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두 번째 감동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마블 스튜디오가 만든 가장 보편적인 영화일지도 모른다.

갤럭시 오브 가디언즈, 마블 - 에스콰이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에 프랜차이즈로서 강력한 잠재력이 있다고 느꼈다. 마블 세계관을 보다 환상적으로 이끌어줄 새로운 캐릭터들과 대단한 배우들이 등장할 속편을 고대한다.” 2014년 5월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CEO 밥 아이거는 제작진과의 통화 회의 중에 <가오갤>의 시리즈 제작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알 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마블 스튜디오의 모회사인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2009년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 인수합병됐다. 어쨌든 밥 아이거는 <가오갤>이 또 다른 <어벤져스>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시사하기도 했다. 2014년 5월이었다.

2014년 7월 <가오갤>이 공개됐다. 그리고 <가오갤>은 전 세계 극장에서 7억7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어벤져스>의 전 세계 수익은 15억 달러였으니 정확히 그 절반 정도를 기록한 셈이다. 하지만 <어벤져스>가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그리고 토르를 비롯한 캐릭터의 지층을 쌓아 완성한 최종 병기였음을 염두에 뒀을 때 맨땅에 헤딩하듯 등장한 <가오갤>이 수확한 성적은 상대적으로 보다 놀라운 것이었다. 얼간이 같은 캐릭터들의 불협화음과 구시대적인 엔터테인먼트를 천연덕스럽게 서브컬처로 수혈해버리는 응용력, 그리고 서사 곳곳에 포진한 깨알 같은 유머와 밑도 끝도 없는 낙천성과 우주만 한 백치미, 무엇보다도 <가오갤>을 보고 나온 관객들을 어떤 식으로든 흥얼거리게 만드는 죽이는 사운드트랙 혹은 아임 그루트. 2시간 동안 지루할 틈이 없는 탁월한 엔터테인먼트. <가오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완벽한 불협화음이었다.

<가오갤 2>는 그런 전작의 성과에 한껏 힘을 얻은 것처럼 보이는 결과물이다. 도입부부터 자신감이 넘친다. <가오갤> 멤버들이 거대한 괴물을 제거해달라는 하청 업무(?)에 격렬하게 매진하는 오프닝 시퀀스의 카메라를 지배하는 건 격전을 벌이는 피터 퀼(크리스 프랫)도, 로켓(브래들리 쿠퍼)도, 가모라(조 샐다나)도, 드랙스(데이브 바티스타)도 아니다. 전투 장면을 병풍 삼아 춤추는 베이비 그루트다.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가오갤> 멤버들의 절박함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흥이 폭발한 어린 그루트의 춤사위를 원신원컷으로 포착하는 영화의 태도는 <가오갤 2>가 관객을 향해 남긴 일종의 선언이자 약속이다. ‘우리는 이번에도 어처구니없는 짓을 할 거야. 너도 잘 알고 왔잖아’라는 듯한 선언이자 약속.

<가오갤 2>는 전작의 결말부에서 남겨놓은 떡밥을 신속하게 회수하며 극을 밀고 나간다. ‘피터 퀼의 아버지는 대체 누구인가?’라는 물음 앞의 빈칸은 빠르게 채워진다. 속편이 등장하기 전까지 피터 퀼의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두고 벌어진 설왕설래가 무색할 정도로 그렇다. 어쨌든 피터 퀼의 아버지는 에고(커트 러셀)라는 신이며, 마블 유니버스의 용어를 빌려 설명하자면 셀레스티얼이라 지칭하는 절대적 존재의 하위 부류에 가깝다. 고로 피터 퀼은 인간과 신 사이에서 태어난 데미갓인 셈인데 영생을 살 수 있고 초인간적인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아버지에게 피터 퀼은 거대한 ‘팩맨’이 될 수 있느냐고 되묻는 남자다. 아버지의 야심과 자식의 야심이 엇갈린다. 아버지 입장에선 한심하고, 아들 입장에선 무례하다. 결국 <가오갤 2>는 어긋난 욕망으로 우주를 망가뜨리려는 친부에게 맞서는 아들의 결전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결전의 끝에서 피터 퀼은 언제나 자신에게 아버지 노릇을 해왔던 존재가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사실 악랄한 아버지와 반목하는 아들의 영웅담이라는 대목에서는 <스타워즈>라는 전통적인 클리셰를 사골처럼 우려낸 혐의가 엿보이긴 하나 <스타워즈>의 세계관과 <가오갤>의 세계관 속에서 부자 관계의 갈등은 궤가 다르다. 부자 관계의 갈등이 <스타워즈>라는 세계관 전반을 지배하고 지탱하는 척추였다면 <가오갤 2>에서는 언젠가 빠질 것을 아는 아이의 젖니와 같은 것이다. 한 번쯤 거쳐가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보인다는 의미다. <가오갤>이 캐릭터의 화합을 그리는 출발점이라면 <가오갤 2>는 캐릭터의 성장을 그리는 변곡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오갤>의 우주가 SF의 전통과 무관한 공간이라는 것도 설명이 된다. <가오갤>의 우주는 지구라는 중력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해도 상관없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한 상상의 장처럼 보인다. 무엇이든 존재할 수 있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며, 그 누군가가 존재한다 해도 반문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 말이다. <가오갤>이 마블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낙천적인 작품이 된 것도 그런 무한한 가능성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마블의 영화는 본질적으로 전 세계적인 것이다.” 결국 마블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낸 영화란 범인류적 보편성을 바탕에 둔 감성으로 무장한 상업 영화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가오갤 2>는 SF와 액션, 어드벤처 등 범우주적인 활극으로 점철된 작품이지만 가족 영화로서의 감동에 방점을 찍는 작품에 가깝다. 언제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압축된 카세트테이프와 워크맨 플레이어를 갖고 다니는 피터 퀼이 무게중심이 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이는 필연적이겠지만 그 주변부로 모여든 모든 캐릭터가 하나같이 가족 혹은 유사 가족의 붕괴나 해체 그리고 이별을 통한 상실과 통증을 안고 사는 인물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점에서 가족 영화적인 면모는 서사의 전진과 함께 한층 강화된다. 특히 결말부에 다다라 가히 정서적인 장관이라 해도 좋을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그루트라는 캐릭터를 복병 삼아 마련했던 전작의 감동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웅장한 여운을 남긴다. 마치 평소에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웃겨주던 녀석이 결국 세상에서 가장 속 깊은 마음을 드러내며 위로를 전하고 상처를 끌어안아주는 듯한, 친구이자 가족이자 우정이자 사랑이자 헌신이자 희생의 대단원. 이는 네뷸라(카렌 길건)와 가모라의 애증과 욘두(마이클 루커)와 로켓의 연대와 드랙스와 맨티스(폼 클레멘티에프)의 교감이라는 모두가 다 악랄한 척하지만 모두가 다 위로받고 싶은 존재라는 설득과 공감을 거쳐 폭발하는 마지막 뇌관이기도 하다. 크고 정확하게 뻥 터진다.

<어벤져스>가 마블 스튜디오를 지탱하는 안정적인 자산이라면 <가오갤>은 공격적인 투자 자산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가오갤>은 마블 스튜디오가 할 수 있는 최전선의 실험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마블 캐릭터들을 통해 가장 놀라운 결과물을 선보인 건 되레 20세기 폭스다. 바로 <데드풀>과 <로건> 말이다. 마블의 수장으로 꼽히는 제작 담당 사장 케빈 파이기는 이 두 영화를 어떻게 평가할까? “그들은 창조적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고, 덕분에 기회를 얻었다. 이는 모두에게 필요한 결과다.” 그렇다면 과연 마블 스튜디오에서도 청소년 관람 불가의 히어로물을 만날 수 있을까? 케빈 파이기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마블의 영화는 본질적으로 전 세계적인 것이다.” 결국 마블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낸 영화란 범인류적 보편성을 바탕에 둔 감성으로 무장한 상업 영화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마블 스튜디오는 여전히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으며 팽창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에는 <가오갤 2> 이후로도 두 편의 마블 스튜디오 영화를 공개할 예정이다. 비로소 마블 스튜디오의 지휘 아래 완성된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마블 스튜디오 역사상 최고의 이벤트가 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이하 <인피니티 워>)로 가는 길목 노릇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토르: 라그나로크>가 그것. 그리고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인피니티 워>는 <어벤져스>와 <가오갤>의 세계관이 타노스라는 교집합을 통해 부분월식처럼 중첩되는 슈퍼매치나 다름없다. 두 편의 <가오갤>을 연출한 제임스 건은 <인피니티 워>에서 <가오갤> 멤버들이 일종의 서포터 역할을 할 것이라 귀띔하기도 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본격적인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설레지 않는다면 당신은 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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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일러스트 최 신엽
출처
17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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