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인드 서태지

서태지를 다시 듣고 논하면 결국 필연적인 물음표에 닿게 된다.

서태지에 대해 말하는 건 솔직히 이제 좀 지겹다.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많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엄밀히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느끼는 피로도는 말의 ‘양’보다 말의 ‘내용’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한쪽에선 서태지를 위대한 선구자나 시대의 영웅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선 서태지를 장사꾼이나 사기꾼으로 취급한다. 어느 정치인처럼 극중주의를 표방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럴 때 보통 진실은 중간 즈음에 있다. 균형 감각은 기계적 중립과 엄밀히 다른 개념이다.

서태지는 ‘발 빠른 유행 수입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서태지는 미국에서 유행하던 음악을 한국에 누구보다 발 빠르게 들여온 뮤지션 중 하나였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이 말은 폄하의 의미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가깝다. 서태지 본인도 몇 년 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문익점, 수입업자라고 부르는 얘기가 있다. 일정 부분 맞다. 난 한국에도 이런 음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랬다. 최초의 수입업자라고 부른다면 오케이다.” 물론 수입업자라는 수식어가 서태지를 향한 찬양의 반대급부로 등장한 맥락이 있기에 폄하의 뉘앙스가 있는 건 일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말을 반대로 하면 서태지가 동시대의 누구보다 트렌드에 밝았다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서태지를 둘러싼 명과 암은 사실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동전의 양면에 가깝다. 앞면이 있기에 뒷면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서태지를 둘러싼 각종 표절 시비가 그렇다. 서태지가 특별히 양심 불량이라 이런 논란이 일어났던 걸까? 아닐 테다. 트렌드에 밝은 그의 면모와 그것을 실천에 옮긴 행동력이 표절 시비를 불러왔다고 보는 편이 보다 정확하다. 다시 말해 서태지는 늘 ‘한국에서는 새로운’ 음악을 들고 나왔고, 당시의 대중은 이 새로운 음악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당연히 부족했기 때문에 표절 시비는 더 격렬할 수밖에 없었다. ‘Come Back Home’이 대표적인 예다. 물론 “내가 사이프레스 힐에게 빌려온 것은 목소리 톤뿐이며, 그것은 게토 뮤직의 장르적 특성이다”라는 서태지의 당시 발언은 오류다. 그러나 당시 우리가 힙합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더라면 분위기와 이미지 등으로 표절 낙인을 찍는 대신에 더 정교하고 성숙한 논의가 가능했을 것이다.

서태지를 가리켜 발 빠른 유행 수입자라고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가 비범한 음악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맞다. 서태지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또 서태지를 향한 찬사가 과잉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그의 재능까지 깎아내리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앞서 서태지를 가리켜 발 빠른 유행 수입자라고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가 비범한 음악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맞다. 서태지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또 서태지를 향한 찬사가 과잉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그의 재능까지 깎아내리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일단 힙합의 관점에서 볼 때 1990년대 중반에 ‘Come Back Home’이나 웨스트코스트 지-펑크 스타일을 차용한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또 솔로 데뷔 앨범을 혼자 감당한 역량이라든지 ‘Moai’ 같은 싱글의 만듦새 역시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최근에 발매한 서태지 데뷔 25주년 기념 리메이크 프로젝트 는 이 같은 사실을 새삼 다시 확인시킨다.

앞 문단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풀이해서 말하면 이렇다. ‘역시 원곡이 좋다.’ 이 같은 나의 결론에는 원론적인 맥락과 구체적인 맥락이 각각 존재한다. 원론적인 맥락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나는 기본적으로 (음악에 한정한다면) 리메이크라는 작업에 대해 회의적이다. 물론 누구나 리메이크를 할 수 있고 누구나 리메이크를 좋아할 수 있다. 하지만 원곡이 지닌 비트, 멜로디, 가사, 정서 등 원곡의 모든 요소는 대부분의 경우 원곡의 주인에게 최적화된 상태로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노래가 완성되는 과정은 당시의 환경, 상황, 가치관 등이 우연히 서로 만나 탄생한 화학적 결과물이다. 나는 이것을 다른 시대, 다른 맥락, 다른 사람이 다시 만들었을 때 원곡보다 훌륭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다음으로, 구체적 맥락이다. 나에게 좋은 리메이크란 ‘원곡의 정수를 유지하면서도 동시대의 무언가를 더한 것’이다. 원곡에 안주해서도 안 되고 원곡을 아예 배제해서도 안 된다. 이 균형을 유지해야 하기에 리메이크란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다. 중에서 이 요건에 가장 부합하는 곡은 ‘인터넷 전쟁’이다. 원곡의 기타 리프, 전체적인 스타일, 핵심 메시지 등은 유지하면서 그 위에 새로운 의미와 발전적 요소를 추가했다. 먼저 큰 맥락에서는 원곡의 메시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리메이크 곡에는 ‘힙합 신’이란 특정한 타깃이 추가되었다. 또 리메이크 곡으로 원곡을 다시 떠올리며 그동안 변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된 시대의 흐름을 되짚어볼 수 있게 됐다. 원곡보다 수준 높은 랩이 담겨 있다는 것 역시 미덕이다. 서태지는 자신의 목소리를 잘 파악하고 활용한다는 면에서 좋은 보컬리스트이긴 하지만 훌륭한 래퍼는 아니었다. 또 ‘인터넷 전쟁’은 랩의 기술적 면모와 래퍼로서의 존재감이 중요한 노래가 아니긴 했다. 그러나 나플라(nafla)와 루피(Loopy)는 원곡을 존중하면서도 그 위에 더 질 좋은 랩을 얹어 ‘인터넷 전쟁’을 업그레이드했다. 좋은 리메이크다.

하지만 나머지 곡 중에서는 특별한 작품이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Come Back Home’도 좋은 리메이크에 속한다. 원곡의 메시지를 이어받으면서도 동시대의 문제의식으로 연결했고, 무엇보다 리메이크의 주체가 방탄소년단이라는 점은 ‘10대의 아이콘’이라는 관점에서 적절한 선택이다. 그러나 나머지 곡은 대체로 무난하다는 평이 적당해 보인다. 창작의 고민과 정성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들을 만한 좋은 노래’를 얻었다는 것 외에 리메이크라는 키워드와 관련해 더 얻을 것을 크게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누군가는 들을 만한 좋은 노래를 하나 더 얻었다는 것으로 만족하겠지만 그 경우에도 문제라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차라리 원곡을 듣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문제 말이다. 게다가 ‘Moai’는 원곡과 무관한, 완전히 별개의 노래처럼 들린다. 이 노래에는 아쉽게도 내가 감명받았던 원곡의 어떤 요소도 담겨 있지 않다.

그리하여 는 궁극적으로 이런 의문을 남긴다. 서태지 데뷔 25주년을 기념하고 환기하는 동시에 참여한 후배 뮤지션에게는 영광이 되었다는 것 외에 우리는 이 작품에서 과연 어떠한 가치와 의의를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이 의도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그것으로도 괜찮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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