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힙합, 캔드릭 라마

켄드릭 라마를 보면 코비 브라이언트나 마틴 루서 킹, 버락 오바마가 생각난다.

켄드릭 라마 - 에스콰이어

비욘세와 리아나가 현존하는 팝의 여왕이라면 드레이크와 켄드릭 라마는 현존하는 팝의 왕이다. 물론 팝 대신 힙합이라고 쓰면 의미가 더 정확해지겠지만 팝이라고 쓴다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시대의 팝은 힙합이기 때문이다. 드레이크에 대해서는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으니 이번에는 켄드릭 라마 차례다. 재미있게도 팝의 왕인 켄드릭 라마는 그동안 실제로 왕관을 물려받은 적이 있다. 그것도 몇 번이나.

2011년 8월 LA의 한 공연장에서 스눕 독이 랩을 하고 있었다. 노래가 끝난 뒤 스눕 독은 미리 준비한 멘트를 시작했다. 무대에 함께 오른 켄드릭 라마를 향해서다. “아까 닥터 드레랑 뒤에서 너 공연하는 거 봤다. 넌 정말 대단해. 넌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대단한 놈이라고. 이제 우리는 너에게 웨스트코스트 힙합을 물려줄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더 잘하라고, 인마!”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같이 있던 선배 래퍼들이 켄드릭 라마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준다. 켄드릭 라마는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약간 추하게 울지만 그래서 더 진심이 느껴진다. 켄드릭 라마는 메이저 데뷔를 하기도 전에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차세대 왕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누가 마이클 조던의 후계자가 될지 모두가 궁금해하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랜트 힐? 제리 스택하우스? 빈스 카터? 손지창? 미안하지만 이 후계자 전쟁은 코비 브라이언트가 왕관을 물려받는 것으로 끝났다. 2012년 메이저 데뷔 앨범 로 세상을 평정한 켄드릭 라마는 제이지가 참여한 싱글 <Bitch, Don’t Kill My Vibe(Remix)>를 발표했다. 이 싱글의 공식 커버는 마이클 조던과 코비 브라이언트가 경기장에서 함께 서 있는 (유명한) 사진이었다. 의도는 자명했다. 현재의 왕과 다음의 왕. 힙합계의 마이클 조던인 제이지가 켄드릭 라마를 지목해 왕관을 넘겨주는 순간이었다.

켄드릭 라마 - 에스콰이어

켄드릭 라마가 세상에 알려진 후 언젠가부터 인터넷에는 그림 한 장이 돌아다녔다. 선반 위에 앉아 있는 투팍이 한 흑인 어린아이에게 손을 내밀며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었다. 둘의 그림자 위에는 왕관이 떠 있었다. 당연히 이 어린아이는 켄드릭 라마다. 투팍이 26살의 나이로 죽었을 때 켄드릭 라마는 10살이었다. 한 팬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이 품은 뜻은 분명하다. 투팍의 왕관은 켄드릭 라마가 이어받는다.

확실히 사람들은 켄드릭 라마에게 열광한다. 요즘 래퍼들에 쯧쯧 혀를 차는 올드 리스너조차 켄드릭 라마가 힙합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일까? 켄드릭 라마에겐 어떤 특별한 점이 있는 걸까? 물론 닥터 드레의 후원을 빠뜨릴 순 없다. 스눕 독, 에미넴, 50센트, 더 게임에 이어 닥터 드레가 선택한 인물은 켄드릭 라마였다. 그러나 켄드릭 라마에게 특별함을 더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역시 ‘컨트롤 대란’이었다. 빅 션의 노래 ‘Control’에 참여한 켄드릭 라마는 이렇게 외쳤다. “랩 하는 녀석들이랑 평소엔 친구처럼 지내/ 하지만 이건 힙합이야, 빡센 시간이 온 거지/ 제이 콜, 빅 크릿, 왈레이, 푸샤티, 믹 밀, 에이셉 락키, 드레이크, 빅 션, 제이 일렉트로니카, 타일러, 맥 밀러/ 난 너희 모두를 사랑해, 하지만 지금은 랩으로 너흴 죽이고 싶지/ 팬들이 너흴 알아보지도 못하게 만들어줄게/ 팬들이 너희에게서 동사나 명사 하나 듣고 싶지 않게 만들어줄게/ 경쟁이 뭔지 알잖아? 모두의 수준을 올려보자고.”

켄드릭 라마 - 에스콰이어
켄드릭 라마 - 에스콰이어

켄드릭 라마의 ‘만인에 대한 투쟁’ 선포는 힙합계 전체를 초심으로 돌려놓았다. 수많은 래퍼가 화답하거나 반발했다. 모두가 ‘반응’했다. 한동안 래퍼들은 잊고 있었다. 힙합은 개인의 뛰어남을 기리는 음악이며 ‘경쟁’을 DNA로 간직한 문화라는 사실을, 그리고 언어 대결 정신이야말로 랩에 동기를 부여하는 에너지이며 랩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젊고 실력 있는 동료 래퍼들이 ‘성공’을 최종 목표로 삼는 것처럼 보일 때 ‘Control’에서 켄드릭 라마는 홀로 ‘역사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이 사건으로 켄드릭 라마는 힙합의 대체할 수 없는 미래가 되었다.

그렇다고 켄드릭 라마가 동료 래퍼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에 대해 랩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힙합 문화와 뗄 수 없는 것들을 음악의 주재료로 삼았다. 고향, 위험한 거리, 범죄, 약물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켄드릭 라마에게는 더 긍정적인 미래로 모두가 나아가야 한다는 분명한 신념이 있었다. 예를 들어 는 미국 서부의 소도시 컴튼에서 자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는 이 앨범에서 사실의 나열에 그치거나 범죄를 찬양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앨범 타이틀처럼 ‘미친 도시’에서 ‘착한 소년’이 여러 고난과 유혹을 극복하고 어떻게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지에 대해 말한다.

켄드릭 라마 - 에스콰이어

그런가 하면 앨범 <To pimp a Butterfly>는 훨씬 더 깊고 자세하며 직접적이다. 이 앨범에서 흑인 역사와 흑인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는 켄드릭 라마는 흡사 마틴 루서 킹의 환생이나 버락 오바마의 예술가 버전 같다. 특히 수록곡 ‘Alright’에 얽힌 일화는 상징적이다. 폭스뉴스가 경찰에 관한 이 노래의 가사 일부를 문제 삼아 힙합을 공격했을 때, 켄드릭 라마는 폭스뉴스가 희망과 더 나은 미래를 말하는 노래의 주제 의식을 왜곡하고 있다며 항변했다. 그 후 ‘Alright’의 후렴 “We gon’ be alright”는 실제로 많은 흑인 시위의 구호로 쓰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앨범의 마지막에 이르러 켄드릭 라마는 결국 투팍에게 지혜를 구하게 되고, 둘은 서로 대화를 나눈다. 탁월한 장치이자 소름 돋는 결말이다. 켄드릭 라마는 더 이상 래퍼가 아니다. 그는 젊은 구도자이고 흑인 사회의 리더다.

마지막으로, 켄드릭 라마가 메이저 데뷔 후 발표한 세 장의 앨범 모두 100만 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그러나 위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켄드릭 라마의 앨범은 보편적으로 볼 때 100만 장의 판매를 기대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그동안의 기준으로 보면 ‘가치는 있지만 많이 팔리지는 않을’ 작품에 가깝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건대 그의 앨범은 모두 100만 장 이상 팔렸다. 세계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흥행이다. 특히 의 성공 후 를 발표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말하자면 메이저 데뷔에서 거둔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 안전한 행보를 따르는 대신 제 발로 사지(?)로 걸어 들어간 셈이었다. <To pimp a Butterfly>는 난해하고 심오한 작품이었으니까. 대체 이유가 뭘까? 앨범 단위의 유기적인 스토리텔링과 깊고 진지한 메시지가 지금의 대중에겐 오히려 ‘레어템’으로 작용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느 방향으로든 훌륭한 수준을 넘어 ‘위대한’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면 사람들이 알아보게 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켄드릭 라마가 스스로 웅변하는 자기만의 ‘포지션’ 때문일까? “너희들은 돈, 여자, 옷, 신과 역사까지 한 문장 안에서 논하는 나를 이해 못 하겠다는 듯 바라보지.”

이도 저도 아니라면, 어쩌면 사람들이 켄드릭 라마를 정말로 투팍처럼 여기고 대우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켄드릭 라마는 자신의 스타성을 통해 대중을 자신의 ‘메시지’ 안으로 끌어들였다. 지금껏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이 정도 밀도로 음악에 담는 래퍼는 많았지만 그와 동시에 100만 장 이상을 팔아치우면서 코첼라 헤드라이너에 오른 래퍼는 아무리 생각해도 켄드릭 라마밖에 없다. 예술가가 존경하는 예술가인 동시에 메인스트림 최전선의 팝 스타이기도 한 존재. 켄드릭 라마는 전에 없던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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