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의 산책

비행기가 구름을 가를 때, 누군가는 하늘을 보며 평화와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비주얼 디렉터 정주영의 평화는 비행기 밖에 있었다. 그는 땅에서 하늘을 좇는다. 좌표도 없는 하늘에서 비행기가 날아가는 순간을 추적한다. 그는 말했다.

“비행기를 찾으면 그 길을 기억해뒀다가 거꾸로 한번 가보는 거예요. 그 비행기가 날아온 길을 거꾸로 걸어보는 거죠. 항로는 정해져 있는 거니까요. 비행기는 구로에서도 보이고, 서울 어딘가의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서도 보여요. 안양천에서도 보이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면서 날아가는 비행기를 기록하는 거예요.”

20170523│울산발 김포행│대한항공 스카이팀 보잉 737

20161203│인천발 하네다행│대한항공 보잉 737

20170307│제주발 김포행│대한항공 보잉 737

좌표를 확인하고 나면 서서히 반경을 넓혀나간다. 비행기가 지나갔던 그 좌표에 시선을 고정해두고 더 멀리 간다. 그래야 다른 앵글의 비행기를 찍을 수 있다. 국제선 비행기는 차를 타고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추적하기도 한다.

“해가 뜰 때, 해가 질 때의 모습도 담을 수 있죠. 좌표를 찾아서 꼼꼼하게 기록하는 거예요. 공항에 인접했을 때의 항로는 몇 개 안 되거든요. 미리 알고 가서 기다리는 거죠.”

주파수를 잘 맞춰서 관제탑과 비행기 사이의 신호를 듣기도 한다. 그럼 활주로로 다가오는 비행기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비행기를 찍었다. 대한항공이 보잉 787-900 드림라이너를, 아시아나가 에어버스 A350을 샀다는 소식도 미리 알고 기다렸다. 한국 항공사가 최신 기종을 보유하게 됐을 때, 비행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같이 환호하기도 했다.

비행기 안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다른 비행기를 촬영하기도 한다. 이 경우엔 더 숙련된 감각과 계산이 필요하다. 항공 정보 애플리케이션 플라이트 레이더 24로 다른 비행기의 항로를 예측할 수 있다.

“제주에서 김포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그 즈음에 인천으로 들어오는 국제선 비행기를 알아보는 거예요. 인천에 내리는 국제선 비행기의 고도가 낮거든요. 그럼 몇 시쯤 어느 좌석에 앉아야 최적의 각도로 그 비행기를 촬영할 수 있을지 감이 잡혀요. 제주와 김포를 워낙 왔다 갔다 하다 보니까 이제 어디 즈음에서 어떤 비행기를 만날지 대충 알아요.”

20170827│인천발 시드니행│대한항공 에어버스 A330

20170131│인천발 태국행│타이항공 에어버스 330

20161201│나리타발 다롄행│JAL 보잉 787-8 드림라이너

하늘이 흐렸던 날, 정주영 실장이 타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목격한 건 먹구름을 뚫고 날아오르는 인천발 시드니행 대한항공 에어버스 A330이었다. 그가 말했다.

“정말 아름다웠어요. 서울에서 비가 엄청 내리던 날이었어요. 둘 다 비구름을 뚫으면서 날고 있을 때 만난 거예요. 그 장면을 실제로 보면 정말 비행기의 제트엔진이 구름을 뻥 하고 뚫고 나오거든요. 진짜 너무 아름다웠어요.”

약 2년 전부터였다. 데이터 분량만 2~3테라, 수천만 장의 비행기가 쌓였다. 해나 달을 배경으로 유유히 나는 비행기도 있고, 어떤 건축물 사이로 탈출하듯 나는 비행기도 있다. 꼬리에 길게 이어진 비행운도, 한라산 위에서 멈춘 것 같은 비행기도 있다. 같은 비행기는 있어도 같은 하늘은 없다. 그때 그 노을을 다시 볼 수 있을 리도 없다. 어떨 땐 셔터를 누를 틈도 없이, 그 순간적이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보기만 했다.

20170811│제주발 김포행│아시아나 에어버스 321

20170113│제주발 김포행│대한항공 보잉 777

20170724│제주발 김포행│아시아나 에어버스 767

“<월터미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사진가 역을 맡았던 숀 펜이 그랬어요. 그는 스노 레오파드를 쫓고 있었죠. 마침내 봤어요. 완벽한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찍지 않아요. 가끔은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게 더 좋다고 하면서요.”

그가 찍은 비행기 안에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중이었을까? 여행의 설렘, 비즈니스의 부담, 시작하는 두려움, 만남에 대한 기대, 헤어짐의 슬픔이 객실마다 섞여 있겠지. 모두의 마음이 행복할 순 없다 해도, 세상 모든 골치 아픈 일도 이렇게 멀리서 볼 수 있다면 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 그가 말했다.

20170314│인천발 세부행│진에어 737

“아다치 미츠루의를 보면요, 이렇게 하늘에 비행기 한 대가 슥 지나가는 장면이 딱 29번 나와요. 어렸을 때 그 장면을 보면서 비행기는 참 평화롭다고 생각했어요. 희망을 상징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주인공 히로가 언젠가 메이저리그에서 야구를 하고 싶다는 꿈을 얘기할 때도 비행기가 나옵니다. 그 비행기는 보름달 앞으로 지나가요. 제가 찍은 사진과 똑같아요. 그런 평온함,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여기 실린 모든 사진에 정주영 실장이 비행기를 포착한 시간과 항로를 적어두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혹시 이날, 이 11대의 비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지상 어딘가에는 이렇게 고운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사람이 있었다. 덕분에 그날 그 비행기가 지나던 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웠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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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정 주영
출처
24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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