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대통령으로 선택할 것인가

제대로 선택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될지도 모른다. 전망은 썩 밝지 않다.

얼마 전 도쿄 출장을 다녀왔다. 예년보다 추운 날씨 탓에 벚꽃이 늦게 피었다. 덕분에 아름다운 도쿄를 볼 수 있었다. 계절마다 도쿄를 찾는데 갈 때마다 더 많은 활력이 도시를 채운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까지는 도쿄의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을 주로 만났다. 이번에는 도쿄의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일본인들도 만났다. 일본인의 마음에 근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일본의 잘나가는 금융회사들은 마루노우치에 있다. 도쿄역과 황궁 사이에 위치한 마루노우치는 일본 경제의 중심이다. 뉴욕의 맨해튼 5번가와 비슷하다. 일본 최대 증권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스시를 마주하고 앉아 물었다.

“도쿄는 도시가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올 때마다 더 많은 활력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외국인인 나만의 착각인가, 아니면 일본인인 당신도 느끼는 것인가?”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동감한다. 올림픽을 계기로 도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고용 시장도 좋다.”

저녁에는 세계 최대 자산 운용 회사의 아시아 리서치 헤드를 시티 센터 41층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시오도메와 긴자, 도쿄 타워가 내려다보이는 야경이 아름다웠다. 그가 내게 물었다.

“한국 대통령은 탄핵당해 감옥에 갔고, 이제 대통령은 누가 되는 건가?”

서울에 돌아오고 얼마 안 돼 첫 번째 대선 후보 토론회가 있었다. 유승민의 압도적 디테일과 주제 장악성에 놀라고 말았다. 토론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유승민과 다른 후보들과는 지적인 레벨이 달랐다. 다른 후보들이 준비해 온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반면 유승민은 질문에서 대답까지 자기 언어로 일관했다.

논증은 어렵고 취향을 욕하는 것은 쉽다. 사람들은 주장을 논증하는 대신 취향을 검증하려 든다. 누군가를 적폐 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쉽다. 하지만 적폐 세력이 무엇인지 논증하는 것은 어렵다.

일관되게 사드 배치를 주장한 유승민은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을 바꿔 국가 간 합의라 수용하기로 했다는 안철수에게 역시 국가 간 합의인 위안부 합의는 어떻게 할 것이냐 물었다. 안철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문재인도 사드 문제에 대한 답변은 오락가락하다 결국 다음 정권에 넘기겠다고 했다.

나는 유승민이 김대중 대북 정책의 불법성을 정확히 지적한 것에 놀랐다. 나는 김대중을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북 정책의 위법성은 그의 탁월함을 가리는 부분이다. 국민들이 수용하지 못하는 정책을 김대중은 과감하게 결행했고 결국 노무현 정부에서 수사와 처벌을 받았다.

탁월한 유승민과 자기 색깔을 보인 심상정과 대조적으로 실망스러웠던 것은 가장 지지율이 높은 두 후보였다. 문재인은 준비해 온 내용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안철수는 자기 생각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에는 실패했다. 대선 토론회를 보고 다음 날까지 암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다들 무슨 자신감으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일까.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 에스콰이어

최순실 스캔들이 벌어지기 전까지 나는 안희정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 예상했고 또 지지했다. 안희정이 아니면 민주당의 집권이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설령 집권하더라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았다.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박근혜는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에 집권했다. 미국의 주택 시장 붕괴가 초래한 금융 위기에서 벗어나 세계경제는 회복되고 주식 시장은 크게 올랐다. 폭락했던 주택 시장도 회복되었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자신의 몫을 더 노골적이고 집요한 방식으로 추구한다. 국제정치는 리더십이 아닌 거래의 현장으로 바뀌고 있다. 그동안의 세계경제가 낮은 금리를 통해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경제를 떠받칠 수 있었다면 미국의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서 세계경제는 좀 더 복잡한 셈법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미국이 통화 긴축을 할 때 통화 완화로 대응하면, 모든 조건이 같을 때 그 나라의 통화는 약세가 된다. 트럼프처럼 모든 것이 거래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행동은 인위적으로 자국의 통화 약세를 유발하는 것으로 공격의 대상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중국과 일본과 한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2017년의 한국 대통령은 2012년과 비교하면 너무나 어려운 시험문제를 받아 들게 되었다.

나는 그 시험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이 안희정과 유승민밖에 없다고 보았다. 박근혜가 실패한 정권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유승민이 집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순실 스캔들이 터지면서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안희정이 민주당 경선에서 이겼더라면 대선은 싱겁게 끝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박근혜의 탄핵으로 안희정의 활주로가 너무 짧아져버렸다. 사람들이 후보 개인의 역량에 집중하기보다는 진영의 선명성에 더 집착하게 되었다. 정권 교체의 질보다는 정권 교체의 사실에 매몰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안희정은 세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첫째는 ‘대연정’ 발언이고 둘째는 ‘선의’ 발언이며 셋째는 구체적 경제정책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다. 협치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으면 될 것을 ‘대연정’으로 너무 멀리 나갔다.

박근혜를 지지했던 이들의 선의를 이해한다고 하면 될 것을 박근혜의 선의에 관해 이야기해버렸다. 그리고 경제정책에 있어서 구체성을 포기하면서 각론의 부재를 낳았다. 경쟁 상대인 문재인의 가장 큰 약점인 경제정책을 공격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2012년 대선에서 열렬한 문재인 지지자였다. 하지만 지금 문재인의 정책은 당시보다도 훨씬 퇴행해버렸다. 80만 명의 공공 근로자 채용과 가계 부채 총량 관리는 한국 경제에 치명적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그의 모호한 태도는 불안하다. 이런 정책들을 내놓은 후보를 단지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는 당위만으로 지지해도 되는 것일까 계속 고민 중이다.

한 달 동안 문재인이 해야 할 일은 이런 이상하고 비상식적인 정책들을 가능한 한 빨리 회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적폐 청산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근혜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적폐 대상으로 공격하는 것은 자신의 지지율을 40%로 가두는 실수다.

안희정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는 데 실패함에 따라서 안철수에게는 기회가 왔다. 안철수가 해야 할 일은 문재인이 자신의 문제 많은 정책을 회수하기 전에 그런 정책이 지닌 황당함과 모순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안철수는 당론과 달리 사드 배치에 찬성하고 반문 단일화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원칙이다. 전략적으로 나을 뿐 아니라 그게 옳은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홍준표, 유승민의 표는 상당 부분 흡수될 것이다. 나는 문재인이 이기면 아슬아슬하게 이기겠지만 안철수가 이기면 다소 큰 폭으로 이길 것으로 본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 에스콰이어

박근혜를 무너뜨린 것은 최순실 스캔들이지만 지지층마저 등돌리게 만든 것은 경제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득세를 내지 않는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48%였던 것이 이제는 52%에 달한다. 그럼에도 세금은 작년에만 10조원이 더 걷혔다.

세율을 높이지 않았지만 세금이 더 걷힌 이유는 국세청이 자의적인 방식으로 기업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많은 기업이 반발해 조세 심판이 급증하고 정부가 지는 경우도 늘었지만 그래도 세금은 더 거둘 수 있었다. 지지층에 대한 세금 폭탄으로 허약해진 박근혜에 대한 지지는 최순실 스캔들로 무너져 내렸다.

금리 인상에 미온적이고 초과 세수를 달성한 한국 경제는 통화와 재정 모두 긴축 상태였다.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성장을 하는 장기화된 장기 침체의 경제를 ‘저성장의 시대’로 포장하며 버티고 있다.

문제는 지금 공약으로 제시되는 경제정책의 대부분이 장기 침체를 벗어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을 오히려 낮추고 경기 순환적 대책으로는 미흡한 것이 많다. 돈 쓰는 공약을 주로 제시하면서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지출 효율성을 높여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현실적으로는 당장 몇 조를 절약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 포퓰리즘과 가까워진다. 어느 쪽이 더 긴급하고 꼭 필요한 지출인지 판단하는 수밖에 없는데, 결국 대부분의 정책이 실행되지 못할 것이다.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3년에 추진했다가 2억 정도 날리고 접었던 공약 중 ‘반값 식당’이 있다. 밥 굶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추진한 정책을 접게 된 이유는 물론 주변 식당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시민 입장에서 정부가 반값 슈퍼, 반값 학원, 반값 미장원, 반값 카센터를 운영하면 좋아할 일일까? 결국 언젠가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다.

사립 유치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병설이든 단설이든 국가가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하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치원을 의무교육 과정으로 만들지 않는 한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할 때는 사립 유치원 운영자를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연회비 400만원의 호텔 수영장보다 월 몇만원을 내는 동네 복지관 수영장 시설이 더 좋다면 동네 복지관은 운이 좋은 소수만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은 정의롭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지만 대중 영합의 정치 세계에서는 종종 일어난다.

반값 등록금 정책이 공약된 이후 대부분의 대학이 몇 년째 대학 등록금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대학도 바보는 아니어서 가격을 낮추자 질을 낮추면서 대응했다. 학업 일수를 줄이고 교수들을 강사로 대체했다. 서울시립대 학생들의 대다수가 박원순 시장의 공짜 등록금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수업의 질과 학교 수준이 자꾸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수의 영재를 위한 학교에 대한 투자에 반대하지 않는다. 국가 전체로 보아 이익이 비용보다 훨씬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수의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및 의료 시설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는다. 저소득자를 위한 윤리적 정책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국공립 유치원에 들어가는 것이 진정 로또라면 그런 로또의 당첨률을 늘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당첨될 수 있게 하거나, 아니면 아예 그런 불공정한 기회를 없애라고 하는 것이 옳다.

국공립 유치원을 늘려야 한다면 저소득층이 밀집되어 있는 곳에 단설 국공립 유치원을 늘리는 것이 맞다. 저소득자를 위한 복지 및 의료 시설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약 그런 정책을 펼치기 어려운 지역이라면 민간 유치원에 다닐 수 있도록 바우처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유치원을 압도하는 국공립 유치원을 만들어 로또 뽑듯이 나누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효율적으로도 옳지 않다.

하지만 국공립 유치원을 늘려달라는 목소리 이외에 다른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런 목소리에 정치인들은 국공립 유치원을 늘리겠다고 호응한다. 결국 모든 국가는 국민의 수준에 어울리는 리더를 갖게 될 뿐이다.

일본 국민들은 20년간의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지만 실패했다. 그들로 하여금 변화를 위한 몸부림을 선택하게 만든 것은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이었다. 우리는 아직 그만큼의 바닥까지는 내려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선 토론회가 끝난 후 나는 유승민이 2015년 4월 8일 국회에서 한 연설을 다시 들었다. 이 연설을 일주일 전 문재인 대표가 했더라면 아마 역사에 남는 명연설이 되었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박근혜(아마도 최순실)의 명령을 받아 유승민을 쫓아냈고 얼마 후 자폭했다. 어떤 인간을 평가하는 데 그가 한 말과 그가 쓴 글을 무시해도 상관없다는 것은 정치가 과열되고 이성이 마비될 때 흔히 나오는 말이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다. 모든 것이 2012년과 너무나 똑같다. 다시 잃어버린 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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