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앉고 싶었다

극단적으로 우월하고 독보적으로 섬세한 세계.여기가 벤틀리 벤테이가의 운전석이다.

BENTLEY BENTAYGA SUV -에스콰이어
엔진5998ccW12 가솔린
최고 출력600마력
최대 토크91.8kg·m
최고 속도301km/h
구동방식AWD
공인 연비6.1km/L
크기5140 × 1998 ×1742mm
기본가격3억원대

갑자기 소인국에 온 것 같았다. 여기는 올림픽대로인데 차들이 왜 가만히 서 있는 거지? 저 차는 왜 후진하지? 근데 저 차는 원래 저렇게 작았나? 몇 가지 생각을 하면서 음악을 들으며 달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춘천 가는 고속도로에 올라 있었다. 이대로 어디까지 달리면 좋을까?

벤테이가는 벤틀리가 처음 만든 SUV다. 201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했을 때 벤테이가 주변엔 조심스러운 흥분이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기자와 관람객의 시선에는 선망과 질투가 뒤섞여 있었다. 거대한 욕망과 약간의 좌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 같기도 했다. 누구나 갖고 싶을 정도로 멋지지만 아무나 가질 수는 없는 차라서.

벤테이가를 갖는다는 건, 어쩌면 돈 문제를 벗어난 결정이라는 뜻이다. 그냥 거대한 차를 갖고 싶다면 다른 차를 살 수 있다. 더 빠른 차를 갖고 싶다 해도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있다. 더 고급스러운 차? 더 위풍당당한 차? 3억원이 있으면 웬만한 차는 다 살 수 있다. 하지만 벤테이가를 갖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 벤테이가는 존재감만으로 전시장 전체를 지배하는 것 같았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벤틀리 모터스가 차지하는 면적은 결코 크지 않았는데.

내비게이션이 내는 과속 경보음을 들었을 때 문득 속도계를 봤다. (이건 비밀인데) 그 순간만은 시속 180km였다. 속도를 자각하는 순간 손이 좀 젖은 것 같았다. 그제야 시야도 좁아졌다. 속도 자체가 빨라서가 아니었다. 내 감각이 왜곡됐다는 당황스러움 때문이었다. 빨라야 시속 120km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러니 다른 차들은 정차해 있거나 후진하는 감각이었겠지. 그제야 벤테이가의 포부를 이해하면서 브레이크에 가볍게 힘을 주기 시작했다. 과속 방지 카메라를 통과하고 나서는 그 속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속 100km 정도로 유영할 땐 차라리 호수 위에 가만히 떠 있는 것 같았다. 거의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엔진 소리, 배기음, 풍절음까지 한꺼번에 침묵했다. 벤테이가 밖의 세상도 이렇게 조용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땐 조금 더 평화로운 세상이 됐다는 뜻일까? 벤테이가의 가치에는 이런 고요도 포함돼 있는 게 아닐까? 비행기에서 구름을 보는 것처럼, 배경이 느릿느릿했다. 바람이라도 느낄까 싶어 창문을 열었더니 열기가 훅, 침입하듯 들어왔다. 여기가 가평인가 싶을 때 멀리 보이는 산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했다. 곧 강원도였다. 그대로 바다를 보고 싶었다.

벤테이가의 인테리어는 장인 정신의 정수가 집약돼 있다. 벤틀리 모터스 본사와 공장은 영국 체셔주의 작은 도시 크루에 있다. 벤틀리는 벤테이가에 쓸 원목을 가공하는 목공 장인만 58명을 투입했다. 벤테이가에는 최대 15개의 원목 패널을 쓴다. 완벽하고 자연스러운 좌우 대칭, 숲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섬세함은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다.

가죽도 마찬가지다. 벤틀리는 울타리가 없는 고산지대에서 기른 수소 가죽만 쓴다. 모든 조건에 이유가 있다. 농장 안에서 뛰놀다 혹시 긁혀서 상처가 날지도 모르니까 울타리가 없어야 한다. 벌레가 없고, 따라서 벌레에 물린 상처도 미연에 방지하려면 기온이 낮은 고산지대로 올라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결책이다. 게다가 수소는 수태를 경험하지 않는다. 가죽이 늘어나거나 수축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INTERIOR

BENTLEY BENTAYGA SUV -에스콰이어

벤테이가의 인테리어를 완성하는 데는 경우에 따라 15개의 원목 패널을 쓰기도 한다. 이 실내에선 바깥의 거의 모든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평화롭고 고요하게 원하는 곳까지 달릴 수 있다. 도로의 꼭대기에서, 다른 모든 차들을 압도하면서.

이렇게 기른 소의 가죽을 가공하는 일은 크루 공장의 장인들이 직접 한다. 작업대에 펼쳐놓고, 눈으로 보고, 분필로 체크한다. 어떤 가죽을 쓰고 어떤 가죽을 버릴지, 이 가죽은 스티어링 휠에 쓰고 저 가죽은 시트에 쓸지를 그런 식으로 결정한다. 그렇게 고른 후 필요한 곳에 직접 씌운다. 각자의 도구로 간격을 가늠하고 각자의 도구로 바느질한다. 그렇게 한 대의 벤테이가를 만드는 데 130시간이 걸린다.

이러니, 벤틀리를 구성하는 진짜 사치는 바로 시간일지도 모른다. 돈은 어찌어찌 벌 수 있어도 벤틀리의 130시간을 이해하는 데에는 철학이 필요하니까. 스티어링 휠 위에서, 그 가죽과 바느질을 느끼면서, 침착하게 두 손을 올려놓고 양양까지 달렸다.

새로 개통한 고속도로에는 차가 별로 없었고, 있다 해도 뒷걸음질 치듯 멀어졌다. 벤테이가의 힘은 거의 모든 구간에서 최대치로 뿜어져 나왔다. 엔진 회전수와 속도를 가리지도 않았다. 이미 충분한 힘으로 달리고 있는데 더 큰 힘이 필요할 땐 가속페달에 얹어놓은 오른발에 조금 더 힘을 줬다. 그럴 때 엔진 회전수는 고민도 없이 레드존을 쳤다. 토크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벤테이가의 최대 토크는 91.8kg·m이다. 최고 출력은 600마력, 최고 속도는 시속 301km다.

이 정도의 성능,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른다. 하지만 길이는 5m14cm, 폭은 2m에 가까운 덩치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1초에 끊을 땐 정수리에 작은 구멍이 뚫린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작은 구멍에서 ‘호로로’ 하고 황홀하게 넋이 나가는 소리를, 누가 옆에 있었으면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벤테이가를 갖는다는 건 이 모든 가능성과 시간을 소유한다는 뜻이다. 내가 고른 가죽과 나무로 실내를 채우고, 지금 도로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극상의 권력과 쾌락을 영원히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벤테이가가 주파할 수 있는 험로의 정도, 컴포트 모드와 스포트 모드의 차이를 분석하는 시간 같은 건 잠시 미뤄둬도 좋을 것이다. SUV라는 장르의 의미, 다른 어떤 차랑 세세하게 견주거나 비교하는 시간에서도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벤테에가는 그런 세계에 있다.

양 바닷가에선 오래 머물지 않았다. 해변 주차장에 내려서 사진을 몇 컷 찍고 다시 고속도로에 올랐다. 서울에 돌아가야 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다시 벤테이가 안에서 평화를 찾고 싶었다. 혹은 그 힘을 느끼고 싶었다. 또는 그 속도를. 이 뜨거운 한여름 공기의 벽을 박살내면서 달리는 것 같았던 순간순간의 통쾌를. 그래서 이미 떠나온 길, 다시는 아무 곳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자유까지를.


DETAIL

BENTLEY BENTAYGA SUV -에스콰이어

1. 벤틀리 전통의 송풍구가 벤테이가의 실내에 그대로 살아있다. 실내에 있는 아날로그 시계는 브라이틀링이 만들었다.

BENTLEY BENTAYGA SUV -에스콰이어

2.계기판에는 거의 모든 정보가 아름답게 디자인돼 있다. 시각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촘촘하고 효율적인 디자인.

BENTLEY BENTAYGA SUV -에스콰이어

3.온로드와 오프로드를 합쳐 총 여덟 가지 운전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BENTLEY BENTAYGA SUV -에스콰이어

EXTERIOR
사진으로는 벤테이가의 크기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벤테이가는 차선을 꽉 채울 정도로 크고 위풍당당하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움직임은 사뿐사뿐 부드러워서 금방 적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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