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주 갱스부르와 셔츠

셔츠를 강박적으로 입는 남자를 보면 저절로 세르주 갱스부르가 생각난다.

세르주 갱스부르 - 에스콰이어 코리아

세르주 갱스부르의 사진을 볼 때면 늘 셔츠를 관찰한다. 그 셔츠는 언제나 희끗하다. 스무 번은 훌쩍 넘게 빨아 입은 것이 분명한 흔적들. 당장 소매가 해지거나 팔꿈치가 뚫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칼라는 유독 크고 올곧다. 턱과 맞닿은 부분에선 살짝 둥글려지기도 했다. 셔츠는 몸에 가까스로 맞아 보인다. 움직임과 숨을 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여유만 남기고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가슴팍을 열어젖히는 건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단추를 네 개쯤 거뜬히 풀어 헤친 풍모는 어느 지점부터 근사하게 생각되기도 하고. 울대까지 단추를 채워 잠그는 건 도리어 불경한 일 같다. 칼라와 앞섶, 소매를 걷은 모양은 모든 사진에서 일관적이다. 습관처럼 입는 옷은 몸을 정확히 기억하니까. 거기서 문득 구도적 안정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명징하게도 그의 셔츠는 정갈한 기질에선 물러나 있다. 한량에 가까운 옷. 지난밤의 흔적을 비밀처럼 가둔 옷. 그는 반듯한 셔츠가 주는 신뢰성 같은 익숙한 통념을 전복시키고 스스로 클리셰가 됐다.

세르주 갱스부르 - 에스콰이어 코리아

살바도르 달리처럼 빈틈없이 차려입던 시절도 있었다. 몇 년은 괴팍한 옷을 입고 레게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런 시기를 제외하면 분방한 셔츠야말로 그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단서였다. 1970년대 후반은 그가 가장 근사하게 셔츠를 입은 시기였다. 밑단을 무신경하게 잘라낸 청바지와 흰색 레페토 슈즈, 초크 스트라이프 재킷, 그리고 칼라를 꺼내 입은 셔츠는 당시 그의 전형이다. 그때 그 셔츠가 유독 좋았던 건 자유분방함을 포용하는 생활감 때문이다. 이건 어떤 패션의 가치나 스타일을 수식하는 단어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불현듯 느껴지는 일상의 부분과 개인적 은밀함에 관한 것. 셔츠는 그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배출된 옷이라 생각됐다. 그리고 그 셔츠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옷에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는 건 낭만적인 일이라서.

강박적으로 셔츠를 대하는 남자들을 보면서 그를 떠올린다. 셔츠는 그 어떤 옷보다 사적이면서 분방해도 되는 옷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일종의 후련함 같은 감정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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