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꿈꾸고, 사랑하기 위하여

올해의 마지막 걸작, [라라랜드]가 감동적인 이유에 관하여.

다시 꿈꾸고, 사랑하기 위하여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1월호

“나는 인생의 위기를 좋아해. 펀치를 맞아주는 거지. 계속 구석에 몰리다가 마지막에 한 방을 날릴 수 있게 해주니까.”

<라라랜드>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감독 데미안 차젤레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처럼 들린다. 학창 시절, 재즈 드러머가 되길 꿈꿨던 데미안 차젤레는 재능의 한계를 체감하고 하버드 대학교 영화 연출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일찍이 뮤지컬 영화에 매혹됐던 그는 대학 시절부터 구상했던 <라라랜드>의 영화화를 꿈꿨다. 하지만 유명한 오리지널 넘버가 없는 뮤지컬 영화에 투자할 영화사는 없었다.

결국 자신의 경험을 투영해 만든 <위플래쉬>를 연출했고, 잭팟이 터졌다. 330만 달러에 불과한 제작비를 훌쩍 뛰어넘는 5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둔 것이다. 이 성공은 <라라랜드>를 위한 담보로서 값어치가 충분했다.

데미안 차젤레는 <라라랜드>에서 과감하고 도전적인 신을 구상했다. 특히 원신원컷으로 구현된 오프닝 시퀀스부터 압도적이다. 대부분의 관객은 이 신이 어떤 트릭으로 구현된 것인지 궁금해하겠지만 이 신은 오롯이 진짜다.

세 개의 쇼트를 연결해 원 테이크 신처럼 보이게 만든 절묘한 편집술이 동원됐지만 크레인을 동원한 고공 촬영술과 무용수들의 열연만으로 완성했다. 주말 이틀 동안 LA 외곽의 고가도로를 통제하며 수많은 인파와 차량을 동원해 시간에 쫓기듯 촬영했지만 끝까지 원 테이크 촬영을 고수하며 진행했다.

촬영 전 고가도로에서의 동선을 대비해 무용수들과 숱한 리허설을 거듭해야 했고, 첫 촬영 중에 무용수가 카메라를 매단 크레인에 머리를 부딪힐 뻔한 아찔한 상황도 있었지만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무용수들의 집념이 진짜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다.

“전통적인 할리우드 뮤지컬을 사랑하며 자란 만큼 우리가 지금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당시의 영화 제작 형식을 반영해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그 활기를 되찾고 싶었다.”

그렇다. 데미안 차젤레의 꿈이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지방 소도시에 있는 테마파크 비슷한 것을 연상시키는 <라라랜드>라는 국내 개봉명은 <LA LA LAND>라는 영문 제목을 음역한 것이다. 보다시피 제목에 LA가 세 번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LA, 직접적으론 할리우드에 대한 은유적인 별명이다.

할리우드는 기회의 땅이다. 수많은 이들이 스타가 되기 위해 부푼 꿈을 안고 할리우드로 향하지만 대부분은 잡을 수 없는 별의 높이와 인생의 쓴맛만 체감한다. 그래서 ‘라라랜드’는 ‘환상의 세계’ 혹은 ‘비현실적인 허상’을 의미하는 단어가 됐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비현실적인 허무 속에서도 별처럼 반짝이는 꿈을 안고 신음하는 영혼들을 위한 송가에 가깝다.

정체된 고가도로 위에 멈춰 선 차를 수평으로 지나치며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오프닝 시퀀스의 카메라 너머로 각기 다른 차 안의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저마다 다른 음악을 듣고 흥얼거리는, 각기 다른 얼굴의 사람들. 그렇게 수평으로 이동하던 카메라가 사선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한 여성의 얼굴을 비추자 기다렸다는 듯이 경쾌한 멜로디가 시작되고 그 여성이 차에서 나와 노래를 부르며 카메라를 향해 걸어온다.

동시에 내린 모든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고 노래를 이어받는다. 우연히 스크린 속 풍경에 매혹된 열일곱 살 무렵의 기억을, 자신을 이 번잡한 도시까지 다다르게 만든 유년 시절의 꿈을, 그리고 언젠가 영화의 주인공이 될 자신을, 그렇다면 열일곱 살의 나와 함께 영화를 봤던 네가 나를 보게 될 것임을.

그렇다. <라라랜드>는 꿈에 관한 영화다. 그런데 단지 꿈을 이룰 ‘나’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꿈을 이룬 나를 보게 될 ‘너’를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라라랜드>는 관객에게 말을 거는 영화란 말이다.

만약 <라라랜드>를 봤다면, 영화가 시작될 때 정사각형 비율인 흑백의 화면이 좌우로 넓어지며 컬러로 바뀌는 것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스크린을 꽉 채운 영문의 세 단어를 목격했을 것이다.

“Presented in cinemascope(시네마스코프로 제공됩니다).”

여기서 시네마스코프는 1950년대에 유행한 영화 상영 비율을 의미한다. 원래 1950년대 이전까지의 영화는 대부분 1.37:1의 비율, 그러니까 정사각형에 가까운 프레임으로 상영했지만 1950년대에 급속도로 발전한 TV 산업에 위협을 느낀 할리우드에서는 영화만의 장점을 보여줄 수 있는 전략이 필요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시네마스코프다.

정사각형 비율의 TV 브라운관과 차별된 스펙터클을 구현하기 위해 스크린의 가로 폭을 늘린 2.55:1의 상영 비율을 선택한 것. 결국 시네마스코프는 영화만의 어떤 것을 대변하는 선언이었다.

<라라랜드>가 이를 재현하는 것도 그렇다. 지금 객석에 앉아 있는 당신에게 특별한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선언. 관객을 매혹시키는 꿈이 될 것이라는 약속.

흥분의 도가니라 할 만한 오프닝 시퀀스 이후 천연덕스럽게 차분한 현실로 돌아온 고가도로 위로 시선을 들이미는 카메라에 두 남녀가 차례로 등장한다. 그 이후로 <라라랜드>는 미아(엠마 스톤)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꿈과 사랑을 좇아간다.

미아는 볼더시티라는 한적한 도시에서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할리우드로 넘어와 오디션을 전전하는 여자다. 재즈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인 세바스찬은 대중에게 외면받는 스탠더드 재즈의 현실을 개탄하며 정통 재즈를 연주하는 클럽을 열겠다는 꿈을 꾸는 남자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사랑에 빠지는 건 단지 서로를 매력적인 이성으로 인지했기 때문이 아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의 꿈을 이해하고 응원한다.

배우가 되기 위해 시시껄렁한 오디션을 전전하는 미아에게 세바스찬은 루이 암스트롱이 되라 말한다. 단순한 트럼펫 연주자가 아닌 자신의 음악을 통해 전설적인 뮤지션이 된 루이 암스트롱처럼 당신의 이야기를 쓰고 연기해보라 권한다.

그래서 미아는 직접 무대에 올라 연기할 수 있는 희곡을 쓰기 시작한다. 언젠가 재즈만을 위한 클럽을 열겠다는 세바스찬의 꿈도 미아의 신뢰를 통해 고무된다. 자신을 위해 재즈 클럽의 이름까지 짓고 그 꿈을 응원하는 미아로 인해 삶을 긍정하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희망을 불어넣는다. 함께할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이뤄지지 못한 꿈은 위태로운 현실 위를 건너야만 한다.

오래전 함께 음악을 했던 친구의 권유로 새로운 밴드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하게 된 세바스찬은 이상과의 괴리에 잠시 갈등하지만 안정적인 내일을 구상할 수 있다는 합리로 이를 인내한다. 재즈를 꿈꾸던 세바스찬에겐 미아라는 꿈이 생겼고, 무엇보다 소중해졌다. 그래서 안정적인 현실을 위해 잠시 꿈을 외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세바스찬을 흔들어 깨우는 건 미아다. 미아는 세바스찬에게 다시 꿈을 꾸라 말한다. 하지만 세바스찬은 이것이 나의 현실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다 결국 무명 배우의 주제 넘은 참견이라는 뉘앙스를 남긴다.

선을 넘었다. 순간적인 화를 이기지 못한 폭언은 진심이 아닐지 몰라도 금이 가버린 마음은 진실로 각인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서로의 꿈이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었지만 사랑을 지키기 위해 꿈을 포기했다는 진심이 되레 사랑을 무너뜨린다. 본래의 진심은 속절없을 뿐이다.

<라라랜드>의 결말이 가슴을 저미는 건 그래서다.

우연히 들어선 클럽에서 오래전 자신이 응원하던 꿈의 징표를 보게 된 미아의 얼굴에서, 클럽의 무대에 올라 객석에 앉아 있는 미아를 발견하고 잠시 말문을 잊게 되는 세바스찬의 얼굴에서 지나간 계절이 떠오른다.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으로, 가을로 계절이 지나며 쌓아온 그 시절의 꿈과 사랑이 거짓말처럼 지워졌다는 것이 실로 형형해진다.

처음으로 함께 걸어 올라간 언덕에서 티격태격하다 함께 발을 맞추고 구르며 노래하던 순간의 흥겨움이, 처음으로 함께 간 영화관에서 가까스로 손을 잡고 입을 맞추려던 떨림이, 늦은 밤에 들어선 천문대에서 함께 날아올랐던 우주의 황홀함이,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노래하며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빛나고 있다’며 활짝 웃던 그 미소가, 배우라는 꿈과 재즈라는 꿈이 너와 내가 함께하는 우주 안에서 형형하게 빛날 것이라 믿었던 어떤 미래가.

<라라랜드>의 결말부가 마음을 미어지게 만드는 건 그래서다. 그들이 함께 꿈꾸던 미래가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렸다는 사실을 목도할 때 보는 이의 억장도 함께 무너진다.

그럼에도 <라라랜드>의 결말은 보는 이의 감정을 무중력으로 띄워 올린다. 벅차오르는 환희를 체감하게 만든다. 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의 비통한 눈빛이 끝내 미소로 다다르는 순간, 비애와 환희로 감정을 수놓는 불꽃놀이 같은 여운이 폭발한다.

<라라랜드>를 비범한 결과물로 되새기게 만드는 건 아무래도 결말부다.

한때 당연하리라 믿었던, 우리라는 우주로 삶을 팽창시키진 못했지만 결국 서로가 응원하던 꿈을 완성해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별이 됐음을 확인하는 마지막 순간, 우리의 지난 사랑이 값진 세월을 일궈낸 것이라는 위안을 얻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그 사랑이 너와 나를 별처럼 빛나게 만드는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열정에 끌리게 돼 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키니까.”

그렇다. 우리는 <라라랜드>를 통해 벅찬 꿈을 꾸던, 뜨겁게 사랑했던 계절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당신이 있던 그 계절 덕분에 나와 당신이 빛나는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음을, 당신과 함께한 그 시절 덕분에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믿게 만든다. 꿈꿀 수 있다는 용기와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양손에 쥐여준다. 그러니 용기와 희망을 쥐고 살아가야 한다.

다시 또, 꿈꾸고 사랑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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