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방콕

첫 번째 방콕은 몇 번이고 다시 찾고 싶은 도시였다.두 번째 방콕은 여행의 개념을 바꿔주었다.세 번째 방콕은 메리어트 마르퀴스 퀸즈파크에서 보낸 3박 4일이었다.시간은 흘렀고 나는 성장했다.서로 다른 숙소에서 아주 다른 방콕을 경험했다.

#1. 2005년, 카오산 로드에서

어깨가 뚝 떨어질 것 같았다. 앞으로 한 달 이상 여행하면서 가지고 다녀야 할 짐이 배낭 하나에 다 들어 있었다. 발바닥과 허리에는 이미 몇 주 치 여독이 쌓여 있었다. 호주에서 몇 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내린 도시가 방콕이었다. 태국에서는 약 2주간 머물 예정이었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카오산 로드로 갔다. 20대 중반이었고, 카오산 로드에선 가장 저렴하고 역동적으로 방콕을 즐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카오산 로드에 있는 숙소에서 3박 4일을 묵었다. 미리 정해두거나 예약을 하고 떠난 여행도 아니었다. ‘방콕에 갈까? 그럼 카오산으로 갈까? 이 길 어딘가에서 숙소를 한번 찾아볼까?’ 하고 적당히 들어간 골목이었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처음 들어간 숙소에서 분위기를 보고 두 번째 들어간 게스트하우스에서 250바트짜리 방으로 결정했다. 200바트짜리 방에는 침대와 간이 옷장만 있었다. 에어컨은 500바트 정도 하는 방에 있었다. 250바트짜리에는 선풍기만 있었다.

숙소에 짐을 부려놓고 신이 나서 세수만 하고 밖으로 나갔다. 지금이나 그때나 변하지 않은 분위기.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히 이국적인 나라 태국에서 그들은 경계도 없이 섞여 있었다. 덥고 습하고 미끌거리는 채 들떠서 웃고 있었다. 그게 그 골목의 피부였다. 숙소 바로 앞에 있던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을 샀다. 마시면서 골목 끝까지 가는 동안 마사지를 권하는 여자를 세 명이나 만났다. “마사지? 지금? 어디서 받아야 해?” 물었더니 골목 끝에 자기가 묵는 방이 있다고 했다. 타이 마사지가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상하고 불편해서 말했다. “골목 어귀에 내가 묵는 방이 있어. 250바트짜리를 싸게 구했어. 선풍기도 있어.” 그랬더니 씩 웃곤 그냥 가버렸다. 그렇게 같이 갔다간 아주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건 치앙마이에서 만난 한국인 아저씨한테 듣고 알았다. 거리에서 마사지를 권한 세 명 중 한 명의 목에는 아직 울대뼈가 남아 있었다.

맥주 두 캔을 알뜰하게 비우고 들어선 내 방에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더니 벌레 한 마리가 벽에 붙어 있었다. 침대에 누웠더니 허리가 푹 꺼졌고, 카오산 로드 그대로의 분위기가 이불에도 묻어 있었다. 덥고 습하고 눅눅했다. 그래도 그 방에서 기꺼이 3일을 더 보냈다. 왕궁도 가고 사원도 갔다. 호주에서 산 <론리플래닛>을 들고 방콕을 헤집고 다녔다. 읽거나 쓸 때는 펍이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진짜 훌륭한 타이 마사지는 왓포 옆에 있는 마사지 대학교에서 받았다.

#2. 2011년, 후웨이꽝에서

그해 연말은 한국에서 보낼 수 없었던 감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누구랑 같이 떠날 형편도 아니었다. 혼자여야 했고, 그래야만 뭔가 해소될 것 같은 무드가 겨울을 지배하고 있었다. 누구나 일기장 어딘가에 간직하고 있는 그런 여러 겨울 중 하나였다. 이번에도 모든 걸 갑자기 처리했다. 비행기 표는 그동안 쌓인 마일리지로 샀다. 지난한 클릭과 클릭 사이에 딱 한 장 나온 표를 운 좋게 구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출발하는 표였다. 이번에도 지역이나 숙소를 정해두지 않았다. 다만 몇 가지 기준은 있었다. 방에 책상이 하나 있었으면, 수영장에 사람이 별로 없었으면, 호텔의 어떤 요소도 패셔너블하지 않았으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적당한 가격의 호텔이 후웨이꽝에 있었다. 그 호텔이 나의 두 번째 방콕이었다. 이번 여행에선 그 호텔 주변의 어떤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않았다. 걷고 또 걸었다.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서만 먹고 마셨다. 조식 시간 30분 전에 식당에 내려갔다. 방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내다 책을 챙겨 수영장에 갔다. 거기서 단편소설 하나 읽고 수영하고, 장편소설 한 챕터 하나 읽고 수영했다. 허기가 느껴질 때 슬슬 걸어 동네 식당에 가서 맛이 궁금한 음식을 골라 먹었다. 4일 정도 머무르면서 점심은 매일 거기서만 먹었다. 그러곤 다시 들어와 수영장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다. 다시 허기가 질 때 나와서 좀 멀리 걸었고, 맛있어 보이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또 오래 걸어서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호기심을 채우려고 찾은 도시가 아니었고, 관광에 대한 의지도 없었다. 그냥 누워서 읽고 걷다가 먹고 싶었다. 그런 시간이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연말이기도 했다. 그 여행의 중심에는 호텔이 있었다. 무턱대고 호화스러운 호텔은 아니었지만 적당한 품위가 있었다. 모자란 것도 없었다. 수영장은 한산했고 서비스는 훌륭했다. 조식도 깔끔했다. 2005년 카오산 로드에서 잡았던 숙소보다 10배 이상 비싼 호텔이었다. 어쩌면 서울에서 보낸 6년의 시간이 나만 바꿔놓은 게 아니었다.

#3. 2017년, 메리어트 마르퀴스 퀸즈파크에서

압도적인 규모였다. 천장이 높고 광활한 로비였다. 그 공간을 태국 본연의 친밀하고 농밀한 환대가 촘촘히 채우고 있었다. 로비에는 아름드리 기둥이 있었는데, 아름답고 거대한 전시장이 그 기둥을 끝까지 보호하고 있었다. 메르어트 마르퀴스 퀸즈파크는 2017년 3월에 열었다. 그 전에는 방콕에서 이미 정평이 나 있던 로컬 호텔이었다. 로비의 거대한 기둥은 리모델링 전부터 있던 것을 메리어트의 방식으로 보존한 결과였다. 어쩌면 그 기둥을 대하는 메리어트의 자세에서 이 호텔의 정체성과 가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태국과 방콕의 전통을 그대로 끌어안으면서 그들의 장점과 철학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과거와 현재, 로컬과 글로벌이 자연스럽게 녹아 섞여 있었다.

메리어트 마르퀴스 퀸즈파크의 규모는 정문부터 어마어마하다. 수영장도 이렇게 세련됐다.

‘마르퀴스’는 메리어트의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킨 호텔만 얻을 수 있는 이름이자 브랜드다. 총 일곱 가지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1. 도시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2. 1000개 이상의 객실과 9300㎡ 이상의 규모를 갖춰야 한다. 3. 디자인 자체로 랜드마크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4. 물리적, 감성적으로 손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요소를 고루 갖춰야 한다. 5. 미팅 공간에는 최신 기술과 조명이 적용돼 있어야 하며, 용도에 맞게 효율적으로 변경이 가능해야 한다. 6. 레스토랑은 4개 이상이어야 한다. 7. 수영장과 피트니스 클럽을 포함한 부대시설도 제대로 갖춰야 한다.

메리어트 마르퀴스 퀸즈파크는 이 일곱 가지 기준을 차고 넘치게 충족시킨다. 방콕 스쿰빗은 여행자의 거의 모든 감각과 필요를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는 중심지다. 1360개의 객실과 6개의 레스토랑을 갖췄다. 3개의 볼룸을 포함해 총 35개의 미팅 겸 이벤트 공간이 있다. 피트니스 센터는 24시간 운영한다. 스파와 수영장은 최고 수준이다. 디자인? 그 위용 자체로 지역을 압도하면서 주변의 어떤 분위기도 해치지 않는다. 거대하지만 온화하고, 지극히 세련됐는데 그 어떤 과거도 부정하지 않는다. 호텔을 나서면 2차선 도로가 있다. 그 도로 건너에 다양한 레스토랑과 펍이 있다.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을 것 같은 가게들이 골목의 표정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오른쪽으로 걸어도, 왼쪽으로 걸어도 방콕 본연의 분위기에 바로 빠져들 수 있다. 10분, 20분 이상 주변을 걷다가 고개를 들고 뒤돌아보면 걸어온 쪽에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이 나를 내려다보면서 보호하듯 서 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규모, 그렇게 온화하게 포용하는 정체성.

로비에는 리모델링 전부터 있던 웅장한 기둥을 그대로 살렸다. 덕분에 태국의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호텔의 모든 요소가 일관되게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레스토랑 고지 키친&바에선 정통 태국 요리를 낸다. 하지만 고집스럽지 않다. 조금 더 넓은 품으로 태국 요리를 처음 접하는 어떤 문화권의 여행자라도 쉽게 호감을 느낄 수 있는 요리를 만든다. 소바 팩토리에서는 일본 소바 장인이 직접 만드는 수제 소바를 낸다. 쇼유에 살짝 적셔 ‘호로록!’ 큰 소리를 내면서 먹는다. 파고다에서는 광둥식 중식을, 시암 티 룸에서는 태국의 고급 전통차와 커피를 접할 수 있다. 동양과 서양, 로컬과 글로벌이 적극적으로 만났는데 그 누구의 목소리도 크지 않다. 최고의 결과물을 위해서 양보하고 주장하길 반복한 후에 가까스로 찾은 균형이다.

레스토랑 소바 팩토리의 장인 미수호 나카오.

메리어트 마르퀴스 퀸즈파크의 태국 음식은 친절하고 나긋나긋하다.

아침마다 고지 키친&바에서 조식을 먹었다. 호텔과 바로 이어져 있는 벤차시리 공원에서 산책했다. 이 공원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객실에서도 내려다보였다. 여행과 일상이 만났을 때만 느껴지는 사랑스럽고 여유있는 풍경. 좀 멀리 가고 싶을 땐 방콕 지하철 BTS 프롬퐁 역으로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된다. 룸피니 공원은 약 3.6km 떨어져 있다. 거기서 바로 이어져 있는 랑수언 로드에선 한국 여행자에게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다양한 로컬 식당과 카페, 쇼핑센터를 만날 수 있다. 호텔이 중심에 있는 지도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좀 바빠지기도 한다. 수쿰빗에 있는 메리어트 마르퀴스 퀸즈파크에선 어디로든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어서다. 이거야말로 좋은 호텔의 첫 번째 미덕 아닐까?

메리어트 마르퀴스 퀸즈파크에 머무는 동안 이매진 드래곤스의 콘서트도 열렸다. 약 400명만 참여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오붓한 규모의 공연이었다. 이매진 드래곤스는 2013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얼터너티브 록 부문과 2014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록 퍼포먼스 상을 수상한 밴드다. 이런 밴드의 공연이 이렇게 알찬 규모로 열리는 호텔 체인이 또 있을까? 이 공연은 메리어트 인터네셔널 그룹이 유니버설 뮤직 그룹과 체결한 글로벌 마케팅 파트너십의 결과이기도 하다. 메리어트 리워드 회원, 스타우드 프리퍼드 게스트 회원이 되면 적립한 포인트에 따라 수영장 옆에서 칵테일파티를 열고, 곧이어 콘서트를 관람하는 주말 저녁을 설계해볼 수 있다. 훌륭한 호텔은 안정적인 숙식을 바탕으로 문화와 감각까지 책임진다. 모든 게 여행의 일부다.

유니버설 뮤직 그룹과의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열린 이매진 드래곤스의 콘서트.

호텔 바에서 수준급의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이날 이매진 드래곤스 파티 분위기도 그랬다. 방콕 ‘하이 소사이어티’가 세대 구분이 무색하게 모여 있었다. 아들이나 딸을 데리고 콘서트를 즐기는 부모님도 여럿이었다. 마침 태국 여행 중에 콘서트에 참여한 서양 관광객, 방콕에 살면서 이 콘서트를 즐기려고 호텔을 찾은 가족 또한 400석 규모의 스탠딩 공연장에 섞여 있었다. 멀리 보이는 호텔 객실에서도 공연장을 내려다보면서 가볍게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매진 드래곤스와 그들을 둘러싼 모든 사람의 쾌락이 공연장 안에 있었다. 호텔이 손님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은 어디까지일까? 이날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즐긴 아들과 딸에게 부모님은 어떤 존재였을까? 메리어트 마르퀴스 방콕에서, 가족들은 조금 더 가까워졌다.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서 웃고 있는 딸의 손을 잡고 공연장을 나가는 아빠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메리어트 마르퀴스 퀸즈파크의 M 스위트. 과장 없이, 내 방처럼 편안하다.

방콕 도심과 호텔 안에서 이런 식으로 며칠을 보냈더니 객실이 내 방 같았다. 단정하고 합리적인 인테리어, 피부가 닿는 거의 모든 곳에서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질감 또한 내 것 같았다. 온통 낯선 여행지에서 결국 내 공간처럼 느껴지는 호텔을 떠나는 경험. 좋은 호텔은 이런 식으로 여행의 중심을 도시에서 방으로, 이국적 풍취에서 집 같은 편안함으로 바꿔놓는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길고 길었다. 실제로 멀거나 차가 막혀서가 아니었다. 메리어트 마르퀴스 퀸즈파크를 떠나면서 이 여행도 끝난다는 사실만이 명백해서였다. 호텔을 떠나는 일이 곧 방콕과 이별하는 일이었다. 방콕과 헤어지고 나면 서울과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벌써부터 마음이 부산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4. 에필로그, 12년의 방콕

어떤 도시는 여행지로서의 그 흔한 정체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선다. 방콕은 늘 여행지라는 말로는 모자라는 도시. 그보다는 절박한 탈출구, 보장된 안정과 평화, 오래전에 약속한 것 같은 환대와 안락의 증거였다. 그러니 서울에서의 지극히 부산한 스트레스와 개인적인 성장을 근거로, 어쩌면 갈 때마다 조금씩 다른 방콕을 체험하게 된다.

2005년에 카오산 로드에서 묵었던 방의 가격과 2017년에 메리어트 마르퀴스 퀸즈파크에서 묵었던 방의 가격을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그동안 내가 감당해온 시간과 방콕에서 보낸 즐거움의 결은 또렷하게 달라졌다. 그 세세한 차이를 돌아보는 것 또한 여행의 일부일 것이다. 방콕은 갈 때마다 다채롭고 매혹적인 채 여전히 풍성했다. 다음 방콕은 언제가 될까? 그땐 또 다른 방콕을 체험할 수 있을까? 어쩌면 여행에서 체험하는 도시의 깊이로부터 개인의 성장과 시간을 가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도시가 마침 방콕이라면, 수쿰빗에 있는 이 든든한 호텔의 이름을 적어둘 필요도 있을 것이다.

위치

199 Sukhumvit Soi 22, Klong Ton, Klong Toey Bangkok 10110

홈페이지

http://www.marriott.com/hotels/travel/bkkqp-bangkok-marriot-marquisqueen’s-park

  • Kakao Talk
  • Kakao Story

Credit

에디터
출처
25918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