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안 뷰티의 정수 파네라이

지금의 파네라이를 만들어낸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호들갑.

 파네라이 루미노르 1950 3 데이즈 아치아이오가 이 시계의 정식 이름이다. 품번은 PAM 00372, 애호가들은 372라고만 해도 안다.

시계 오른쪽에 붙어 있는 반달 모양 쇠 조각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이 장치는 특허를 받은 시계의 방수 겸 크라운 보호 시스템이다. 위쪽에 있는 걸쇠가 크라운을 단단히 눌러주는 방식이다. 주세페 파네라이와 마리아 주세페 파네라이가 1955년 이탈리아에서 특허를 받았다. 이들은 같은 특허를 1956년에 미국에서도 취득했다.

기술의 과도기에는 여러 가지 시도가 일어난다. 지금의 방수 손목시계는 나사 방식 크라운과 헬륨 가스 배출 밸브로 거의 통일되었다. 파네라이가 특허를 받은 방수 장치는 1950년대라는 손목시계 과도기에 방수 성능을 높이려는 시도 중의 하나다. 가장 효율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진 역사 속 수많은 기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기술의 효율성과 상관없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이탈리아인만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다. 단순히 멋진 디자인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시계를 자세히 보면 시계 케이스와 크라운 보호 시스템은 금속의 표면 처리 방식이 다르다. 거울처럼 폴리싱 처리로 마무리된 시계 케이스와는 달리 크라운 가드에 세로 방향으로 브러싱 처리가 되어 있다. 금속의 표면 처리와 방수 기능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테니 이건 어디까지나 예뻐 보이려고 행한 게 확실한 미적 디테일이다. 초기의 파네라이가 군용 장비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기가 찰 일이다.

이 시계의 두께는 16mm다. 이렇게 적어두면 감이 잘 안 올 수도 있는데 250페이지 분량의 책 한 권 두께쯤 된다. 하지만 현란하게 층을 준 덕분에 막상 보면 별로 두꺼워 보이지 않는다. 디자인의 힘이다.

이 시계는 1950년대에 나온 빈티지 파네라이의 복각판이다. 혹시 복각을 하는 김에 좀 더 장식적으로 보이기 위해 디테일을 추가한 건 아닐까? 전혀. 파네라이는 가장 열정적인 애호가 층을 거느린 브랜드에 속한다. 조금만 검색하면 1950년대 당시의 오리지널 파네라이 사진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사진에서도 여전히 크라운 가드 부분만 브러싱 처리가 되어 있다. 이쯤 되면 ‘이탈리아인들이란…’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파네라이 시계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물건에는 일관적으로 기묘한 특징이 있다. 기능적으로 완벽한 건 아니지만 어디 한 부분만은 엄청나게 잘 만들었다거나, 완벽한 건 아니지만 어떤 부분이 너무나 아름답다거나. 불균형이 가득한데 한 부분만 엄청나게 매력적이다. 한번 그 매력에 빠지면 다른 나라 물건의 균형 잡힌 완성도(이를테면 독일산 같은 것)는 조금 싱거워 보이기도 한다.

이탈리아는 철물을 잘 만드는 나라로도 유명하다. 물론 유럽 대륙의 오래된 문명국은 모두 철강부터 자동차에 이르는 광의의 철물 산업이 발달했다. 스위스, 독일, 좀 더 범위를 넓히면 스웨덴 등의 북유럽까지. 그중 진짜 비싸고 아름답고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유려해 ‘어떻게 쇠로 이런 걸 만들지’ 싶은 나라는 역시 이탈리아다. 대표적인 게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다. 덜 알려진 것도 많다. 이탈리아의 수전 브랜드 제시와 이탈리아 러닝머신 브랜드 테크노짐을 보고 나면 다른 수도꼭지나 러닝머신은 페라리 뒤로 지나가는 토요타처럼 초라해 보인다. 파네라이도 이렇게 강력한 이탈리아의 오라 속에 있다.

파네라이는 지금 명품 시계업계의 다른 브랜드와는 모든 면에서 다르다. 우선 절대다수 명품 시계의 고향인 스위스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냉정히 말하면 별로 자랑할 만한 영광도 없다. 이탈리아 해군에 납품한 역사가 있지만 이탈리아 해군의 업적이랄 게 별로 없다. 결정적으로 1990년대까지 파네라이는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파네라이에 역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명품 브랜드와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역사가 있다. 파네라이의 역사는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0년 조반니 파네라이가 피렌체에 시계방을 냈다. 1864년 귀도와 피글리오 파네라이가 피렌체에 이탈리아 해군을 위한 정밀기계 공작소를 열었다. 이곳이 나중에 ‘오피치네 파네라이’, 지금 우리가 아는 파네라이가 되었다. 파네라이 공작소 같은 개념이다.

파네라이 공작소는 시계만 만들지 않았다. 이들은 주 납품처인 이탈리아 해군의 부탁이라면 뭐든 만들어줬던 것 같다. 이들이 만든 손목에 차는 나침반과 수심계와 손전등 사진이 남아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모든 시계 브랜드가 각자의 케이스와 무브먼트 생산 기능을 갖고 있지 않았다(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초기 파네라이 시계는 롤렉스의 케이스와 무브먼트와 방수 기술을 상당 부분 제휴해 사용했다. 롤렉스가 만들었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상용화하지 않은 초기 방수 시계 케이스가 파네라이 케이스로 쓰였다는 증거 역시 사진으로 남아 있다.

위대한 디자인이 그렇듯 파네라이 디자인의 특징은 처음부터 다 만들어져 있었다. 초창기 파네라이 케이스의 지름은 47mm였다. 피렌체의 파네라이 공작소 사람들은 그 넓은 다이얼 안에서도 디자인을 잊지 않았다. 끝을 둥글게 굴린 특유의 폰트로 숫자와 바 인덱스를 그려 넣었다. 동시에 파네라이만의 특징이 하나 더 태어났다. 2층 구조 다이얼이었다.

보통 시계 다이얼에 요소를 표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다이얼 위에 뭔가를 그리거나, 다이얼 위에 뭔가를 붙이거나. 파네라이는 둘 다 택하지 않았다. 야광 물질을 밑에 깔아두었다. 그 위로 다이얼의 숫자와 바를 파낸 별도의 판을 하나 더 붙였다. 그냥 야광 물질을 그리는 것보다 덜 효율적인 방식이다. 아주 훌륭한 기술적 진보라고도 볼 수 없다. 하지만 멋지다. 예쁘다. 무엇보다 남다르다.

남다르게 예쁘다는 게 군납품의 조건은 아니다. 파네라이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피렌체의 소규모 군납 공작소로 남은 이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남다르게 예쁘다는 건 사치품에는 완벽한 조건이 될 수 있다. 고가 시계 정도의 물건이 되면 그냥 예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싼 것도 수백만원쯤 하는 물건을 사람들이 사게 하려면 다양한 이유가 따라붙어야 한다. 디자인이나 유행 등 한두 가지 요소로도 어떻게든 성공시킬 수 있는 여타 패션계 상품과 시계의 결정적인 차이다. 시계가 다른 사치품에 대해 브랜드 스토리 같은 것을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파네라이는 시계 산업과 아무 상관도 없는 피렌체에서 명품의 씨앗 같은 조건을 품은 채 잠들어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채로, 어쩌면 자기 스스로도 모르는 채로. 그 파네라이를 깨운 건 미국 사람이었다. 우리도 알 정도로 유명한 그 사람의 이름은 실베스터 스탤론이었다.

스탤론은 1995년 재난 영화 <데이라이트>를 찍던 중에 우연히 이탈리아의 시계 매장에서 파네라이를 보았다. <록키>의 록키 발보아가 애드리안과 사랑에 빠진 것처럼 스탤론도 파네라이와 사랑에 빠졌다. 스탤론은 파네라이를 사서 차고 영화 <데이라이트>에 출연했다. 조금 황당해 보이는 이 이야기 때문에 파네라이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초기의 파네라이를 비롯한 야광 시계는 라듐 같은 방사능 물질로 야광을 표시했다. 아무리 복각이라도 그런 것까지 따라 할 순 없다. 지금 파네라이는 안전한 소재를 쓴다.

실베스타 스탤론은 평소의 고집 센 성격대로 고집스럽게 파네라이를 응원했다. 그 이후에도 스탤론은 파네라이 시계를 105개 단체 주문해 뒤쪽에 자기의 사인을 새긴 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파네라이 역시 VIP(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를 확실히 대접했다. 이들은 ‘슬라이 테크’라고 쓰인 파네라이 시계를 만들어 판 적이 있다. 슬라이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애칭이다. 슬라이 실베스터 스탤론은 팔뚝 굵기로는 스탤론 못지않았던 그의 친구에게도 파네라이를 선물로 준다. 빅 사이즈 옷 가게 정보를 나누는 마음이었을까. 스탤론의 시계 선물 때문에 역시 롤렉스만 차던 그 친구도 파네라이의 팬이 된다. 친구의 이름은 아널드 슈워제네거였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의 사랑을 받은 파네라이의 종착지는 스위스였다. 스위스 회사이면서도 프랑스에 있는 광장의 이름을 사명으로 쓰는 방돔 그룹이 1997년 파네라이의 지분을 100% 인수했다. 소수의 애호가를 거느리던 피렌체의 컬트 시계 브랜드가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고가 사치품 전문 그룹의 일원이 되는 순간이었다. 방돔 그룹은 나중에 리치몬트 그룹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그 이후 파네라이의 운명은 지금 보시는 대로다. 이들은 한국에도 몇 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전 세계에 성공적인 판매망을 구축하고 있다.

파네라이는 시계를 잘 만드는 동시에 또 하나의 마법을 부렸다. 명품 브랜드의 가장 핵심적인 기술 중 하나인 공급 제한을 예술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어차피 모든 물건은 엄밀히 말하면 한정판이다. 똑같은 물건을 무한정 찍어내는 회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고가 사치품 회사는 말과 개념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100개 팔릴 것 같아서 100개 만들었습니다”라는 말과 “전 세계 100개 한정판입니다”라는 말은 완전히 다르다. 파네라이는 멋진 물건을 만들고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끌어올린다.

다만 이런 마법을 부리려면 긴 시야를 가지고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면 황금 알이 나오지 않는다. 유럽인들은 그 정도로는 현명하기 때문에 명품 브랜드 운용이라는 심리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오늘의 시계는 귀금속 브랜드로 거듭난 파네라이의 산물이다. 이 시계는 1950년대 당시의 루미노르를 똑같이 재현했다. 쿠션형 케이스, 초침도 없는 간결한 다이얼 구성, 볼록한 돔형 유리, 특허를 받은 예의 그 크라운 가드, 다 똑같다. 케이스에는 좁쌀 만한 흠집도 없지만 가죽 부분은 벌써 헌 것처럼 가공한 스트랩 역시 이탈리아의 감각이다. 스톤 아일랜드나 골든 구스 디럭스 브랜드를 봐도 알 수 있듯, 이탈리아는 새것을 헌것처럼 보이게 하면서도 남루해 보이지는 않게 하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다.

이 시계에는 파네라이의 자체 제작 무브먼트 P3000이 들어 있다. 스틸 케이스백보다 방수성이 떨어지는 글래스백을 사용했다. 그래서 오히려 방수 성능은 1950년대의 200m 방수보다 떨어지는 100m 방수다. 하지만 이 시계를 사는 사람의 대다수는 호텔 수영장에도 시계를 안 담글 것이다.

파네라이 애호가들은 방돔 그룹(현 리치몬트 그룹)에 인수되기 전인 1997년까지의 파네라이를 ‘프리-방돔’이라고 부른다. 프리 방돔 시기와 지금 시기의 가장 큰 차이는 가격이다. 리치몬트 그룹 소속의 파네라이는 가격을 올릴 만큼 시계 곳곳의 디테일 품질을 굉장히 끌어올렸다. 두꺼운 시계 두께가 날씬해 보이게 하기 위해 미묘하게 층을 나눈 케이스 측면 디자인이 특히 일품이다. 지금의 파네라이는 스위스의 기술로 만들어진다. 파네라이의 공장은 고급 시계 공장이 밀집한 스위스 뇌샤텔에 자리한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디자인이 미국 사람에 의해 알려진 후 스위스의 프랑스어권 산간 지역에서 생산되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세계화로구나’ 싶어진다.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1987년 작 영화 <마지막 황제>의 사운드트랙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그 작업 순간을 묘사한 적이 있다. 그의 명곡 ‘레인’이 영상과 함께 깔리는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이탈리아 사람들이 “벨라(아름다워)!” “벨라!”를 연발하며 호들갑을 떨더라는 이야기였다.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 아름다움에 예민하며, 아름다움 앞에서 기꺼이 반응하는 이탈리아인만의 멋이 있다. ‘저렇게까지?’ 싶을 때도 있지만 멋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하기 힘들다.

파네라이 시계 곳곳에 그 멋이 묻어 있다. 레슬러의 귀처럼 붙어 있는 크라운 가드에도, 크라운 가드의 표면을 마무리하는 세로 방향의 브러싱에도, 다이얼 안의 폰트와 폭넓은 식칼 모양의 시침과 초침에도. 군용 다이버 시계까지도 어떻게든 예쁘게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다. 사실 노력이라는 말은 이탈리아인의 아름다움을 향한 집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본능적 태도라는 말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그 태도는 이탈리아의 물건 곳곳에 스며 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통 넓은 바지에도, 안드레아 피를로의 툭 차 넣는 패스 안에도, 하다못해 데 체코 스파게티 상자의 파란색 속에도 아름다움이 이탈리아의 필수 요소처럼 담겨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고급 시계가 있다.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고급 시계가 사람들의 손목 위를 노렸다. 다양한 고급 시계 사이로는 고급 시계업계 안에서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시계가 훨씬 많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뭔가가 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파네라이는 그 사이의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다.

그 이유는 결국 아름다움 아닐까. 군용 장비까지도 아름답게 만들어내고야 마는 그 본성이, 굳이 설명하자면 ‘이탈리아스러움’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뭔가가, 그게 아직까지도 마법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 아닐까, 나는 그렇게 추측한다.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