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박근혜를 만들었는가 – 10. JTBC

누가 박근혜를 만들었는가

누가 박근혜를 만들었는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2016년 12월호

10. JTBC

헬조선이 청와대를 포위해가는 사이에 결정타를 날린 건 JTBC였다.

10월 19일 수요일이었다. JTBC는 최순실의 최측근 고영태의 말을 인용했다.

“회장이 제일 좋아하는 건 연설문 고치는 일이다. 연설문을 고쳐놓고 문제가 생기면 애먼 사람을 불러다 혼낸다.”

여기서 회장은 측근들이 최순실을 부르는 호칭이다. 버시바우 리포트가 떠돌고 있던 시점이었다.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을 고쳤다는 사실은 청와대 기밀 유출이라는 위법성 따위는 가볍게 넘어서는 폭발력이 있었다.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쳤다는 건 박근혜가 정말 최순실의 아바타이고 최순실이 대통령이라는 물증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청와대가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만다.

JTBC 보도가 있고 이틀 뒤인 10월 21일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회 운영위원회 국감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믿을 사람이 있겠느냐. 기사를 봤을 때 실소를 금치 못했다. 봉건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정윤회 게이트 때부터 지켜져온 우병우 매뉴얼에서 벗어나는 발언이었다. 청와대는 결정적인 문건이 유출되면 진위 여부에 대해선 철저하게 함구했다. 대통령이 국기 문란으로 몰고 가면 유출 경로를 수사해 관련자들을 잡아들이는 방식이었다.

이번엔 달랐다.

이원종 비서실장이 JTBC 보도 내용을 정면으로 부인해버렸다.

외통수였다.

이상한 건 <조선일보>가 JTBC 보도를 거들고 나섰다는 점이다.

10월 21일 <조선일보>는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 연설문에서 가끔 이상한 부분이 나온 것은 최순실의 연설문 수정 때문 아니냐는 의문이 계속 이어졌다”라고 썼다. 2015년 어린이날 행사에서 박 대통령이 발언한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를 예로 들었다.

뭔가 있었다.

주말이 지난 10월 24일 월요일 아침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느닷없이 개헌 카드를 꺼내 들었다. 평소 블랙홀이라며 거부했던 개헌 카드로 최순실 게이트 의혹을 진공 청소해버리겠다는 의도였다.

10월 23일 일요일 JTBC가 ‘연설문 수정에 대한 정황을 갖고 있다’고 보도한 사실을 알고 있던 기자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청와대가 개헌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하는 사건의 실체가 있었단 말이다.

10월 24일 저녁 JTBC <뉴스룸>은 최순실이 사용했던 태블릿 PC를 공개했다. 그 안엔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최순실이 수정한 증거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태블릿 PC에는 대통령 연설문과 국가 기밀문서가 빼곡했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한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까지 최순실의 손을 거쳤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설문만이 아니었다.

국무회의 자료와 인사 관련 자료와 대북 자료에 외교 문서까지 극비 문서가 200개가 넘었다. 최순실이 이 모든 문서를 열어봤다면 최순실이 국정에 미친 영향력은 대통령급이었단 얘기가 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는데 실제 국정운영은 최순실이 했단 말이다.

청와대는 <조선일보>한테는 완승했다.

<한겨레>와는 무승부였다.

JTBC한테는 완패당했다.

사실 JTBC는 최순실 취재 경쟁에 9월 말에나 뛰어들었다. 뒤늦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청와대와 벌이던 전투의 흔적이 산재해 있었다. JTBC 특별취재팀인 미르팀이 사건의 실마리를 잡은 건 최순실의 최측근 고영태를 찾아내면서부터다.

또 고영태였다.

은밀한 여인 천하를 무너뜨린건 어쩌면 안방을 드나들었을 남자였다. 고영태의 증언을 확보했지만 물증이 없었다. 태블릿 PC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입증할 수 있는 스모킹 건이었다.

10월 24일 JTBC 보도는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청와대를 항거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그래도 의문은 남았다. 도대체 왜 대통령 박근혜는 강남 아줌마 최순실한테 이토록 국정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느냐는 말이다.

누가 박근혜를 만들었는가 – 11. 주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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