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창 하나도 장인의 정신으로’ 토즈 이야기

1978년, 토즈의 회장 디에고 델라 발레는 단 한 종류의 신발만으로 가족 단위로 운영하던 작은 사업을 토즈라는거대한 패션 하우스로 만들었다. 그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토즈를 경영한다.

디에고 델라 발레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까? 40년 동안 토즈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 콜로세움 복구 기금을 조달한 것? 에디 레드메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매튜 매커너히 같은 토즈를 신는 슈퍼스타들의 에피소드? 올해 63세로 토즈의 최고경영자인 그는 여러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이탈리아 마르케주 출신이라는 점부터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토즈의 최고경영자 디에고 델라 발레와 토니 리파니.

막 새로 지은 것처럼 깔끔한 산텔피디오아마레의 토즈 본사.

로비의 예술 작품과 포뮬러 원의 차체

가죽 사업 종사자가 아니라면 마르케주(움브리아와 아드리아해 사이에 낀 이탈리아 중부 지역)를 시골이라 착각하기 쉽다. 마르케의 전원적인 자연에는 다행히 아직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았고, 덕분에 마르케 사람들은 잔머리 굴릴 필요 없이 산다. 디에고 델라 발레는 마르케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인물이다. 마르케 사람들은 모두 디에고 델라 발레의 열성적 지지자다.

“마르케 사람들은 농부에서 제화공이 된, 굉장히 좋은 사람들입니다. 엄청난 자존감을 지녔어요”라고 지난여름 밀라노의 사무실에서 디에고가 말했다.

갑피와 밑창을 꿰매 합치는 제화공의 손길.

밝게 염색한 수입 가죽 보관실.

디에고의 자랑거리인 토즈 본사는 조용한 언덕 위 마을인 산텔피디오아마레에 있다. 1997년 디에고의 아내 바르바라가 설계한 토즈 본사는 날씬한 기둥이 네모반듯한 형태를 지지하고 있고, 바닥에서 천장까지 유리창으로 덮어 꼭 모던한 사원 같다. 우아한 비례를 자랑하는 건물이다. 900명에 이르는 직원이 일하는 공장도 있고, 디자인팀과 홍보부서도 있다. 유리로 둘러싸인 조용한 로비는 농구 코트만큼 넓어서 대성당 느낌을 풍긴다. 밖으로 나서면 잘 다듬어진 잔디밭에 100년 묵은 올리브 나무가 심어져 있다. 건물 안에는 제이콥 하시모토의 설치미술 작품과 론 아라드의 넘실거리는 철제 계단도 자리 잡고 있다. 토즈는 얼핏 중세 도구처럼 보이는 공구가 놓인 작은 작업대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 공구도 작업대도 1920년대 가족의 제화 사업을 창립한 디에고의 할아버지 필리포의 물건이다. 다른 쪽 벽에는 이 넓은 본사 안에서 움직이기 위해 디에고의 아버지 도리노가 탔던 산악자전거가 걸려 있다.

사업의 역사가 한 세기에 가까워지면서 가족 경영의 손길은 점점 확고해졌다.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몇백억원 규모의 회사를 출범하지 않는다. 디에고도 전통을 바탕으로 일어섰다. 디에고의 아버지는 다른 패션 브랜드의 신발을 만들면서 자신의 아버지인 필리포의 사업을 확장시켰다. 그리고 디에고는 한 가지 디자인의 위력을 빌려 토즈를 국제적인 브랜드로 발돋움시켰다. 하지만 규모와 상관없이 사업의 성패는 두 가지 요소가 좌우한다. 바로 가죽과 사람이다. “손으로 일할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의 주인이죠”라고 디에고는 말한다. 제화 사업의 수장이자 마르케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디에고는 고미노 덕분에 럭셔리 브랜드의 거물이 되었다(다시 상기해보자. 패션 명가, 콜로세움, 영화배우. 아, 축구단을 잊었다. ACF 피오렌티나 말이다). 고미노는 회사를 탈바꿈시킨, 우연의 산물이다. “당시 뉴욕에 있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만들었다고 기억하는 신발 한 켤레를 보았어요. 전형적인 드라이빙 슈즈였죠. 질이 형편없었습니다. 아주 좋은 제품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발을 위한 장갑처럼 말이죠. 그래서 신발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도 한번 시도해보면 어떨까요?’ 아버지는 ‘멍청한 짓거리 아니냐, 안 그래?’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당시에 비싼 신발에는 가죽 밑창을 댔지요. 아주 무겁고 뻣뻣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저는 그런 신발을 변신시키고 싶었습니다.”

드라이빙 슈즈는 1960년대에 이탈리아에 등장해, 남자들이 알파 로메오나 페라리의 가속페달을 밟는 쾌감을 더 밀접하게 느끼기 위해 신었다.

당시에도 드라이빙 슈즈가 완전히 새로운 물건은 아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960년대에 출현해 알파 로메오나 페라리의 운전을 즐기는 남자들이 드레스 슈즈의 두꺼운 밑창으로는 누릴 수 없는, 가속페달을 밀접하게 밟아 육감적인 쾌락을 얻기 위해 신었다. 하지만 오로지 운전용일 뿐이었던 신발을 디에고가 차고에서 꺼내 일상용으로 변신시켰다.

“도시용 신발을 위해 고무를 쓰기 시작하면서 제화 사업의 새로운 길을 열었지요”라고 그는 설명한다. 디에고는 표준 가죽 밑창에 구멍을 뚫고는 돌기가 올라온 고무 밑창을 댔다. 돌기는 가죽 밑창의 구멍과 맞물려 고미노 특유의 오톨도톨한 가죽과 고무가 어우러지는 생김새를 만들어냈다. “이전에 신발이란 고전적이고 아주 뻣뻣하거나, 싸구려인 테니스화뿐이었죠. 이제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으니 가벼운 재킷이나 잘 늘어나는 바지, 편한 신발이 필요합니다. 신발이 불편하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죠.”

토즈의 공장에서가죽 전문가 토니 리파니.

1년 동안 테스트를 거쳐 가죽과 고무의 미와 기능의 균형을 잡은 뒤 디에고는 친구 몇 명을 불러 고미노의 시착을 부탁했다. 운 좋게도 친구들은 모두 지역 유지였으며, 한술 더 떠 모두가 신발을 좋아했고 이를 주저 없이 표현했다. “마법의 거품 같았습니다. 연예인, 미디어, 잡지 표지에 등장하는 놀라운 일들이 고작 두 달 안에 벌어졌어요.” 물론 입소문도 탔다. 1978년에 디에고는 고미노에 ‘JP 토즈’라는 이름을 붙였다. 산텔피디오아마레에서는 괴이할 지경으로 이국적이지만 미래의 고객에게는 매력적이며 한편 미국적인 정서에도 호소하는 상호였다. 오랫동안 디에고는 상호를 보스턴의 전화번호부에서 찾아 이름 붙였다고 말해왔는데 1999년에 마침내 JP를 없애고 토즈라고 썼다.

하지만 브랜딩만으로 신발이 팔리지는 않는다. 재료 또한 일등급이어야 했다. 이와 관해서는 토니 리파니가 전문가다. 리파니는 37년 동안 델라 발레 가문을 위해 일했다. 토즈의 급부상 시기부터 말이다. 오늘날 그는 토즈 가죽의 총책임자로 신발과 가방에 쓰이는 모든 가죽의 선별 및 구매를 책임진다. 악어든 타조든 도마뱀이든 가리지 않는다. 이렇게 이국적인 수입 가죽이 온도와 습도가 통제되는 공장의 유리 방에 걸려 있다. 그 뒤로는 더 넓은, 3층 높이 창고의 선반에 무두질한 송아지 가죽이나 스웨이드가 둘둘 말린 채 쌓여 있다.

1978년 드라이빙 슈즈의 인기를 업고 겨울용 고미노가 등장했다. 전체를 고무 밑창으로 댄 부츠의 일종이었다. 피아트 회장이었던 자니 아넬리가 최고급 카라체니 슈트에 이 신발을 신어 유행을 선도했다.

고무 돌기를 만들기 위해 가죽 밑창을 망치질해 구멍을 뚫는다.

신발을 위한 구두 골.

“이후로 사업이 엄청나게 번성했죠”라고 리파니가 고미노의 초창기에 대해 밝혔다. “그래서 가죽을 충분히 비축할 수 없었어요. 밀린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사들였죠.” 오늘날이야 재고는 넉넉하지만, 리파니는 가죽을 확보하는 일이 늘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가죽은 음식 산업의 부산물입니다. 농부는 소나 양을 식재료로 먼저 생각한 뒤에야 가죽의 원천으로 여기죠. 자연스럽고 건강한 삶을 누린 덕분에 프랑스산 가죽이 최고였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대규모 사육 탓에 가죽 상태가 좋지 않죠. 무두장이가 기적처럼 어루만져 최상의 상태로 손질해줍니다.”

세월이 흐르며 생산량은 계속 늘었다. 1978년 드라이빙 슈즈의 인기를 업고 겨울용 고미노가 등장했다. 전체를 고무 밑창으로 댄 부츠의 일종이었다(물론 특유의 돌기는 여전히 박혀 있다). 피아트 회장이었던 자니 아넬리가 최고급 카라체니 슈트에 신어 유행을 선도했다. 아넬리를 비롯해 빌 클린턴, 조지 클루니, 믹 재거와 같은 유명 인사들 덕분에 고미노는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최신 유행을 만드는, 까다로운 이탈리아인이 부리는 요령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디에고는 “회사는 성장했지만 정신은 그대로입니다. 뿌리를 절대 잊지 않아요. 좋은 취향이 반영된, 훌륭한 수제품의 이탈리아식 라이프스타일 말입니다. 물론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죠”라고 말했다.

리파니가 아주 부드럽고 유연한 가죽을 소개하고 있다.

부츠 안에 양털을 덧댄 겨울용 고미노 슈즈.

그 ‘현대적인 감각’은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지난여름 토즈는 ‘마이 고미노’ 프로젝트를 통해 혁신적인 기술과 장인 정신이 어우러지는 진화를 이어나갔다. 앱으로 가죽, 색상, 이음매, 심지어 밑창 고무 돌기의 색상마저 선택해 자신만의 독특한 토즈를 주문할 수 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운동화 브랜드에서야 이런 개인화가 흔하지만 럭셔리 브랜드에서는 희귀하고도 위험한 시도다. “앱을 통해 한 켤레의 신발을 놓고 2000가지의 다른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죠”라고 디에고가 설명한다. “아이폰을 통해 100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구두를 만들어온 우리의 제화공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토즈의 뿌리와 현대성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입니다.”

디에고의 집은 토즈의 공장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그는 공장에 자주 들르고, 의무가 아니지만 주말에도 굳이 출근하는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일요일에 출근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사업을 할 수가 없죠. 일요일 아침이면 출근해서 공장을 둘러보고 싶어집니다.” 따지고 보면 그 공장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한데 수용하고 있다. 가죽과 사람 말이다.

전 세계로 보낼 준비를 마친 토즈 상자가 창고에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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