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메종 마르지엘라는 이 질문을 반복하며 유일무이한 브랜드가 되었다.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했던 실험. 일부러 옷을 완성시키지 않았다. 마르지엘라 본인은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이어진다.

보고, 산다(See now, buy now). 최근 패션 산업계의 가장 큰 화두다. 지금은 패션쇼가 끝나자마자 컬렉션에 소개된 옷을 바로 살 수 있다. 기존 흐름과는 다르다. 지금까지는 패션 브랜드가 한 시즌 앞선 트렌드를 미디어와 바이어에게 소개하고, 언론과 유통이 패션이라는 정보를 편집해 대중에게 전달했다.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되어 공고해진 오랜 관습이자 시스템이었다.

기술이 관습을 바꾼다고 여겨진다. 산업 경향을 바꾼 것도 기술이다. 뭐든 실시간 공유가 가능한 SNS, 유튜브라는 뉴미디어, 국경을 넘는 이커머스 서비스. 하지만 기술은 도구일 뿐 상부 구조에서 하부 구조로 이어지는 흐름을 뒤집은 실세는 이 모두를 소비하는 대중이다. 슈퍼 모델과 패션 피플이라는 패션업계의 전도사를 뜻하는 호칭이 ‘온라인 인플루언서’라는 해괴한 신조어로 대체되고 있다. 그렇다. 가장 진보적이면서도 원초적인 속성을 함께 지닌 패션 산업은 지금 어느 때보다 거대해진 불특정 다수의 힘을 마주하고 있다.

30년 전 그 불특정 다수를 주목한 디자이너가 있었다. 마르탱 마르지엘라. 벨기에 출신으로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파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를 선보인 디자이너다. 그는 흔히 하듯 시즌에 맞춘 패션쇼를 열지 않았다. 그의 초기 컬렉션은 파리 외곽 허름한 놀이터나 자신의 옷을 파는 작고 개성 강한 편집매장에서 선보였다. 화려한 런웨이를 대신한 놀이터에는 매체 기자와 바이어들 사이에 동네 주민과 어린아이들이 끼여 있었다. 마르지엘라의 초기 쇼를 열었던 파리의 편집매장 레클레어(L’Eclairerur) 창립자인 아르망 하디다는 마르지엘라가 바꾼 걸 세 가지로 압축했다. 노 브랜드, 노 캣워크, 노 캠페인.

마르지엘라풍 고집은 더 큰 무대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럭셔리 산업 중에서도 상징적인 브랜드인 에르메스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적이 있다. 그때도 그는 거대한 쇼장이 아닌 그저 작은 쇼룸에서 저널리스트 몇 명에게만 컬렉션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컬렉션에 대해 직접 설명하고 옷의 안팎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르지엘라는 일관적으로 기존 시스템을 거부했다. 시스템에 편입하고 무작정 투자를 받기보다는 스스로 실험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 더 몰두했다. 장 폴 고티에 하우스에서 도제식으로 수련하며 하이패션의 정점을 경험했어도 스테레오타입을 따르지 않았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하는 일에 문제를 제기했다. 마르지엘라 스타일이었다.

마르지엘라 스타일은 본질에 대한 남다른 접근 방식에서 출발한다. 이름난 패션 브랜드는 크게 두 가지에 집중한다. 무엇을 더 보여줄까,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패션 브랜드뿐 아니라 산업을 막론하고 공통된 성공 과정일 수도 있다. 마르지엘라도 크게 두 가지에 집중하긴 한다. 다만 질문이 반대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무엇을 하지 않았을 때 뭐가 남을까.

마르지엘라의 안티 정신에는 ‘저항’이나 ‘반항’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1996년 <뉴욕타임스>는 마르지엘라를 두고 “많은 디자이너가 반항아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오직 마르지엘라만이 패션계의 유일한 반항아다”라고 썼다. 사실 세상엔 반항이 많다. B급 정서, 반항을 위한 반항, “남 하는 건 안 한다”는 말만 내뱉는 반항, 다르기만 하고 왜 다른지에 대한 당위성이 없는 반항. 그런 반항은 삐딱함에서 끝날 뿐이다.

마르지엘라의 반항에는 이유가 있다. 그의 반항은 ‘뭐가 남을까’라는 문답이다. 마르지엘라의 해체주의도 이 맥락에서 설명된다. 천 솔기나 밑단을 마무리하지 않고 드러낸다. 다트나 테일러 마킹 등 옷을 만드는 과정까지 완성본에 남겨둔다. 옷의 안감과 겉감을 반전시킨다. 해체라는 실험을 거쳐 의복의 정수가 남는다. 주류보다 더 우아하고 아름다운 마르지엘라만의 세계다.

마르지엘라 옷에는 상표를 꿰매 고정하는 네 귀퉁이의 가느다란 스티칭이 옷 밖으로 드러나 있다. 마르지엘라가 했던 수많은 실험 중 일부이자 브랜드의 상징으로 남은 요소다. 그는 베르사체, 랄프 로렌, 아르마니가 브랜드 로고로 패션계의 권력자가 되었을 때 고작 스티칭 네 개로 강력한 상징을 만들었다. 로고에 대해 아무 시도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묵비권 같은 대응으로 어떤 시도보다 큰 효과를 얻었다. 패션 큐레이터 올리비에 사이야르는 <보그>와 인터뷰하며 말했다. “마르지엘라는 아무것도 없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이는 현재 전 세계인에게 큰 위안을 주는 발상이다.”

브랜드는 상징이다. 상징은 큰 의미를 작은 요소에 제대로 담았을 때 만들어진다. 작은 요소를 큰 그릇에 담기는 쉽다. 큰 요소를 작은 그릇에 담으려면 용기와 기술이 필요하다. 마르지엘라의 반항은 큰 의미를 작은 옷에 담으려 한 시도였다. 마르지엘라는 “반항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 데도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반항에는 의미도 효과도 있었다. 많은 사람이 상표를 대신한 마르지엘라의 스티칭을 보며 로고의 역할을 되물었다. 미완성 상태에 가까운 마르지엘라의 옷을 입으며 패션의 역할을 다시 생각했다. 훌륭한 예술 작품은 감상자에게 답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준다. 마르지엘라의 ‘하지 않음’은 예술에 가까운 경지에 올랐다.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조용한 반항은 브랜드 운영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라는 브랜드의 조직을 연구실처럼 꾸렸다. 스타 디자이너 한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고 나머지 스태프가 스타 디자이너를 보좌하는 보통 디자이너 브랜드 방식과는 다르다.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철저하게 팀 체제로 일관했다. 연구실 구조를 표방한 기능 체계를 따른 결과였다.

마르지엘라의 라벨을 꿰맨 자국. 이 실밥 네 개 만으로 마르지엘라는 유사 로고를 만들어냈다.

마르지엘라는 라인업을 구분하는 방식도 다르다. 남자 옷은 10번과 14번. 14번은 상대적으로 유행을 덜 타는 옷을 말한다.

마르지엘라는 지난 시즌 옷을 다시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 옷에는 ‘리-에디션’이라는 라벨을 하나 더 붙인다.

브랜드 이름까지 마르지엘라만의 콘셉트 실험이다. 자기 이름인 마르탱 마르지엘라에 집이라는 뜻의 불어 ‘메종’을 붙인 데에도 이유가 있다. 브랜드 초기 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마르지엘라는 모든 질문에 ‘나’가 아닌 ‘우리’라는 주어로 답했다. ‘당신의 커리어 하이라이트’를 묻는 질문에 “우리를 자극하는 것이 또 다른 사람들을 자극시키는 것”, “함께 팀을 꾸리는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는 식이었다. 삶의 좌우명 역시 ‘우리’라는 한 단어로 요약한다.

마르지엘라가 말하는 ‘우리’는 전체주의나 지역주의처럼 지엽적이거나 폐쇄적인 뜻이 아니다. 그는 보편적 의미에서 의복을 연구했고, 함께 그 의복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려 했다. 그 결과 선택한 개념이 나 혹은 특정한 개인이 아닌 ‘우리’다. 칵테일파티에서 유명인이 입는 드레스보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우리’가 입을 옷을 생각한다. 그는 런웨이의 모델까지 유명 에이전시가 아닌 길거리에서 캐스팅했다. 매장 직원에게도 모두 똑같이 흰색 가운을 입혔다. 그게 마르지엘라 스타일이다.

마르지엘라에게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집착이 있다. ‘누구나’와 ‘우리’에 대한 관심이 있다. 이건 더 나아가 디자이너 개인에게 모이는 관심을 자신이 만든 의복과 제품으로 돌리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16년 동안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에서 홍보 담당 디렉터로 일한 패트릭 스칼롱은 마르지엘라식 효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르지엘라는 자극적인 뉴스가 아니라 옷 자체와 브랜드 철학에 반응해주길 바랐습니다. 자신이 갤러리의 예술가가 되기보다는 팀원들과 작업하는 일원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마르지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얼굴 없는 디자이너로 시작해 얼굴 없는 디자이너로 유명해지고 떠들썩한 작별 인사 없이 패션계를 떠났다. 2009년 그가 은퇴한 후 메종 마르지엘라는 마르탱 마르지엘라 없는 마르지엘라로 계속되고 있다.

반면 마르지엘라라는 브랜드에 대한 탐구와 그에 대한 회고는 여전히 뜨겁다. 옷의 본질에 대해 고민했던 마르지엘라의 태도, ‘반항하지 않으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다’라는 정신은 마르지엘라 브랜드와 마르지엘라가 활동한 시대를 뛰어넘어 전승된다. 지금 활약하는 디자이너들을 보면 이 사실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금 패션계에는 ‘마르지엘라 키즈’ 디자이너들이 득세하고 있다. 각종 미디어도 신예 디자이너에게서 마르지엘라의 환영을 발견했다고 전한다. 베트멍과 발렌시아가의 뎀나 즈바살리아나 앤 드뮐미스터의 세바스티앙 뮤니에르는 마르지엘라 출신 디자이너다. 마르지엘라가 시도했던 해체주의적 실험을 자기 스타일로 이어가는 젊은 디자이너도 있다. 마르지엘라 DNA는 널리 퍼져 있다. 그의 전성기보다 더 많이, 더 넓은 곳에서, 더 다채로운 모습으로.

브랜드의 성공 여부를 확장성에 둔다면 마르지엘라는 매우 합당한 사례다. 마르지엘라는 시대와 브랜드라는 프레임을 뛰어넘었고, 뭔가를 하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로 나 대신 우리를 얻었으며, 우리라는 가치는 지금까지도 증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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