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밖의 고급 시계

신대륙 와인이 보르도산보다 맛있을 수 있다. 스위스 밖에서도 훌륭한 시계 제조사들이 아주 좋은 시계를 만든다. 시계판 ‘오프 브로드웨이’라 할 만한 신세계의 고급 시계들은 크게 일본과 독일 출신이다.

세이코가 세계 시계의 판도를 돌렸다. 쿼츠 무브먼트를 보급시켜 손목시계의 역사가 영원히 바뀌었다. 코롤라가 토요타의 일부이듯 적당한 가격의 손목시계는 세이코의 일부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져서 그렇지 세이코는 시계 회사의 모든 장점을 한 몸에 품고 있다. 최고 수준의 기계식 무브먼트, 최상급 금속 세공 능력, 최첨단 GPS 시계 제작 능력과 육상경기 타임키퍼를 수행할 정도의 특수 시간 계측 능력, 게다가 시계사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확고한 디자인까지.

사진 속의 다이버 시계가 세이코의 저력이다. 이 시계는 세이코가 1970년대에 출시한 다이버 시계의 복각판이다. 200미터 방수 기능에 한 방향으로만 회전하는 베젤 등 다이버 시계의 기본적인 디테일을 갖췄다. ‘거북이’라는 애칭이 붙은 육중한 케이스는 세이코의 전통이기도 하다. 전통에 입각한 견고한 시계임에도 가격은 스위스 시계보다 몇 배나 싸다. 스위스 시계보다 친근한 느낌과 저렴한 가격, 그럼에도 높은 품질은 세계의 수많은 시계 제조사 중 세이코만 구현 가능하다.

시티즌 역시 일본을 대표하는 시계 브랜드다. 시티즌이라는 이름엔 꽤 심오하고 이상적인 의미가 있다. 1918년 ‘쇼코샤 시계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뒤 1924년 ‘시민에게 친밀해지겠다’는 의미로 시티즌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에 따라 시티즌은 한결같이 사치스러운 시계보다는 보통 사람을 위한 고성능 시계를 만들어낸다.

사진 속의 복잡해 보이는 시계가 시티즌의 오늘이다. 시티즌은 40년 전부터 태양열 자가발전 시계를 출시했다. 그 기술을 발달시킨 슬로건이 이 시계 중앙에 쓰여 있는 ‘에코 드라이브’다. 2016년의 에코 드라이브는 정말 대단하다. 모든 종류의 빛으로부터, 즉 형광등이나 촛불에서도 빛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빛을 받아들이는 집광판은 다이얼 아래로 가려진다. 그 결과 이 시계의 파워 리저브는 540일이다. 게다가 통신위성과 실시간으로 소통해 40개의 타임존을 3초 만에 포착한다. 생김새와는 달리 티타늄으로 만들어 가볍기까지 하다. 21세기의 하이 컴플리케이션이다.

스위스 밖의 고급 시계 - Esquire 2016년 9월호

(왼쪽부터)
1.SEIKO 언제부터: 1881년, 한마디로: 전통적, 이 시계는 72만원
2.CITIZEN 언제부터: 1918년, 한마디로: 민주적, 이 시계는 200만원대
3.SINN 언제부터: 1961년, 한마디로:기술적, 이 시계는 400만원대
4.NOMOS 언제부터: 1990년, 한마디로: 도회적, 이 시계는 300만원대

진은 독일의 기계식 시계 브랜드다. 독일 하면 떠오르는 실용적이라는 이미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진의 일관적인 정체성이다. 진은 파일럿 교관 출신 독일인 헬무트 진이 1961년에 만들었다. 헬무트 진은 전직에 대한 애착 때문인지 파일럿만을 위한 시계를 일관되게 만들었다. 1993년에 입사해 1996년 회사를 인수한 로타 슈미트가 새로운 CEO가 되었지만 진의 정체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놀라울 정도로 일관적이다.

사진 속의 강인한 시계가 진 그 자체다. 시계 기술의 제1 목표였던 정확성은 전자와 통신 기술로 완벽히 구현됐다. 그렇다면 지금 기계식 시계의 효용은 뭘까? 기계식 시계는 전자시계에 비해 덜 정확하지만 완전히 망가질 확률은 덜하다. 진은 이 특징에서 출발해 내구성에 엄청나게 천착한다. 말하자면 특수 상황용 시간 계측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말로만 튼튼한 고가 시계와 달리 진은 진짜 튼튼하다. 진은 금속의 경도를 증가시키는 ‘테지먼트’라는 특수 기술을 개발했다. 항자성 수치도 8만 암페어에 달하고, 시계의 정확성을 저해하는 습기 차단을 위해 제습 캡슐을 설치했으며, 다이버 시계는 1000미터까지 방수된다. 요즘은 드레스 워치도 출시하지만 진의 단단한 정체성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노모스는 1990년에 생겼다. 역사와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고가 시계 시장에서 1990년대생 브랜드는 이례적이다. 여기엔 정치적 사연이 있다. 노모스의 고향은 독일 시계 공업의 발상지 글라슈테다. 구동독 지역에 속해 고급 시계를 못 만들던 글라슈테는 1990년 독일 통일 이후에야 다시 시계계로 돌아왔다. 노모스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두 달 후에 창립했다.

사진 속의 우아한 시계가 노모스의 오늘이다. 독일 디자이너 수잔 귄터가 첫 노모스를 만든 이래로 최신형 시계 메트로에서까지 고향의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계승한다. 노모스의 밑바탕에 깔린 DNA는 도시의 세련미다. 진이 계측 기기로서 기계식 시계를 극한까지 밀고 갔다면 노모스는 ‘21세기 귀금속으로서 시계는 어때야 할까’에 대한 답을 냈다. 이들은 불필요한 복잡한 기능의 시계 대신 파워 리저브 표시(기계식 시계를 쓰면 진짜 절실한 기능임을 깨닫는다)와 월드 타임 기능만 있는 시계를 만든다. 과장된 홍보를 하는 대신 물건의 가치를 천천히 알린다. 노모스는 연간 2만 개 정도 팔리며, 언론 대상 홍보 자료에 자사의 무디스 신용 평가 등급을 넣는다.

Credit

에디터
사진 박 남규
출처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