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속에 남은 제국

1930년대의 여행 기념품에서 찾아낸 여행의 정취와 세계의 흐름.

한국의 철도역에는 아직도 기념 스탬프가 있다. 기차 여행자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역마다 그림이 다르다. 이 문화는 일본에서 왔다. 일본인들은 여행지의 매점에서 파는 기념엽서에 스탬프를 찍었다. 어떤 사람들은 고슈인초(御朱印帳)에 기념 스탬프를 찍어서 모았다. 고슈인초는 직역하면 ‘신성한 붉은 도장을 찍어 모으는 책’이다. 열차 스탬프가 신성한 붉은 도장일까? 그럴 리가.

고슈인초는 일본판 여행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일본인은 종교적인 순례를 하며 들른 절이나 영장(靈場, 영험한 장소)에서 부적을 받아 왔다. 옛날에는 마을에서 뽑힌 대표가 영장에 가서 마을 사람의 수만큼 부적을 받아 오기도 했다. 개인이 멀리 여행하기 어렵던 시절이다. 절 입장에서 참배객은 관광 수요였다. 절, 신사, 영장은 관광객의 즐길 거리를 고안했다. 지역의 유명한 절을 묶어 순례 코스를 구축하고, 그 코스를 돌며 들르는 절 마다 주는 부적을 모두 모으면 더 큰 영험이 있을거라 선전했다. 야구카드를 모으는 앨범 처럼 부적을 모으는 접이식 책자도 함께 출시했다. 그게 고슈인초다.

여행은 사회적 현상이다. 18~19세기는 일본 역사상 교체기에 속한다. 중앙 정부인 도쿠가와 막부, 지방 영주인 다이묘의 사회 통제력이 약해졌다. 순례라는 이름의 관광 여행이 전국적으로 유행한 배경이다. 사회 변화 중에는 기술 변화도 있다. 서구형 근대화를 맞으며 일본은 전국에 철도를 깔았다. 각 철도를 관리하는 관청에서는 영장 근처에 역을 짓거나 새로운 관광지를 개발했다. 철도 운임 수입을 위해서였다. 순례와 여행과 비즈니스라는 모델이 철도를 만나 더 풍성해졌달까.

순례-여행-비즈니스로 이어지는 일본풍 여행 모델은 한반도에도 남아 있다. 불국사역이나 직지사역은 유명한 영장 근처에 역사를 지은 경우다. 안양역은 운임 수입을 늘리기 위해 주변에 관광지를 개발한 사례다. 당시 역장 혼다 사고로가 주도해 1932년 안양 풀장을 만들었다. 여기가 지금의 안양예술공원, 구 안양유원지 자리다. 1932년에 풀장을 개장했다는 내용을 새긴 바위가 아직까지 이곳의 하천에 남아 있다.

안양유원지가 개장한 1932년으로부터 2년 뒤인 1934년 봄,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일본인이 긴 여행을 떠났다. 그는 1934년 8월과 1935년 7월에 한반도와 만주, 관동주를 여행했다. 관동주는 일본이 직접 통치하 던 랴오둥반도 끄트머리다. 이곳은 당시 일본인들이 ‘외지’라 부르던 지역이다. 그는 외지 여행에서 들른 기차역의 스탬프를 열심히 찍었다. 역 뿐 아니라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운영하던) 조선선 열차 식당 칸에 있는 스탬프도 찍었다.

‘조선유람기념’ 스탬프가 한반도를 그린 방식을 보자. 한반도는 승무를 추는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조선 시대까지는 한반도의 모습을 호랑이 형태로 여겼는데, 일제강점기에 한민족의 정기를 꺾기 위해 호랑이를 토끼로 바꿨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유람기념 스탬프는 이런 이야기가 근거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운영하는 조선선 철도에 있던 스탬프니까.

그는 열차 식당 칸 스탬프를 세 번이나 찍었다. 당시 열차 식당 칸은 장거리 여행의 로망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 <오리엔탈 특급열차 살인 사건>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롬멜 장군과 식당칸>에서도 식당 칸의 매력이 드러난다. 그 역시 외지 철도의 식당 칸에서 꽤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다.

그의 고슈인초에는 ‘고야산 영장’이라고 쓰여 있다. 그는 1934년 5월 일본 최대의 불교 성지 고야산(高野山)을 참배했다. 거기서 ‘고야산 영장’ 고슈인초를 구입하고 곳곳의 명소에서 부적을 받아 모았다. 그러다 먼 곳으로 여행하고 싶어졌는지 그해 8월 한 달, 이듬해 7월엔 두 달 동안 외지로 떠났고, 각지에서 스탬프를 찍어 모았다. 여름마다 한두 달씩 장기 여행을 한 걸 보면 유한계급에 속했던 모양이다. 부러운 사람이다.

오늘의 주인공인 이름 모를 (아마 유한계급인) 일본인 말고도 당시 일본에서 한반도와 만주를 여행한 일본인이 많았다. 외지 여행에 나선 일본인들은 고슈인초에 각지의 기념 스탬프를 찍어 모았다. 고슈인초에 찍힌 스탬프를 순서대로 따라 가면 그들의 여행코스를 상상할 수 있다. 흔히 여행 기록이라고 하면 일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일기 대신 스탬프를 찍어도 여행의 기억이 남는다. ‘고야산 영장’ 고슈인초에 찍힌 스탬프를 보면 그의 여행 코스를 추정할 수 있다.

중국에 있던 ‘야마토’ 호텔, 경성역 시절의 서울역, 지금도 부산과의 정기선이 오가는 시모노세키, 하얼빈 역에 세워진 일본인 추모비, 평양과 개성과 대구의 스탬프. 1934년이던 동시에 ‘쇼와(昭和) 9년’ 이던 시대의 흔적들.

대구역 스탬프는 이때도 사과 모양이다. 예전엔 대구가 더우면서도 서늘해 사과 키우기 좋았다. 요즘은 온난화 때문에 강원도에서 사과가 잘자란다고 한다. 한 번 자리 잡은 선입견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과 하면 대구를 떠올린다. 대구가 사과 산지로 인식된 시점은 정확하지 않다. 구한말 서양 선교사가 서양식 사과를 들여왔으니 구한말 이후일 것이다. 대표적인 사과 품종인 부사는 일본에서 1930년대 후반에 개발해 1960년에 보급했다. 그러니 1934년 스탬프첩에 찍힌 대구역의 사과가 부사는 아니다. 국광이려나?

하얼빈역 스탬프도 눈에 띈다. 하얼빈은 1909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곳이다. 이토는 이때 러시아의 고위급 정치인 블라디미르 코콥초프를 만나러 하얼빈에 갔다. 러·일 관계 개선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왜 하필 둘이 하얼빈에서 만났을까? 하얼빈은 시베리아 철도의 지선이자 북만주에 놓인 동청철도의 거점 도시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러시아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늘의 주인공은 1935년 7월 18일에 호쿠만 호텔과 하얼빈 역의 스탬프를 찍었다. 여기 공통적으로 보이는 건물이 러시아 정교회의 성 소피아 교회다. 하얼빈시를 상징하는 건물인 동시에 극동 아시아에서 가장 주요한 러시아 정교회 교회였다. 당시 만주국과 일본에서 만든 하얼빈 관광 안내 팸플릿에는 하르빈(Харбин)이라는 키릴문자와 성 소피아 교회 그림이 큼지막하게 실려 이국 정취가 난다. 하얼빈쯤 가면 이미 중국이 아니라 시베리아였던 셈이다.

하얼빈역 스탬프의 지사지비는 두 명의 일본인 민간인을 기리는 탑이다. 그들의 이름은 오키 데이스케와 요코카와 쇼조. 1904년 러일전쟁이 터졌을 때 변장하고 정보를 수집하다 러시아군에게 체포되어 총살됐다. 남의 나라에 일본인 충신의 추모비를 세우고 관광 코스로 선전한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전에 일본이 만주와 만주국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만주국은 안양 풀장 개장과 같은 해인 1932년 일본이 만주 지방에 세운 괴뢰국이다.

지사지비는 당시 세계 정세와 연관이 있다. 딱 100년 전인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소련이 탄생했다. 기존 열강은 위협을 느끼고 혁명을 무너뜨리려 연합군을 결성해 러시아를 침공했다. 이를 ‘간섭전쟁’이라 부른다. 일본도 참전했지만 사정은 조금 달랐다. 이참에 시베리아 동부 지역을 정복하는 게 일본의 진짜 목표였다.

간섭전쟁에서 일본은 바이칼 호수까지 점령했다. 역사상 일본이 군사력으로 가장 서쪽까지 세력을 뻗친 순간이었다. 일본군이 파죽지세로 동부 시베리아를 점령하는 동안 중국인이나 몽골인으로 변장해 첩보 활동을 벌인 일본군과 민간인이 많았다. 지사지비가 기리는 두 명의 일본인도 그 일부였다. 오늘의 주인공은 그 비석이 새겨진 하얼빈 역의 스탬프를 찍었다.

그는 스탬프를 찍으며 이러한 역사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깊은 감회에 젖었을지도 모른다. 신생국가인 만주국과 일본이 서구에 맞서 인류 역사의 새로운 모델을 건설할 거라고 굳게 믿었을지도 모른다. 시진핑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바로 지금 그렇게 믿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그가 귀향하고 고작 10년 뒤에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패하고 만주국은 멸망했다. 2년 연속으로 긴 여행을 할 정도였으니까 우리의 주인공은 1945년에 살아 있었을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쇼와 덴노 는 라디오로 항복 선언을 방송했다. 고슈인초의 기념 스탬프 속 세계가 허망하게 무너졌다는 공지였다. 이름 모를 일본인도 라디오를 들었을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이 고슈인초를 들여다봤을까. 기념 도장에만 남은 제국의 흔적을 보며 회한에 잠기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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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 시덕(문헌학자, 작가)
사진정 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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