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분노는 옳다

쉽게 잦아들 리 없고,그래선 안 되며, 오히려 조금 더 과격해야 하는 목소리가 지금 막 터지기 시작했다.

남성 독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남성지에서 이런 문장으로 서두를 떼는 게 적합한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말해보자. 우리 중 대다수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인간의 표준형은 남자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언어생활부터 생각해보자. 전통적으로 여성의 성비가 높은 직종인 간호사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직업을 지칭하는 단어의 기본 성별은 남자이며 대상이 여성일 때만 그 앞에 ‘여’라는 성별이 붙는다. ‘여기자’라는 단어는 익숙해도 ‘남기자’라는 단어는 낯설고, ‘여배우’라는 표현은 자주 써도 ‘남배우’라는 표현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어만 그런 게 아니다. 그/그녀 또한 he/she의 일본 역어인 彼/彼女를 중역한 결과물이고, 인류를 지칭하는 영단어 또한 ‘humankind’보다 ‘mankind’의 사용 빈도가 훨씬 더 높다. 인류의 절반가량이 여자인데 왜 언제나 표준형은 남자였을까? 마치 진짜 이유를 모른다는 듯 순진한 척할 생각은 없다. 참담하지만, 나 또한 꾸준히 역사 속에서 여성의 존재를 지우고 배제해온 이들의 후예이자 일원임을 인정하는 수밖에.

문명의 기초가 되는 언어생활부터 이 모양인데, 그에 기반을 둔 방송이라고 크게 다를 리 없다. 한국 방송은 대부분 남성을 기본형으로 전제한 상태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 예능인들이 모여 포기하지 않고 무모한 도전을 이어가는’ 방송이고, <해피선데이> ‘1박 2일’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유쾌한 여섯 남자가 여행하는’ 방송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타 국적 소유자들의 토크쇼 또한 여자들이 모였을 때는 그 제목이 <‘미녀’들의 ‘수다’>였는데, 남자들이 모이자 <비‘정상회담’>으로 격상되었다. 심지어 엄마들이 전담할 때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돌봄 노동도 남자가 하면 갑자기 프로그램이 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나 <냉장고를 부탁해> <살림하는 남자들>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그간 늘 돌봄 노동을 전담해온 여자들의 노고는 지우고, 그 자리를 채우는 남자들에게 새삼스레 박수를 보낸다. 아니, 그간 여자들이 요리하고 애 보고 빨래할 때는 뭐했대? 예능만 그런 게 아니다. 뉴스를 진행하는 메인 앵커는 백에 아흔아홉이 남자고, 심층 취재 보도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내레이터도 남자다.

TV 속에서 여자의 자리는 늘 ‘꽃’이자 ‘애교 자판기’였다. 집 거실이나 사무실 한쪽에 놓여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 꽃. 여성 앵커를 가리켜 ‘아홉 시 뉴스의 꽃’이라 하고, 남자들로 가득한 예능에 고명처럼 여자 멤버를 하나 얹고는 ‘홍일점’ 운운하고, 토크쇼에 나오는 여성들에게 “시청자들을 위해 애교 한번 발사해달라” 같은 멘트를 하면서도 그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TV를 가득 메웠다. 물론 장동민처럼 작정하고 자신은 떠들고 생각하고 설치는 여자가 싫다고 이야기한 사례가 아닌 이상에야, 그들이 여성 일반에 대해 엄청난 악의를 가지고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그저 그게 익숙하니까, 여자는 남자에 비해서 실력이 열등하고 예능에 적합하지 않다는 식의 사고방식에 너무 오래 무비판적으로 노출되었으니까 그랬겠지. 하지만 악의가 있으나 없으나 그 결과가 배제와 차별이라는 사실은 딱히 변하지 않는다. 방송은 너무 오래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남자들만이 향유하는 매체인 상태를 벗어나지 않았고,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서는 조금 더 일찍 성 평등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넷플릭스로 갈아탔다는 젊은 여성 시청자들이 늘어났다.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핑계는 늘 다채로웠다. 예능은 여자 연예인들에게 남자 연예인들처럼 진창에 구르고 얼굴에 스타킹을 쓰고 망가지는 일을 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느냐 했고, 드라마는 TV 주 시청자층이 여자들이니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 배우들을 전진 배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뉴스는 근 30년째 백지연과 김주하 두 명을 예로 들며 “우리도 여자 메인 앵커 내세운 적 있다”는 말로 수십 년간 메인 앵커 자리에 남자를 붙박이해뒀던 역사를 모르는 척했다. 물론 백지연과 김주하는 뛰어난 앵커였고, 그들이 메인 앵커를 맡았던 뉴스의 시청률이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던 시절도 있었다. <해피선데이> ‘MC 대격돌 여걸 식스’ 같은 여자 예능이 굳건히 버티고, 이금희나 정은아, 허수경 같은 여자 전문 MC들이 활약하고, 김혜수가 교양 보도 프로그램 를 진행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우리는 그 시절에서 너무 멀리 와버렸다. 2016년 이후 여자 예능이 조금씩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걸 포함해서 셈을 해도, 우리는 그 시절로부터 너무 아득하게 퇴보했다.

온스타일 채널이 선보인 두 개의 토크쇼, <뜨거운 사이다>와 <바디 액츄얼리>가 돋보이는 건 그 지점에 있다. 여자 MC와 여자 패널들이 모인 시사 토크쇼 <뜨거운 사이다>는, 제목과 달리 좀처럼 ‘사이다’ 같은 통쾌함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히든캠을 동원해 리벤지 포르노를 유포하는 이들에게 보다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이여영 월향 대표의 말은, 한국의 법 체계상 어느 정도 이상의 처벌을 가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김지예 변호사의 설명 앞에서 무력해진다. <뜨거운 사이다>를 보다 보면, 이처럼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언제나 멀리 있는데, 가는 길에 넘어야 할 허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는 순간이 더 잦다.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시원한 순간을 선사해주기보다는, 대화를 나누던 패널들이 갑갑한 마음에 진짜 사이다를 따서 가열하게 들이켜는 순간이 더 많은 쇼. 하지만 <뜨거운 사이다>는 지금 이 순간 반려동물 문화부터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 관련 주제를 온전히 여자들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평하며 화를 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TV 프로그램이다. 남자들이 모여 정치와 사회를 논하고(<썰전>) 지식과 문화를 이야기하는(<알쓸신잡>) 기회를 독점하다시피 한 세상에, 여자들이 자신의 관점으로 본 세상을 자신의 목소리로 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존재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장 의미심장한 건, <뜨거운 사이다>의 여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화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자들과 깊이 있는 친분이 없는 일부 남자 시청자들은 <뜨거운 사이다>를 보며 “여자들이 이렇게 화내는 걸 TV에서 본 적이 없다”고 놀란다. 이영진이 시니컬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가다 말고 화를 낼 때, 김숙이 종이를 구기고 이지혜 기자가 체념한 표정을 짓고 이여영 대표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할 때, TV 화면 안에서 화를 내는 여자들을 본 남자 시청자들은 처음 경험하는 일에 식겁하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위에도 써놓았지만, TV 속에서 여자의 자리는 늘 ‘꽃’이었으니까. 늘 화사하게 웃거나, 남자 연예인의 말에 격렬한 리액션을 해주거나, 아니면 애교를 부리거나. 세상에 화내고 소리치고 절망하는 꽃 같은 건 없으니, 그간 여자를 꽃으로만 보았던 이들에겐 카메라 앞에서 화를 내는 여자들이 너무 낯선 것이다. 아니, 같은 말을 해도 곱게 할 수 있는데 왜 다들 그렇게 언제나 화가 나 있는 거죠? <뜨거운 사이다>는 정색하고 말한다. 놀라셨나요? 여자들도 화내고 소리칠 수 있는 존재랍니다.

<뜨거운 사이다>가 여자의 관점을 여자의 목소리로 담아내는 쇼라면, 3명의 여자 MC가 진행하는 <바디 액츄얼리>는 여자의 육체를 여자의 목소리로 담아낸다. “난 온스타일이라길래 네가 뷰티 프로그램 MC가 된 줄 알고 ‘정수영 출세했네’ 했어.” MC 정수영의 친구가 한 말처럼, 여자 시청자층이 즐겨 보던 온스타일조차도 개편 이전까지는 여자의 육체에 접근하는 방식이 ‘뷰티’와 ‘패션’이었다. 어떻게 하면 팔뚝 살을 효과적으로 뺄 수 있는가, 어떻게 마사지를 해야 가슴 모양을 예쁘고 볼륨 있게 만들 수 있는가 등의 정보가 채널에 대한 첫인상이었고, 여전히 채널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쇼 프로그램은 코즈메틱 쇼 <겟 잇 뷰티>다.

그러나 <바디 액츄얼리>는 여자의 육체를 관리할 권리도, 어떻게 관리하는 게 좋은지에 대한 기준도 온전히 여자에게 있음을 선언한다. 첫 회부터 생리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소리 내어 이야기하는 게 부끄럽다는 듯 늘 ‘거기’ 내지는 ‘소중이’ 같은 모호한 단어 뒤에 숨어 있었던 ‘클리토리스’와 ‘질’이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겨드랑이 털을 깎을지 뽑을지 기를지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각자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바디 액츄얼리>는, 그동안 미디어가 요구해온 ‘섹시해 보이지만 동시에 정숙해야 하고 제 육체가 욕망하는 바를 함부로 소리 내어 말해서는 안 되는’ 여성상 같은 걸 대차게 걷어차는 쇼다.

고작 한 채널이 선보인 TV 토크쇼 두 개를 가지고 대단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바람이 결코 하루 이틀 불다가 그칠 유행이 아니라는 점 정도는 짚을 수 있을 것이다. 뭐라도 좋으니 여자들이 활약할 수 있는 예능을 좀 보고 싶다는 대중의 바람은, 여자 연예인들이 자신들이 간직했던 꿈을 실현해본다는 테마의 예능 <언니들의 슬램덩크>로 이어졌다. 심화되는 여성 혐오와 르네상스를 맞은 페미니즘 무브먼트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고민은 다양한 입장을 지닌 여자와 남자가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로 이어졌다. 여자의 정신과 육체는 온전히 여자의 것이며 여자 또한 제 의견을 세상에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뜨거운 사이다>와 <바디 액츄얼리>로 이어졌다. 이 흐름은 앞으로 더 거세지면 거세지지, 쉽사리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참아왔던 여자들의 외침은 이제 막 첫발을 뗀 것에 불과할 테니까. 그러니 그간 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이들이라면, 차라리 빨리 세상의 나머지 절반이 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균형을 잡는 쪽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여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가면 집안이 망한다” 운운하겠지만, 여자 목소리가 담장 하나 넘는다고 망할 만큼 부실한 집이라면 그냥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맞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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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 승환
사진정 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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