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시계의 미묘한 이미지 비즈니스

모리스 라크로와의 선택에는 의미가 있다.

모리스 라크로아라는 시계 브랜드가 있었다.

훌륭한 기계식 시계지만 한국 내 판매량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해당 수입업체는 어느 날 모리스 라크로아의 사업을 중단했다. 수입업체의 탓이 아니었다. 문제는 인지도였다.

사람들은 언제 비싼 물건을 살까?

비싼 이유를 납득했을 때다.

‘아, 이 물건은 어느 급이지. 이 비싼 돈을 주고 살 만하지’라는 합의가 많은 사람에게 깔려야 한다. 그 생각이 자라려면 시간이 걸린다. 즉 고가품이 시장에 자리 잡으려면 초반에는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높은 이미지 등급을 만들어내야 한다.

고가품의 자리로 오르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은 사실상 계산 불가능하다. 사업가는 여기서 딜레마에 놓인다. 당기순이익은 중요하다. 매출을 보장하는 히트 상품이 필요하다. 반면 수익에 열중하면 브랜드 이미지의 순도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딜레마다.

견뎌서 고가품이라는 컬트 시장에 안착하느냐, 브랜드 이미지가 탁해지는 걸 감수하고라도 저가 라인업을 추가시킬 것이냐.

고급 시계의 미묘한 이미지 비즈니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2016년 12월호

새로운 길을 가기로 한 모리스 라크로아의 문페이즈 시계는 93만원.

모리스 라크로아는 새로운 길을 가기로 했다.

이들은 쿼츠 무브먼트를 집어넣은 신규 라인업을 추가했다. 가격은 기존 시계보다 저렴하다.

크로노그래프는 100만원대 초반, 문페이즈는 90만원대.

이렇게 되면 브랜드 전략이 확 달라진다. 새로이 모리스 라크로아를 시작하는 세일 인터내셔널은 이 사실을 잘 안다. 이곳의 배극영 대표는 티쏘를 총괄하며 성공을 견인한 남자다. 그는 시계 시장에 대해 명쾌한 시선을 갖고 있었다.

“저는 티쏘의 라이벌이 시계가 아니라 MP3 플레이어나 카메라, 휴대폰이라고 봤어요. 티쏘와 비슷한 가격대의, 한 50만원 정도 하는 것들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그 기능이 다 하나로 모였죠. 거기다 월 5만원 정도면 그 기계를 가질 수 있게 됐죠.”

티쏘 시계를 살 만한 남자들 사이에 약 50만원 정도의 가처분소득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티쏘는 그 틈을 읽어 성공했다.

모리스 라크로아는 티쏘보다 비싼 90~100만원대다. 고급 시계업계에서는 엔트리로 분류되지만 아무튼 100만원짜리 물건은 고가품이다.

전략도 달라진다.

세일 인터내셔널은 시계 시장의 성숙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시계를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니까 두 번째 시계로 모리스 라크로아에 눈길을 돌릴 수 있다는 가설이다.

지금 모리스 라크로아의 주력 모델은 문페이즈다.

왜?

“이 가격대의 시계에는 아직 문페이즈 시계가 많지 않아요. ‘90만원대 시계로 문페이즈’ 했을 때 모리스 라크로아가 떠오른다면 좋겠죠.”

티쏘를 끌어올린 사람다운 전략이다.

가격이라는 현실 세계의 지표는 사람들의 인식이라는 무형적 지표에 따라 언제든 바뀐다.

다른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 유명한 어떤 명품 시계는 본사 차원에서 브랜드 포지션을 바꾸는 중이다. 기존의 브랜드 이미지에서 조금 더 젊어진다. 브랜드 이미지와 시계 기술, 제품 디자인 방향이 일관적으로 선회한다. 홍보대사를 젊고 활기찬 스타로 바꿨다. 시계 생산 방식의 효율성도 끌어올렸다. 가격에도 조금 더 신경 쓴다.

다 좋지만 한국 측 판매사는 고민이 쌓인다.

한국에서 그 브랜드의 이미지는 고전적인 명품 시계다. 본사의 방향과 한국 판매사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시장의 특징에 맞춰 공들여 브랜드 이미지를 조각해온 해당 수입사는 불안할 수도 있다.

한국 시장은 이 브랜드의 큰 고객이기도 하다. 그래서 본사는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고 있는 현재도 한국 판매사의 사정을 일부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국에서 특히 잘 팔리는 모델은 덕분에 단종 시점이 늦춰졌다.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말하는 브랜드의 급이라는 게 있다.

뭐 위엔 뭐가 있고, 뭐랑 뭐가 같은 급이라는 식.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기능이 같은데도 세공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같은 기능에 세공 품질이 비슷하고 케이스 소재까지 똑같지만 브랜드 이미지의 등급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등급 서열은 영원하지 않다.

티쏘, 론진, 오메가가 좋은 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셋은 지금처럼 브랜드 등급이 다를 이유가 없다. 티쏘는 세계 최초로 항자성 시계를 제작했다. 론진 역시 시계사에 남을 만한 명무브먼트를 만든 전력이 있다. 스와치그룹의 수직 통합적 브랜드 전략 때문에 세 브랜드에 세공과 가격 차이가 생겨났을 뿐이다.

그래서 시계를 사라는 걸까 말라는 걸까 싶으실 수도 있겠다.

배극영 대표의 말이 좋은 대답이다. 그는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사실 요즘은 시계의 기능이 필요 없지 않습니까. 요즘 시계는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는 걸 보여주는 도구에 가깝지 않을까요.”

세속적인 논리다. 누군가는 눈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긍할 사람 역시 많을 것 같다.

고가·고급 시계에서 우리가 사고파는 건 물건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신화다.

고가 시계계는 귀금속과 전통 기술과 인지도와 역사적 가치 등등의 무형적 의미를 거래하는 세계다. 의미에 시세가 생겨 그 시세가 등락을 거듭하는, 아주 특수한 이미지의 경제학을 보여주는 분야다. 종교나 이데올로기를 봐도 알 수 있듯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도 뭔가를 상상해 의미를 부여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시계 브랜드의 포지셔닝에 이런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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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박 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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