의원실의 여성 보좌관이었다. 정유라의 롤모델이라는 사촌 언니 장시호를 수면 위로 끌어낸 것도 안민석과 주진우였다.

안민석 의원은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온 장시호에게 “제가 미우시죠?”라고 물어서 화제를 모았다. 안 의원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세간에선 러브라인이니 뭐니 그러는데 그저 인간적인 질문이었죠. 최씨 집안에서 저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아니까.”

최순실 게이트 뒤엔 용맹한 돈키호테 안민석과 영민한 산초 주진우가 있었다.


안민석에 대한 정권의 반격은 치사하고 집요했다.

2014년 4월 8일 정유라에 대한 대정부 질의가 있은 며칠 뒤인 4월 11일에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사실상 안민석 때리기나 다름없었다. 체육계 대선배 이에리사 의원조차 이렇게 발언했다.

“이 선수의 명예나 장래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김희정 의원은 말했다.

“이렇게 훌륭한 선수에 대해 음해하는 것은 문체부가 두고 보고 있으면 안 될 일이다. 오히려 장려해야 될 선수를 정치권에서 불공정한 세력과 결탁해서 죽이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걱정마저 든다.”

이 발언을 한 김희정 의원은 3개월 뒤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벌 떼같이 달려들어서 정유라 지키기와 안민석 때리기에 나선 상황이었다.

안민석으로선 처음 겪는 일도 아니었다. 늘 불리한 싸움만 했다.

2004년 이른바 탄돌이로 국회에 처음 입성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말이 여당이지 늘 정치적 수세에 몰리기 일쑤였다. 정권이 바뀐 뒤부턴 더 힘든 싸움의 연속이었다.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서 국민보호단으로 앞장섰을 때였다. 안민석 의원은 경찰한테 끌려가서 폭행을 당했다. 당시 경찰은 국회의원 신분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른 채 안민석을 끌고 갔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는 이명박 정권이 정권의 안위를 걱정할 정도로 사나웠다. 그만큼 정권의 야당 의원 탄압도 도를 넘어섰다. 안민석이 희생됐다. 안 의원은 시위 현장에서 경찰한테 폭행을 당했는데도 오히려 경찰을 폭행했다고 고소당했다. 사건은 정치인한텐 암살자 집단으로 통하는 서울중앙지검에 배당됐다. 이른바 검찰의 배당 폭행이었다.

결국 안 의원은 대법원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안민석의 정치 생명을 끊어내려는 수작질이었다.

안민석은 최순실도 자신을 찍어내려고 들었다고 믿는다.

2016년 4월 총선을 6개월 정도 앞둔 때였다. 국민의당 후보였던 최웅수가 안 의원을 불법 선거 자금 혐의로 고소했다. 종편에선 이런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전형적인 흑색선전이었다. 사건은 또다시 서울중앙지검에 배당된다.

문제는 수사 속도였다. 선거가 끝날 때까지도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질 않았다. 안민석은 물어 물어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위에서 사건을 갖고 있으라고 했다는 겁니다. 전 그 뒤에 우병우 라인이 있다고 봐요. 전 억울해서 사건이 빨리 조사되길 원했지만 검찰은 절 소환 조사조차 안 했어요. 의혹 제기만으로 망신을 주고 선거를 망치게 하려는 의도였겠죠.”

2016년 3월 5일에는 당시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장이 이런 말까지 했다.

“야당 의원 가운데 낙선시켜야 하는 의원이 다섯 명 있다. 박영선, 이상민, 정청래, 이종걸, 그리고 안민석이다.”

안민석은 오히려 자신이 왜 그 명단에 올랐는지 의아했다.

“3선 의원이었지만 제가 그렇게 존재감이 있는 정치인은 아니었거든요. 그것도 최순실의 농간이었다고 봅니다. 정유라를 건드렸으니까요. 박근혜 정권의 역린을 건드렸고 폐부를 파고들었으니까요. 제가 4선이 되는 걸 어떻게든 막고 싶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안민석은 불사조처럼 매번 정치적 타살 위기에서 살아 돌아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앞에서 그토록 당당할 수 있던 것도 이런 경험 덕분일 수도 있다. 권력이 아무리 암살하려고 들어도 국민이 지켜주고 살려준다는 믿음 말이다.

정작 안민석은 매번 세월호 아이들이 지켜준 것 같다고 말한다. 안민석 의원의 눈시울이 또다시 뜨거워졌다. 울보 돈키호테다.

“최순실 게이트를 파면 팔수록 이상하리만치 세월호와 모든 게 연결됐어요. 제가 이번에 국정조사특위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세월호의 진실, 이걸 내가 파보겠다.”

최순실은 세월호 탓에 노란색만 보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권을 내파시켰다. 적잖은 정치인과 언론인한텐 사명감을 심어줬다.

안민석의 말처럼 애타게 구조를 기다렸을 세월호의 아이들이 박근혜-최순실 공동 정권을 무너뜨리고 한국 민주주의를 영원한 퇴행에서 구조해줬는지도 모른다.

세월호가 안민석을 돈키호테로 만들었다.

탄핵 표결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안민석 의원도 주섬주섬 국회 본관으로 건너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안민석 의원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세월호 참사 7시간, 대통령은 ( )을 했다는 푯말을 들고 청문회에 나오셨습니다. ( )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요?”

갑자기 안민석 의원은 작심한 듯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침에 마취한 상태에서 수면을 취했고 낮에 일어나서 머리를 하고 중대본에 갔다고 봅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대통령의 수요일 일정이 비어 있단 말입니다. 김영재 원장의 휴진일이 매주 수요일입니다.”

김영재 원장은 성형외과 전문의다. 프로포폴 처방을 할 수 있다.

“김영재 원장이 나름대로 어떤 시술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그래요. 프로포폴에 비아그라를 섞으면 혈액순환이 잘되고 환각 상태가 지속되는 느낌이 있다는 거예요. 그 노하우를 김영재가 개발했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대통령조차 그것에 중독됐던 건 아니었을까 의심해봅니다. 그런 걸로 최순실이 박근혜를 컨트롤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근혜는 자기 손으로 물건 하나도 못 산다는 거 아니에요. 최순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약물을 어떻게 구할 거야. 그걸로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관계가 성립됐던 게 아닌가. 어디까지나 의심입니다만, 그게 내 가설 가운데 하나입니다.”

설득력이 없진 않다. 구체적으로 안민석의 추론은 이렇다.

4월 16일 전날 밤 대통령은 불면증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세월호 침몰 보고를 받았지만 전원 구조됐다는 보도를 봤다. 오전 일찍 김영재 원장을 청와대로 불러 주사제 처방을 받았다. 낮잠을 잤다. 오후에 머리를 하고 상황 파악도 못한 채 중대본에 나와서 뚱딴지같은 소리를 했다.

안민석은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믿는 게 하나 있다면, 하늘 아래 비밀은 없다는 겁니다. 특히 탄핵까지 되면 입을 닫고 있던 사람들도 마음이 바뀔 겁니다. 12월 14일 수요일 3차 청문회가 1차 관문이고요. 그다음엔 특검도 있잖아요. 전 밝혀질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안민석은 그 길로 국회 본관으로 향했다.


지난 12월 14일 점심 무렵이었다.

그날 국회에서는 국조특위 3차 청문회가 한창이었다. 세월호 7시간 청문회였다. 안민석 의원과 보좌관들과 주진우 기자가 의원실에 모여 앉았다. 2시 30분에 오후 3시 청문회가 재개될 때까지 새로운 작전을 짜야만 했다.

국조특위 위원들은 성형외과 전문의인 김영재 원장과 피로 해소 분야의 명의로 알려진 김상만 녹십자에이드 원장을 중심으로 집중 질문을 쏟아냈다. 솔직히 오전 질의만으론 진실을 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의사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건강 상태와 주사 처방에 관한 질문만 나오면 환자 비밀 보호를 핑계로 대답을 거부했다. 전문 지식을 앞세워 주위를 분산시켰다.

사실 12월 7일 2차 청문회와 12월 14일 3차 청문회는 정권의 정당성이 달린 문제였다.

2차 청문회에서 김기춘 실장이 한사코 ‘최순실을 모른다’고 우겼던 것도 3차 청문회에서 세월호 7시간과 약물 문제를 철벽 방어한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끝났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 4년 동안의 정치적 결정까지 무효로 만들 순 없다. 사드 배치나 통진당 해산 같은 국가적 결정이 최순실의 농단이었다거나 약물의 영향 아래에서 이뤄졌다면 헌정 중단은 피할 길이 없다.

안민석 의원은 누구보다 상대방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김기춘이 왜 그날 청문회에 나왔다고 생각하세요? 자신이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나온 거예요. 국정 농단 세력들 또는 감옥에 간 사람들에게 가이드라인 지침을 준 겁니다. 최순실과 김기춘은 모르는 사이다. 모두가 여기에 맞춰라. 김종 전 차관도 김기춘이 최순실을 만나보라고 해서 최순실을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가 청문회에선 말을 바꿨잖아요. 이게 핵심입니다.”

김기춘이 최순실을 몰랐다면 김기춘이 비서실장으로서 결정한 일은 최순실과는 무관하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정권의 정통성을 지켜내려는 최후의 시도다.

12월 14일 점심 안민석 의원실에서는 김영재 원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안 의원은 말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는데 파고들 방도가 없어.”

주진우 기자가 말했다.

“박근혜와 최순실 주위에는 약이 너무 많이 돌아다녀요. 이임순 교수 쪽을 파야 해요. 박근혜-최씨 집안과 오래 알아온 가족 주치의 같은 존재니까.”

안민석 의원이 조여옥 대위를 만나러 미국까지 다녀온 것도 그래서다.

안민석 의원은 12월 13일까지는 독일에 있다가 돌아왔다. 독일에 있는 정유라를 찾기 위해서였다.

주진우 기자는 정유라가 중국에 있다고 주장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씽끗 웃었다.

“우린 지금 상대방을 교란하기 위한 작전을 쓰는 중입니다.”

탄핵 이후에도 돈키호테와 산초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퇴임해도 박근혜 정권의 뿌리만큼은 지켜내려는 세력과 그 뿌리까지 도려내려는 세력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다.

안민석과 주진우는 최순실과 록히드 마틴의 커넥션에도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하루아침에 사드 배치로 돌아선 배경에 최순실과 록히드 마틴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기 로비스트 린다김이 갑작스럽게 마약 혐의로 체포돼 수감된 배경도 의혹투성이다. 외부로부터 린다김을 격리한 것처럼 보인다. 최순실과 사드 배치의 연관성이 입증될 경우 보수 정권의 마지막 보루인 안보의 정당성이 붕괴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영애 시절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전방은요?”라고 물었다는 전설적 존재다. 이런 안보 신화는 박근혜 신화의 근본이자 수구 정권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다.

여의도의 돈키호테 안민석은 최후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돈키호테는 말한다.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친짓은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라오.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주어진 길을 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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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권영탕, 박남규
일러스트 전 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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