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어쩌면 올해의 결말, '더 킹'에 관하여.

대한민국 현대사의 하이라이트가 데칼코마니 형상의 몽타주로 스크린에 나열된다. 12·12 쿠데타, 88서울올림픽, 6·15 남북공동선언, 2002 한일 월드컵, 노무현 대통령 탄핵. 그리고 그 간극을 채운 대통령의 얼굴들. 전두환과 노태우,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과 이명박.

그 뒤로 스크린이 암전되고 <더 킹>이라는 제목이 떠오른다. <더 킹>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주름잡은 어떤 권력들을 주목한 영화다.

박태수(조인성)는 목포에서도 주먹으로 먹어주는, 소위 말하는 ‘쌈짱’이다. 학교에서는 ‘대가리’라 통한다. 마음이 동하면 자신의 패거리와 교실을 뛰쳐나와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시비가 붙으면 패싸움질을 한다.

그의 아버지는 장물을 내다 팔고 시장 도박판을 전전하다 주먹질이나 일삼는 삼류 건달이다. 그런 어느 날, 찍소리도 못하고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조아리며 양복쟁이에게 얻어맞는 아버지를 목격한다. 양복쟁이는 검사라고 했다.

유레카! 박태수는 깨달았다. 저것이 힘이다. 그래서 결심한다. 검사가 되자. 그렇게 공부를 시작하고, 교내 수석을 차지하고,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뒤 사법고시까지 패스한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지만 그렇다.

그렇게 검사가 된 박태수는 점점 검사라는 직업이 녹록하지 않다고 느낀다. 서류상으로 넘어오는 자질구레한 사건들을 매일 밤낮없이 수십 건씩 검토하고 처리해야 한다. 야근은 일상이다. 그런 일상에 딱히 불만을 갖진 않지만 의문이 생긴다. 힘 있는 검사들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의외의 지점에서 답이 날아온다.

야근 중이던 박태수에게 예정에 없던 손님이 찾아온다. 서울대 법대 2년 선배인 양동철(배성우)이다. 서울 대검찰청에서 근무하는 선배가 밤중에 별안간 경기도까지 찾아온 이유를 모르겠다. 심지어 느닷없이 야식을 먹으러 나가자며 자신을 차에 태워 서울까지 내달린다.

도착한 곳은 대검찰청 전략본부 사무실. 그곳에는 ‘터지면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힐 사건들’을 기록한 파일이 산적해 있다. 그런데 왜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 묵혀둘까? 양동철이 말한다.

“사건도 김치처럼 맛있게 묵혔다가 제대로 익었을 때 꺼내 먹어야 되는 거야.”

그들에게 중요한 건 사건 자체가 아니다. 사건은 그저 수단일 뿐이다. 조직과 사회에서의 권력과 명예를 보장해주는 담보.

그런데 양동철은 왜 박태수를 찾아왔을까?

박태수는 고등학교 체육 교사가 교내 여학생을 성폭행한 사건을 기소 중이었다.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피해자의 어머니와 500만원에 합의하고 묻으려 했던 사건을 그가 다시 수면 위로 끌어냈다. 이런 범죄자가 왜 구속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사관의 설명이 기가 찼다. 가해자의 부모님이 지역 유지라고 했다. 결국 가해자를 소환해 자신의 책상 앞에 앉혔다. 그런데 되레 뻔뻔한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 ‘솔직히 정의감 이런 것보단 이놈의 건방짐이 턱 하고 목에 걸렸다’고 생각한 박태수는 검사 재량으로 그를 구속시킨다. 자신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한다.

힘을 누르는 건 더 큰 힘이다.

양동철은 서울 대검찰청 전략본부를 이끄는 부장검사 한강식(정우성)의 오른팔이다. 박태수가 기소하려던 성폭행범의 집안과 한강식은 막역하다. 양동철이 박태수를 찾아온 건 그가 기소하려던 성폭행 사건을 덮자고 회유하기 위해서다.

박태수 입장에선 자존심에 금이 가는 기분이지만 양동철이 웃는 얼굴로 칼을 품고 있음을 직감한다. 한강식은 차기 검사장 후보로 꼽히는, 검찰 내 수뇌부다. 그런 이의 부탁을 거절하는 건 칼에 머리를 내미는 일이다. 심지어 그 권력을 등에 업고 온 이는 대학교 선배다.

결국 기소를 포기한다. 피해자 어머니에게 5000만원의 합의금을 안겨주며 죄책감을 털어보지만 패배감은 명명하다.

박태수는 양동철을 따라 고층 빌딩 꼭대기에 자리한 펜트하우스에 오른다. 파티가 열린다 했다. 유명 로펌을 운영하는 검찰 출신 선 배와 정·재계 인사 그리고 유력 일간지 기자가 그곳에 있었다. 하나같이 여자를 끼고 저마다의 모양으로 논다.

그러다 한강식이 등장할 때 박태수는 긴장한다. 힘을 느낀다. 아버지를 때리던 그 검사로부터 느꼈던 그 힘. 그런데 그곳에 자신이 교도소로 처넣으려 했던 성폭행범이 나타난다. 모멸감이 느껴진다. 박차고 자리를 나섰다.

그때 잔이 날아왔다. 한강식이 던진 잔이다. 주먹도 날아왔다. 한강식이 날린 주먹이 다. 박태수는 그저 맞고 있었다. 그리고 한강식이 말했다.

“서울대 나오고 검사 되니까 세상이 다 네 거 같니? 너만 서울대 나왔고, 너만 검사야?”

한강식은 역사를 웅변한다. 권력 옆에 붙어 있지 않은 이들이 살아남은 역사는 없다고 했다. 그는 20대 초반에 사법고시를 패스한 인재였고, 노태우 정권이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며 범죄 조직을 일망타진했으며, 김영삼 정권에선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와해시켰다. 역사의 선봉장이었다.

그런 그에게 정의감이란 촌스러운 것이니 버려야 하고, ‘친일파’는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이라며 엄지를 들어야 하는 존재다. 역사 공부를 하라고 윽박지른다. 역사적으로 권력 옆에 붙어 있지 않아서 성공한 사례가 있느냐고 역설한다.

박태수는 그의 말이 좆같다. 얻어맞고 훈계나 듣는 것보다도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어 좆같다. 그래서 술을 들이켠다. 오기가 생긴다. 호쾌하게 일어나 성폭행범의 뒷덜미를 잡고 일어서 러브샷을 한다. 깡다구를 보여준다. 덕분에 박태수는 한강식의 눈에 들어 대검찰청 전략본부로 출근한다. 일찍이 목격했던 힘의 중심으로 입성한다.

영화 속 대사처럼, <더 킹>은 박봉과 야근을 견디며 자신의 직분을 다하는 99퍼센트 검사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1퍼센트 검사들에 관한 영화다.

사실 지난 몇 년간 정경 유착으로 점철된 권력층 비리를 다룬 영화는 차고 넘쳤다. 비리 영화 자체를 장르화해도 좋을 만큼 이어졌다. 어쩌면 관객의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몰염치와 부도덕으로 점철된 권력층의 이미지를 심판하고 정의를 웅변하는 영화 속 세계관은 잠시나마 피로한 현실을 잊게 만들고 쾌감을 주입한다.

그런데 <더 킹>은 정의를 웅변하고 승리를 외치는 영화처럼 보이진 않는다. <더 킹>이 부패한 권력욕을 그리는 건 그들을 심판하는 쾌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다. 다른 의미가 있다.

<더 킹>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리는 검사들이 힘을 부릴 때 가 아니다. 존엄한 권력을 부리던 자들이 자신의 위기 앞에서 전전긍긍하며 천박함을 무릅쓰며 최선을 다하는 순간이다.

심지어 정권이 바뀌는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자신들이 줄을 서야 하는 유력 대권 후보를 파악하지 못해 신점을 보고 굿판마저 벌이는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절실한 표정으로 진심을 다해 기도하는 모습에선 삶의 절박함이 느껴져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게 된다.

저들이 세상을 쥐락펴락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당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더 킹>은 의외의 지점에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일까?

노무현이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오르자 대검찰청 전략본부는 다급해진다. 여느 때와 달리 ‘누구를 지지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그를 어떻게 떨어뜨릴까’에 집중한다. 언제나 유력한 줄을 잡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번만큼은 인정할 수 없는 후보를 떨어뜨리는데 공력을 모은다.

야당 국회의원을 찾아가 노무현 후보에게 불리할 만한 정보를 전달하고, 성심성의껏 굿판을 벌인다. 물론 모두가 아는 대로 그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리고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 그들이 왜 그토록 노무현을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뜨리려 했는지, 날 것 같은 이유가 쏟아진다.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상고 출신의 무지렁이 따위가 대통령이 되는 게 말이 돼?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데?”

문득 궁금해진다. 대한민국은 정말 어떤 나라일까.

지난 2016년, 우리는 국정 농단이라는 유례없는 사건을 접했고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 국민이라는 단어와 실체를 동일하게 여기지 않는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 앞에서 촛불을 들었다.

촛불은 마지막 보루이자 새로운 희망이었다. 촛불을 밝힌 개개인이 이 사회를, 이 나라를 밝히는 주체라는 사실을 각성하고 연대하는 선언. 그리고 주말마다 수많은 인파가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드는 건 결국 포기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 킹> 의 결말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박태수는 자신이 양손에 쥐고 있던 힘이 모두 다 가루처럼 흩어졌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과 함께 영원히 권력을 나눌 것 같았던 이들이 자신을 철저히 깔아뭉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박태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그때 그놈을 구속했다면 어땠을까? 평범한 99퍼센트의 검사처럼 일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최후의 반전을 준비한다. 대담한 행보와 교묘한 전략을 계획한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방아쇠를 당긴다.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다. 복수에 가깝다. 다만 그의 복수가 부정을 향해 있기 때문에 되레 정의로워 보일 뿐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자신이 무너뜨리고자 하는 이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을 알기에 자신 또한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다.

박태수의 계획은 적중한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박태수는 결과적으로 스크린 밖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더 킹>은 국회의원 후보가 된 박태수의 당선 여부를 목 전에 두고 끝난다. 당선 여부를 알려주지 않는다. 박태수는 직접 그 이유를 말한다.

“그건 당신이 정하는 거니까. 당신이 이 나라의 왕이니까.”

객석으로 실탄처럼 물음표가 날아든다.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우리는 이에 답 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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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최신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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