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블랙

10개의 검은 시계, 10개의 질문과 답.

검은 시계는 뭐가 좋을까?

우선 잘 긁히지 않는다. 차차 알아보겠지만 어떤 방법으로 검은 시계를 제작해도 기본적으로 긁힘에 더 강하다. 소재에 따라 더 가벼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달라 보인다. 기왕 좋은 물건 사는 거 남달라 보이고 싶은 것도 사람 마음이다.

태그호이어는 자사 대표 모델 까레라에도 새까만 버전을 추가했다. 로고까지 새까맣게 칠하되 다이얼 곳곳에 구멍을 내 조형적인 멋을 끌어올렸다. ‘스위스 아방가르드’라는 슬로건이 아깝지 않다.

TAG HEUER 까레라 호이어 01 풀 블랙 매트 세라믹
케이스 지름 45mm, 크로노그래프, 모듈러 세라믹 케이스, 러버 스트랩. 730만원대.

어디까지 검게 할 수 있을까?

브랜드의 뜻에 달렸다. 우선 이 기획에 나온 시계는 순정 출고 상태에서 1)케이스 2)다이얼 3)스트랩 모두 검은색인 것만 추렸다. 저 셋을 다 검게 해도 인덱스나 초침, 시침을 희게 하면 시간을 보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오메가는 한 번씩 엄청나게 실험적인 시계를 선보인다. 지금 순정품으로 고를 수 있는 시계 중 이렇게까지 새까만 시계는 오메가에서만 나온다. 신기하게도 이 시계도 별문제 없이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시계 다이얼 속 요소에 미묘한 높낮이를 준 덕분이다.

OMEGA 문워치 오메가 코-액시얼 크로노그래프 44.25MM 블랙 블랙
케이스 지름 44.25mm, 크로노그래프, 블랙 세라믹 케이스, 나일론 스트랩. 1460만원.

검은 시계는 더 가벼울까?

소재에 따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최근 시계업계에는 케이스 소재의 종류가 늘어나는 추세다. 3~4가지 소재를 색다른 비율로 섞어서 단독 신소재를 개발한다. 기존의 시계 소재였던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각종 금과는 다른 특징을 갖게 된다.

브라이틀링은 자체적으로 브라이트라이트라는 소재를 개발해 시계 케이스에 쓰고 있다. 브라이틀링의 자료에 따르면 철보다 6배 튼튼하고, 티타늄보다 4배 가벼우며, 항자성도 있고, 알레르기에도 무해하며, 긁힘에도 보통 소재보다 훨씬 강하다고 한다.

BREITLING 헤리티지 크로노메트리 오토매틱
케이스 지름 45mm, 크로노그래프, 브라이트라이트 케이스, 고무 코팅한 밀리터리 텍스타일 스트랩. 1080만원대.

검은 시계가 긁히면 다른 색깔이 보이지 않을까?

검은 시계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원래 검은 소재이거나, 검은 코팅을 하거나. 뭘 선택해도 긁힘에 강하다. 군사 훈련소에서 각개전투 훈련 같은 걸 받는 정도가 아니라면야 긁혀서 다른 색이 보일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아무렴, 적어도 몇백만원짜리 시계인데.고풍스러운 시계 브랜드 예거 르쿨트르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검은 시계를 출시했다.

예거 르쿨트르 같은 경우는 세라믹 케이스로 검은색을 냈다. 크로노그래프 스위치, 크라운, 시침과 초침은 핑크 골드를 써서 눈에 잘 띈다. 고급 시계라는 사실을 내보이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JEAGER LECOULTRE 마스터 컴프레서 크로노그래프 세라믹
케이스 지름 46mm, 크로노그래프, 낮과 밤 표시, 두 번째 시간대를 표시하는 시침, 동력 잔량 표시, 세라믹 케이스, 가공 처리 패브릭 스트랩. 2020만원.

어쩌다 검은 시계가 나오게 됐을까?

계기가 있다. 하나는 샤넬의 검은 J12다. 또 하나는 런던의 뱀포드 워치 디파트먼트나 프로젝트 X 같은 사설 시계 튜닝 업체다. 둘 다 시계업계 변두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변화는 주변부에서 시작된다.그 결과 파네라이처럼 시대의 흐름과 관계없이 제 갈 길을 가는 브랜드에서도 검은 시계가 나왔다.

PANERAI 루미노르 1950 10데이즈 GMT 세라미카
케이스 지름 44mm, 두 번째 시간대 표시, 10일 동력 잔량 표시, 세라믹 케이스, 가죽 스트랩. 1995만원.

어떤 소재로 검은 시계를 만들 수 있을까?

검은 시계를 만드는 방법엔 검은 소재와 검은 코팅이 있다고 했지만 딱 둘만 있지는 않다. 검은 소재와 코팅 방법 모두 종류가 많다. 요즘은 기계식 시계업계가 여러 사정으로 자사만의 기술을 키운다. 소재가 다양해지는 데에는 이런 속사정도 있다.

지금 보는 제니스는 검은색 시계 중에서도 조금 남다르다. 알루미늄 케이스에 검은 세라믹을 얇게 코팅했다. 세라믹보다 가벼운데 세라믹 같은 느낌이 난다.

ZENITH 헤리티지 크로노메트리 오토매틱
케이스 지름 42mm, 크로노그래프, 세라믹 코팅한 알루미늄 케이스, 고무 코팅한 소가죽 스트랩. 1230만원대

그런데 시계가 검으면 뭐가 좋을까?

가장 확실한 기능상 장점은 더 튼튼하다는 점이다. 세라믹도 표면처리 코팅도 긁힘에 더 잘 견딘다. 시계 브랜드는 온갖 요소에 정성을 들인 후 생색도 한껏 낸다. 튼튼해야 하므로 코팅을 했다(그래서 더 비싸다)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주로 기능성 시계에 검은색 코팅을 하는 이유다.남자다움과 튼튼함을 강조하는 IWC도 파일럿과 다이버 시계 라인업에서 검은 시계를 출시한다. IWC 다이버 시계 아쿠아타이머는 특이하게도 스틸에 고무를 코팅했다. 오늘의 시계 중 고무 코팅 시계는 IWC뿐이다. 그래서 광택감이 독특하다.

IWC 아쿠아타이머 크로노그래프 ‘갈라파고스 아일랜드’ 에디션
케이스 지름 44mm, 크로노그래프, 고무 코팅한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러버 스트랩. 1340만원.

검은 시계의 종류는 얼마나 다양할까?

보시다시피 많다. 보통 진지한 기계식 시계를 분리하는 네 가지 기준은 파일럿, 다이버, 드레스, 드라이빙이다. 네 장르 모두에서 새까만 시계를 고를 수 있다.

불가리는 검은 시계 부문의 선구자다. 몇 년 전에 이미 뉴질랜드 국가대표 럭비 대표팀 한정판 시계인 ‘올 블랙스’(뉴질랜드 럭비팀의 애칭이기도 하다)를 낸 적이 있다. 새로운 드레스 시계 옥토에도 새까만 울트라네로를 출시했다. 불가리 특유의 대담한 실루엣은 아무리 새까맣게 칠해도 가려지지 않는다.

BULGARI 옥토 울트라네로
케이스 지름 41mm, 시·분·초·날짜 표시, DLC 코팅한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러버 스트랩. 880만원

검은 시계에는 어떤 줄이 잘 어울릴까?

역시 검은색이 잘 어울린다. 판매가 지상 목표이자 존재 이유인 각 브랜드가 일제히 검은색 줄을 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소재는 가죽, 섬유, 고무 등을 많이 쓴다. 금속 브레이슬릿은 너무 무거워 보인다. 악어가죽 스트랩을 쓴 시계가 하나도 없다는 것도 기억해두시길 바란다. 시계와 귀금속에서 못 하는 게 없는 까르띠에는 검은색 시계도 잘 만든다. 자사의 다이버 라인업 칼리브 드 까르띠에를 검은 세라믹으로 만들고 고무 스트랩을 끼웠다. 다이버 시계이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무 스트랩을 끼워도 괜찮다. 말이 되니까. 고급품의 세계는 명분의 세계다.

CARTIER 칼리브 드 까르띠에
케이스 지름 42mm, 시·분·초·날짜 표시, ADLC 코팅한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러버 스트랩. 1090만원.

검은 시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 몇 년은 꾸준히 나올 거라고 본다. 사실 시계 디자인은 한계에 이르렀다. 시계는 크기가 작은 데다 비싸기까지 해서 시장 성향이 보수적이다. 새로운 경향이 잘 안 생긴다. 모양이 같은데 색만 바꾸는 건 시계 산업과 잘 어울리는 온건 개혁안이다. 고급 시계의 급진파 로저 드뷔가 이런 현상에 발맞추지 않을 리 없다. 이들은 케이스 소재로 고급 경량 소재인 카본을 골랐다. 뭐든 비싸고 고급스럽고 눈에 띄게 만드는 브랜드답다. 카본 케이스, 과감하게 굴절시킨 로마자 인덱스, 고무 스트랩이지만 드레스 시계, 21세기적 고급품이다.

ROGER DUBUIS 칼리버 호이어 02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케이스 지름 42mm, 시·분·초·날짜 표시, 카본 케이스, 러버 스트랩. 208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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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CHUNG WOOYOUN
출처
25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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