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 HAIDER-ACKERMANN

“그곳이 어디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거기가 제 집이에요.” 벨루티의 수장 하이더 아커만이 말했다.

2017년 1월 20일 오후 8시 40분, 파리 그랑팔레. 도시의 밤하늘처럼 벨루티의 쇼장에도 어둠이 깔려 있었다. 쇼장을 메운 관객들은 부드러운 벨벳 의자에 앉아 흥분을 숨기지 못했다. 런웨이는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새벽의 거리를 떠올리게 했다. 어둠 속 희미한 안개를 가르고 모델들이 유유히 등장했다. 부푼 곱슬머리를 한 남자는 낙타색 더블브레스트 코트 깃을 목까지 세워 입곤,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집어넣은 채 걸음을 옮겼다. 근사한 스리피스 벨벳 슈트를 느슨하게 입은 남자는 면도를 며칠이나 거른 것 같다. 큼직한 악어가죽 백 위에 외투를 툭 걸쳐 든 남자의 가방 속엔 뭐가 들었을까? 어떤 밤을 보냈을지 궁금해지는 남자들은 이제 밤을 떠나 거리를 방랑하고 있었다. 좋은 쇼는 대화를 양산하는 법이다. 피곤했을 게 분명한 시간에도 관객들은 쇼장을 떠나며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이더 아커만이 벨루티에서 선보이는 첫 컬렉션이자 파리 맨즈 패션 위크 3일 차의 마지막 쇼였다.

2017년 4월 24일 오전 9시, 서울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 하이더 아커만이 <에스콰이어>와의 촬영을 위해 거울 앞 등받이 의자에 앉아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페이셜 마사지를 하자, 그의 단단한 이목구비가 잠시 사르르 녹는 듯싶었다. 베이징에서 도쿄를 거쳐 오는 길이었다. 오후에는 행사와 인터뷰, 저녁 식사 일정이 쉴 틈 없이 잡혀 있다. 내일 오전에는 다시 파리행 비행기에 오른다. 벨루티는 그를 젯셋족으로 만들었다.

HAIDER ACKERMANN
1971년 3월 29일생. 로열 아카데미 오브 파인 아츠에서 순수 미술 전공. 2003년 자신의 이름으로 패션 레이블을 만들었다. 2016년 9월 1일부터 벨루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벨루티. 종소리처럼 경쾌하게 들리는 이름이다. 1895년부터 최고의 구두를 만들어온 벨루티는 2005년에는 가죽 제품, 2011년부터는 기성복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러곤 구두를 만드는 방식과 같이 장인 정신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남성의 멋과 스타일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하이더 아커만. 캐리커처 아티스트라면,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뻗친 그의 곱슬머리를 가장 먼저 그릴 것이다. 지금 그 머리는 짧게 정리돼 있다. 하이더 아커만은 즉흥적인 선택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보헤미안 아티스트 같은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주자 흡사 건축가 같은 면모가 드러난다. 선이 진해진 이목구비가 강인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조우에 대해 놀라워했어요.” 하이더 아커만이 입을 연다. 말투가 차분하고 목소리는 크지 않다. 얘기를 더 나누면서 표정과 손짓은 풍부하지만 과장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고대하는 눈치였죠. 기대치가 높았고, 그만큼 걱정도 됐어요. 그래서 쇼가 끝났을 때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어요.”

촬영이 시작된다. 스튜디오에는 최소한의 인원만 남는다. 하이더 아커만이 수줍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카메라 앞에 서고, 집중된 분위기에서 셔터 누르는 소리가 빠른 박자처럼 연속적으로 들린다. 촬영은 빠르고 매끄럽게 끝이 난다. 그가 사진을 직접 모니터링한다. 모니터 속 자신의 얼굴을 쑥스러워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직관적으로 찾아낸다. 행동거지에 군더더기가 없다. 다음은 모델들 순서다. 하이더 아커만이 직접 택한 사람들이다. 길고 긴 모델 리스트는 베이징과 도쿄에 머무는 동안 틈틈이 추렸다. 옷도 직접 골라 입혔다. 그의 지시에 따라 다니엘 오는 몇 번씩 바지를 갈아입었고, 박경진은 머리를 더 헝클어뜨렸다.

스튜디오 2층에 위치한 사진가의 조용한 방에서 하이더 아커만이 내 앞에 앉는다. 그는 내게 푹신한 소파를 몇 번이나 양보하고 자신은 딱딱한 일인용 나무 의자에 앉는다. “벨루티는 내가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게 해줬어요.” 그가 입을 연다. 작고 동그란 은테 안경 너머로 눈빛이 반짝인다. “벨루티의 남자는 목표를 가지고 삶을 똑바로 마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실험적인 옷보다 누구나 입기 좋은 옷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의 뮤즈는 현실을 살아가는 진짜 남자들이다. “모델은 재미가 없어요. 남자가 흥미롭죠. 제가 쇼에 올린 건 모델이 아닌 남자예요. 고독한 남자들이죠. 저는 그들에게 관객과 소통하고, 좀 더 친밀하게 다가가라고 했어요. 어깨를 약간 움츠리며 걷거나, 주변을 둘러보거나, 관객을 바라보고 걸어도 좋다고요. 애티튜드를 찾기 위한 것이었어요. 벨루티는 가장 꼭대기에 있는 브랜드예요. 너무 귀중해 보이면 현실성이 떨어지기 마련이죠. 전 점잖은 벨루티를 좀 더 일상으로 끌어들이고 싶었어요.”

모델은 재미가 없어요. 남자가 흥미롭죠. 제가 쇼에 올린 건 모델이 아닌 남자예요. 고독한 남자들이죠. 저는 그들에게 관객과 소통하고, 좀 더 친밀하게 다가가라고 했어요. 애티튜드를 찾기 위한 것이었어요.

현실로 내려온 벨루티의 남자들은 슈트 위에 커다란 파카를 덧입거나 턱시도 재킷 안에 보머 재킷을 겹쳐 입는다. “진짜 남자들은 아침과 밤에 입는 옷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요. 그럴 수가 없죠. 저만 해도 오늘 이렇게 스케줄로 가득한걸요. 그러니까 오전과 오후가 뒤섞인 옷이 실제인 겁니다. 턱시도 재킷을 밤에만 입으란 법은 없어요. 밤에 입고 어딘가 가려면 오전에 입고 나올 수도 있는 거죠.”

그 고독한 남자들에게는 관능이란 말이 딱 어울렸다. 옷과 가방, 구두는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새틴과 벨벳, 보석 빛으로 무르익은 색감, 희귀한 이그조틱 레더로 완성했다. 거기에 휘휘 둘러도 무릎까지 내려오는 스카프가 더해졌다. 벨루티의 컬렉션은 여성도 탐낼 만한 남성의 것이었다. 쇼에는 실제로 여성 모델들이 등장했다. “모두 남성용이 맞아요. 연인의 옷을 빌려 입은 여자를 상상했어요. 남편이 아니라 연인의 옷 말이에요. 여성이 있으면 백스테이지의 분위기조차 달라져요. 활달해진 남자 모델들은 저희들끼리 수근대기에 바빠지고, 공간엔 긴장과 활기가 감돌죠.”

연인의 옷을 빌려 입은 벨루티 쇼의 여성들은 매혹적이었다. 당연한 수순처럼 여성 고객들의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비즈니스적으로 계산한 건 아니었는데 일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네요. 사실 보드라운 보호막 같은 캐시미어 스웨터는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입고 싶어 하는 편안한 옷이에요. 왜, 고치 안에 있는 것처럼 폭 안겨 있고 싶잖아요. 남자에게만 주긴 아까워요. 쇼가 끝난 뒤 제 여자 친구들도 그 옷을 갖고 싶다고 털어놓더라고요.”

그 여자 친구는 틸다 스윈튼을 얘기하는지도 모른다. 하이더 아커만은 유명한 친구들을 둔 것으로 유명하다. 배우와 뮤지션, 아티스트들이 그의 벗이다. 세계 각지에서 파리까지 날아와 쇼와 디너파티에 참석해주었다.

“셀러브리티가 아닌 사람들도 있어요. 어쨌거나 오랜 시간 변치 않고 우정을 쌓아온 사람들이에요. 언제나 제 편인 사람들이죠. 그리고 제 팀이 있네요. 하이더 아커만 팀은 제가 벨루티 쇼를 공개하자마자 문자를 보내왔어요. 제가 그들에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에 대해서요. 제가 하나 가진 게 있다면 우정이란 럭셔리예요. 축복이죠. 그 사람들 덕에 제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정신적으로 큰 힘이 돼주거든요. 제 영웅들이에요.”

힘이 들 땐 자연을 찾는다고 했다. 때로는 영웅이라는 그의 친구들과 함께, 때로는 홀로 훌쩍. 일상에서 멀리 떨어지면 되레 자신과 가까워진다.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곳으로 가요. 그러면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지, 어디를 향해 가고 싶은지가 보입니다. 그런 곳에선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아요.”

하이더 아커만은 방랑자다.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나고, 벨루티의 수장으로서 세계를 드나든다. 실은 처음부터 그랬다. 그는 콜롬비아의 보고타에서 태어나고 에티오피아, 차드, 알제리, 프랑스, 네덜란드에서 자랐다. 그리고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패션을 공부했다. 옆 동네로 이사하듯 그는 거주지를 매번 여기서 저기로 옮겨 다닌다. 그에게 물었다.

언젠가 한곳에 정착한다면 어디서 살고 싶으냐고. 그가 대답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 곳. 어디냐는 중요치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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