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찰의 한글

19세기 일본 지방정부에서 발행한 지폐에 왜 한글이 쓰여 있을까?

1868년 시코쿠섬의 이요(伊豫) 지방의 오쓰 번(大洲藩)이 발행한 번찰(藩札). 그때의 돈.

오늘의 도큐멘트는 그냥 종이가 아니다. 이건 옛날 일본 돈이다. 실제로 손에 쥐고 들어보면 묵직하고 견고한 느낌이 난다. 진짜로 돈으로 쓰려고 이렇게 만들었다는 실감이 난다. 분홍색 지폐의 한쪽 면에는 토끼 두 마리와 검은 보름달 5개가 그려져 있다. 뒷면에는 복을 가져온다고 믿었던 칠복신 배가 그려져 있다. 금액 “은 5몬메(銀五)”. 그 아래 적힌 문자는 한글이다. “아나머더다”라고 적혀 있다. 응? 한글? 분명히 일본 지폐라고 하지 않았나?

일본 지폐 맞다. 이 지폐는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1868년 오쓰 번(大洲藩)이라는 번이 발행한 번찰(藩札)이다. 오쓰번은 지금의 시코쿠섬에 있는 이요 지방에 자리 잡고 있었다. 번은 옛 일본의 행정 단위다. 지방정부가 돈을 발행한 셈인데, 이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시대 정황을 조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조선왕조나 명나라 혹은 청나라처럼 중앙정부가 전국을 장악한 국가는 세계적으로 많지 않았다. 영국, 프랑스, 일본처럼 포괄적인 지역 의식은 있었지만 대략 19세기까지는 한 국가 안에서도 여러 세력이 권력을 나누어 갖는 경우가 더 많았다. 유럽과 일본은 크게 세 가지 정치 세력이 경쟁하고 있었다. 유럽은 중앙정부와 지방 영주와 교황, 일본은 중앙정부와 지방 영주와 덴노(天皇).

세력이 여럿이다 보니 돈도 여럿이었다. 유럽에서는 한 국가 안에서 여러 지역의 돈이 뒤섞여 쓰였다. 일본도 막부가 제작한 금·은·동화와 중국 여러 왕조의 동전을 섞어 썼다. 유명한 장군 오다 노부나가는 명나라 동전 영락통보를 자기 집안 문장으로 삼아 깃발에까지 그려 넣을 정도였다. 일본인들의 자국 화폐에 대한 신뢰도가 낮았다는 의미다. 일본에서 자체 제작한 동전의 품질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중앙집권 국가인 명나라에서 균질하게 만들어 일본으로 수출한 동전을 사람들이 더 신뢰한 것이다. 짐바브웨는 경제가 무너지면서 미국 달러를 비롯한 8개국 돈을 자국의 공식 통화로 인정했는데, 이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하겠다.

일본에도 천하 통일은 있었다.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나고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라는 내전을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고 막부를 세웠다. 하지만 이 체제는 도쿠가와 가문이 일본 열도의 과반수를 지배하며 다른 영주(다이묘)들을 견제하는 형국이었다. 중앙집권보다는 연방 체제와 더 비슷했다.

우리는 돈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도쿠가와 막부는 비교적 신뢰할 만한 금·은·동화를 발행했다. 하지만 만성적인 인플레이션 때문에 막부의 재정 상태는 만년 적자였다. 그래서 막부는 각 주화에 들어가는 금속의 비율을 몰래 낮춰서 적자 재정을 벌충하려 했다. 그 속임수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당연히 막부 화폐의 신용도가 낮아졌다. 일본과 무역 관계를 맺었던 조선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겨 엄중히 대응할 정도였다.

막부 발행 주화의 문제는 금속 함량뿐만이 아니었다. 물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각 번은 어느 정도의 막부 금·은·동화를 확보했다는 신용을 담보로 자체적인 지폐를 발행했다. 신용이 담보였던 만큼 번찰을 발행했던 모든 번이 자신들이 발행한 지폐에 대응할 정도의 금·은·동화를 확보하고 있지는 않았다. 번의 재정이 파탄 나거나 해산되면 번찰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흔히 쓸모가 없어진 돈을 빗대어 휴지 조각이 되었다는 표현을 쓴다. 번찰 종이는 딱딱해서 휴지로 쓰기에도 알맞지 않았다. 그렇게 에도 시대에 300여 개 번이 화폐를 발행했다. 오늘의 주인공인 이요오쓰번 발행 번찰이 나온 배경이다.

이요오쓰번 발행 번찰은 에도 시대에 300여 개 번이 발행한 번찰 중에서도 특히 유명하다. 번찰 표면에 한글 비슷한 문자가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은 5몬메짜리 핑크색 번찰의 두 배인 3200원 상당의 가치가 있는 은 10몬메짜리 하늘색 번찰에도 같은 위치에 한글이 적혀 있다. 일본에서는 이걸 한글이 아니라 아히루 문자(阿比留文字)라고 부른다.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은 이걸 아히루 문자의 흘림체라고 주장한다. 두 장의 번찰에 적힌 아히루 문자는 모두 ‘아나메데타(アナメデタ)’, 그러니까 ‘참으로 경사스럽도다’라는 뜻이다. 지폐가 유통되는 것은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뜻이니 경사스럽다고 할 만하다.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한글에 대한 정보가 상당히 많이 유통되었다. 언어로의 한국어가 아니라 문자로의 한글에 대한 정보였다. 주변 여러 나라의 글자를 배우고 싶다는 지적인 욕구도 있었지만 일본인의 속마음은 조금 더 복잡했다. 일본의 지배층은 한반도가 대대로 일본의 속국이라고 믿어왔다. 그들은 속국의 언어와 문자를 알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한글을 공부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라는 사람이 있었다. 일본의 국수주의 학문인 국학(國學)을 완성시킨 사람이다. 그가 아들에게 한글 공부를 시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요즘 어떤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 한류 열풍이 불어서 일본 사람이 한글 공부를 했다고 말한다. 아니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에게는 히라타 아쓰타네라는 제자가 있었다. 문제의 아히루 문자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히라타는 일본인이 중국의 한자를 쓰고, 한자를 바꿔 만든 히라가나를 쓴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한자가 일본 열도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일본에 고유의 문자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주장하려면 근거가 필요하다. 히라타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 아히루 문자를 비롯한 10여 개의 문자를 발견했다. 아니, 발명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한국의 어떤 사이비 역사학자들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한국인은 한자를 쓰기 수천 년 전부터 가림토 글자라는 걸 쓰고 있었다는.

오쓰번에서는 19세기부터 아히루 문자에 대한 정보가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히라타 아쓰타네의 제자들이 19세기부터 이요오쓰번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히루 문자의 특이한 모양이 위조 방지 마크로 쓰일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아히루 문자든 흘림체든 모두 베끼기 어렵지 않게 생겼다. 그러니 과연 이 글자가 위조 방지 마크로 기능했을지도 알 수 없다. 돈에 쓰이는 종이의 무게와 독특한 질감, 지폐 앞면에 찍힌 붉은색 보장(寶藏) 도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조지폐를 만들었다가 걸리면 엄중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공포가 번찰의 위조를 막았을 것이다.

쓰루미네 시게노부 <보쿠쇼쿠쇼센 (墨色小筌)>

1818년 쓰루미네 시게노부는 <보쿠쇼쿠쇼센(墨色小筌)>이라는 책을 냈다. 일본어 발음을 히라가나, 가타카나, 알파벳, 한글 등으로 표기한 책이다. 이 시기에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한글에 대한 정보가 퍼져 있었다는 의미다. 이 책이 나온 지 불과 1년 후인 1819년에 히라타 아쓰타네가 고대 문자 모음집 <간나히후미덴(神字日文)>을 냈다.

19세기 일본 우파 지식인들은 역사를 이용해 열등감을 감추려 했다. 그들은 중국에서 문자를 배웠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역사를 날조했다. 역사를 날조하는 재료로 한글을 활용했다. 어떤 한국인은 갑골문자가 한민족의 문자라고 생각한다. 중국 한족의 신 치우도 한민족의 신이라고 주장한다. 번찰에 쓰인 한국어를 두고 우기는 일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한국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번만 화폐를 발행한 것도 아니었다. 여러 상인이 자기 가게 상품과 교환할 수 있는 일종의 교환권을 발행했다. 지금으로 치면 백화점 상품권과 비슷한 개념이다. 나도 일본 중부의 하치만교마치도리 (八幡京町通)라는 과자 가게가 발행한 만주(饅頭) 교환권을 하나 갖고 있다. 이 교환권은 10몬(文), 그러니까 지금 물가로는 2000원 상당의 만주와 바꿀 수 있었다. 도장이 여러 방 찍혀 있어서 그럴듯해 보인다.

만주 교환권.

여기서 말하는 만주는 한국에서 말하는 만두가 아니다. ‘델리만주’ 할 때의 그 달콤한 맛이 나는 만주다. 만주는 중국 송대에 중국 승려와 함께 일본으로 망명한 왕서방이 만들었다. 승려들이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에 왕서방이 고기 대신 팥과 깨를 넣었다. 한국에서 말하는 만주는 일본어로는 ‘교자’다. 만주어 ‘갸오즈’에서 온 말이다. 제국주의 시대 만주에 살던 일본인이 현지에서 배워 온 요리다. 나는 처음 일본에 갔을 때 만두가 먹고 싶어서 만두를 샀다가 낭패한 기억이 있다. 속에 팥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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