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웨일스 보너가 원하는 것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앤드루 오헤이건이 주목받는 26세의 디자이너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를 만났다.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면 이미 비상시국이다. 정치인의 행보는 대체로 깨닫지 못해야 한다. 정치인은 문제가 있을 때만 도마에 오른다. 우리는 진보와 포퓰리즘은 한데 얽혀 있으며,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질서로 자리 잡았다고 배우며 자랐다.

틀렸다. 우리는 약육강식의 홉스주의적 환경에 처해 있다. 그의 주장처럼 삶은 고되고 거칠며 짧다. 정치인은 원칙을 저버리면서도 권력을 놓지 않으려 기를 쓴다. 독선적인 인간이 세련된 혁명을 일으켜놓곤 자유라 부른다. 한숨이 나온다.

패션은 참신함과 관용으로 성취 가능한 세계다. 감히 다르라고 부추긴다. 내가 패션을 사랑하는 이유다. 오늘날 세상은 병적인 거짓말쟁이들의 권모술수가 지배한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웨일스 보너와 밖을 거닐며 그녀의 발이 닿는 대지에 입 맞추기 좋은 시기다. 아름다운 손재주나 발상을 향한 애정을 찾아 나서기에도.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는 이제 고작 스물여섯 살이다. 영국인 어머니와 자메이카인 아버지 사이에 5남매 중 하나로 태어나 런던 남동부에서 자랐다. 2014년 세인트 마틴 예술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음악과 미술에서 찾은 리듬을 주제로 작업했다.

패션계는 그녀의 첫 디자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로레알 프로페셔널 탤런트 상을 받았다. 이후 보너는 자신의 표현처럼 ‘남성성을 다시 정의하고, 유럽의 하이패션을 규정하는 특권의 전형을 뒤엎었다’.

그녀는 2015년 런던 맨즈 패션 위크에서 자신이 만든 남성복 브랜드인 웨일스 보너를 처음 선보였다. 날렵하고 훤칠한 흑인 모델이 캣워크를 거니는 모습은 마치 흐느적거리는 듯한 칠흑의 성적 매력을 품고 돌아온 코코 샤넬 같았다. 할렘 르네상스의 터치가 1970년대의 ‘흑인의 정형화’ 및 영국 국립 공동주택의 감각과 어우러졌다.

패션 위크에 등장한 지 고작 3개월 만에 웨일스 보너는 빅토리아&앨버트 미술관의 ‘패션 인 모션’ 행사에도 참여했다. 반짝이는 커다란 스와로브스키 보석을 장식한 옷, 스포츠 톱, 핀스트라이프 데님이 주를 이뤘다. 거대한 동양풍의 일몰을 배경으로 그녀의 남성복 컬렉션은 다양한 형체와 아름다움을 선보이며 성과 인종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푸른색 페인트와 반짝이를 칠한 모델의 불끈 쥔 주먹은 블랙 파워를 향한 경의의 표현이었다. 모두가 그녀에게 더 많은 걸 기대했다. 2015년 11월, 보너는 브리티시 패션 어워드의 신인 남성복 디자이너 상을 받았다.

에보닉스 2015 F/W

2015년 1월 웨일스 보너가 런던 맨즈 패션 위크로 데뷔했다. 컬렉션 남성복 부문의 데뷔는 재능 있는 미래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런던의 비영리단체인 패션 이스트가 쇼케이스를 주최했다.

말릭 2016 S/S
2015년 6월, 인도의 통치자가 된 에티오피아의 노예 말릭 암바르로부터 영감을 얻은 두 번째 컬렉션. 런던 컬렉션 기간에 역시 패션 이스트의 후원 아래 선보였다.

흑인 정신 2016 F/W
2016년 1월 패션 이스트의 남성복 쇼. 웨일스 보너는 이 컬렉션을 ‘흑인 정신에 대한 명상’이라 규정했다.

에제키엘II 2017 S/S
2016년 6월, 고작 스물다섯 살에 웨일스 보너는 런던 컬렉션에서 자신의 첫 단독 쇼를 발표했다.

흑인 정신 II 2017 F/W
2017년 1월 내놓은 웨일스 보너의 가장 최근 쇼. 성, 성적 취향, 현대적 영혼과 흑인의 정체성에 대한 개념에 도전했다.

웨일스 보너의 사무실

<뉴욕 타임스>는 2017 F/W 웨일스 보너의 컬렉션을 호평했다. “웨일스 보너의 캣워크는 점차 사라지는 개념인 코즈모폴리턴 영국을 향한 서정적인 경의다.” 최근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그녀는 가장 빠르게 부상한 디자이너다. 영국에서 가장 쿨한 디자이너로서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를 향한 관심이 눈사태처럼 쏟아질 거라 예측한다.

런던 필즈에서 보낸 하루의 막바지에 웨일스 보너는 자신의 사무실을 내게 보여주며 미소 지었다. “좀 절제된 분위기죠.” 무드 보드에는 딱 한 장의 사진만이 붙어 있었다. 최근 뉴욕의 즈워너 갤러리에서 열린 한국 미술가 윤형근의 전시회에 나온 것이었다.

스크랩북, 그리고 네 명의 인물

그녀는 컴퓨터에 ‘거리의 인물’이라는 제목의 스크랩북을 만든다. 소설가나 할법한 일이다. 이 인물들은 그녀의 삶과 접점을 이루고 있다. 정치 성향, 좋아하는 스타일, 고귀함에 대한 새로운 개념에서다.

“가장 최근 컬렉션의 핵심은 인물이었어요”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하죠. 카리브 해의 흑인 남성 동포가 있고, 언제나 흰옷만 입는 영적인 인물이 있어요. 더 지적인 세 번째 인물이 있고, 마지막으로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여성적인 남성도 있죠.” 그녀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입을 만한 옷을 연출해 승화시키고픈 야망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남성에 대해 어떤 것도 가벼이 넘기지 않고 또한 편견을 품지 않음을 의미한다.

“<에스콰이어> 독자들에게는 좋은 소식이네요”라고 나는 말했다.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전 나는 보너를 테이트 모던에서 만났다. 그녀와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곳에서 만나고 싶었다.

웨일스 보너는 테이트에 참새 방문객 같은 차림으로 등장했다. 날렵하고 아름다우며, 뼈가 가늘고 눈빛은 반짝였다. 프라다 코트에 클로에 스커트 차림이었다. 그녀의 미소는 ‘당신은 재미있는 사람이군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라파엘 전파와 영국 소용돌이파, 인상파의 작품을 지나 우리는 유명한 헨리 월리스(라파엘 전파의 예술가)의 1856년 작 <채터튼의 죽음>(채터튼은 17세에 자살한 시인) 앞에 멈춰 섰다. 그림 속엔 전형적이고 젊으며 아름다운 죽은 예술가의 주변에 그의 작품이 갈가리 찢겨 놓여 있다.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에요”라고 웨일스 보너는 말했다. “아버지가 이 작품을 보여주곤 했어요. 아버지가 사랑한 작품이었죠.”

테이트 뮤지엄에선 <런던의 흑인 디아스포라, 1960~1970>가 전시 중이었다. 당시의 서아프리카와 서인도 제도 출신 사진작가 여덟 명의 작품을 모은 전시회였다. 린튼 퀘지 존슨의 시에서 발췌한 대목 ‘Stan firm inna Inglan’이 전시회 이름이었다. 상징적인 사진들이 테이트 컬렉션에 편입되는 것을 환영하는 의미다. 웨일스 보너는 지금 막 뉴욕발 비행기에서 내려 피곤했지만 사진을 보자 눈이 커졌다. 우리는 반델레 ‘텍스’ 아예툰모비가 찍은, 1950년대 남녀 한 쌍의 사진을 지나쳤다.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이 화이트채플 구역의 회원제 클럽에서 맥주를 마시는 광경이었다. “케리 제임스 마셜의 그림이 생각나네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의 그림에선 캐주얼하고 낭만적인 배경에 흑인 한 쌍이 등장하죠.”

남성복의 세계에서 재즈를 연주하다

이런 작품이 당신의 정치 성향에 영향을 미치나요?

“감정적이게 되죠”라고 보너가 말했다. “무의식적일 수도 있겠지만 특정 시대에 대한 정치적 흔적을 느껴요. 그리고 전 어떻게든 그 역사를 짊어지고 가고요. 제 작업을 위해서는 등장인물의 집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예를 들자면 평균보다 더 자기 표현이 강한 남성을 좋아해요. 말하자면 무용가나 작곡가 같은 사람들요.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도 용인되는 부류 말이에요.”

또 다른 아예툰모비의 사진에는 피아노를 치는 남성이 담겨 있었다. 예전과 같은 이스트엔드의 사교 클럽에서 찍은 사진 같았다. 남자는 온통 술을 흘리고 음악에 정신을 못 차린 듯 보였다.

“저 남자는 이미 짜놓은 뼈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재즈에 관심이 많아요. 아프리칸 폴리리듬(대조적인 리듬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고전음악에 미친 영향에 관해서요. 이미 존재하는 구조 안에서 새로운 형태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죠. 제 일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남성복이라면 남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새빌 로가 지척이고 맞춤복도 있다. 서양에는 남성의 멋에 대한 개념이 확립돼 있다. 전장과 일터, 신사의 클럽에서 적당한 옷차림까지 있지 않은가.

“맞아요”라고 그녀가 대답했다. “그 역사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죠. 하지만 그 속에서도 끼어들어 ‘설레게 만들’ 여지가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그런 전통에 기분 상하지 않는다고요?

“아뇨. 저는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만 생각합니다.”

보너의 꿈

대부분의 사진이 1970년대 것이었다. 그녀는 그 시대의 옷을 사랑한다. 에토스(기풍). 성별을 기반으로 한 실험. “그 지점에서 시작했죠.” 웨일스 보너는 콜린 존스의 사진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친가 생각이 나네요”라고 말했다. 1973~1976년에 찍은 사진은 ‘블랙 하우스’라는 연작의 일부로 이즐링턴 자치 의회가 후원한 주택 프로젝트의 삶을 기록했다. 남자들 한 무리가 각자의 차림새로 벽에 기대 늘어서 있다.

“이런 사진에 관심이 가요.” 웨일스 보너가 말했다. “아버지가 자란 스톡웰의 집이며 정원 같아요. 아주 친숙하죠. 제게 말을 거는 것 같아요.” 그녀는 가족이 정원에 모여 있는 사진을 가리켰다. “어린 시절과 매우 비슷해요. 낭만적인 기억이 떠오르네요. 이모들이 곁에서 삶의 지혜를 많이 알려줬지요. 옷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아요. 다만 입는 방식이 특별하게 만들어주죠. 사진 속 남자들처럼 각자의 스타일을 보여줄 때요. 하지만 뭐랄까, 이미 존재하는 것의 시뮬레이션 같기도 해요.”

그건 경제적 측면이다.

“맞아요. 디자인을 통해 이런 개념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싶어요. 흑인의 문화적 시각에 뿌리를 두지만 한편 다른 고급의, 또는 유럽의 브랜드와 수준을 맞추고 싶어요. 제 야망입니다. 그런 수준의 정확한 영향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디자이너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편안함, 푸근함과 더불어 제가 옷에 담고 싶은 감정이 있습니다.”

런던의 거리

작년에 웨일스 보너는 LVMH 상을 받았다. 30만 유로와 1년간 최정상 패션 기업 임원의 멘토링 기회가 주어졌다. 그녀는 행복하지만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패션 아이템이 비싸다고 인정하면서도 흑인 남자가 럭셔리를 싼값에 찾을 필요는 없다고 믿는다. 패션은 돈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백인 남성이 품질을 독점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우리는 알 반덴버그가 찍은 일련의 사진을 감상했다. 웨일스 보너의 지난 컬렉션 가운데 하나처럼 노팅힐 카니발에서 찍은 것 중심이었다. 그리고 여름을 만끽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런던의 골동품 상점가 포트벨로 로드의 사진을 골똘히 쳐다볼 때 음악이 전시실을 거의 울렸다. “음향이 거리의 공간으로 변하는 방식이 좋아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랄프 엘리슨의 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엔 주인공이 퇴거당하는 노인을 보고 갑자기 말문이 트이면서 목소리가 환경을 바꾸는 경험을 하죠.”

그래서 그런 변화를 일궈내고 싶다는 말일까?

“네, 맞아요. 지난 컬렉션은 거리의 삶과 문화를 역사의 다른 가닥과 엮는 데 주목했습니다.”

그녀는 대단히 우아하게 격식을 차려 입은 두 소녀의 사진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둘이 자매라고 생각하나요?”라고 물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그 사진 앞에 서 있었다. 런던에 사는 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노팅힐의 이미지가 주는 형제애적 즐거움을 이해할 수 있다. 진짜 런던이다. 인종적인 편집증과 닫힌 경계선, 영국독립당의 추악함에 상처 입은 풍경이 아니다. 자신의 문화와 공간을 다른 이와 공유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이다. 나는 웨일스 보너에게 그렇게 코즈모폴리턴적인 영국의 시대가 막을 내렸는지 우려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개념을 중요성 위주로 따져보아야 할 것 같아요. 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윈드러시 세대(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으로 이주한 아프리카-캐리비언 세대)로 자메이카에서 영국으로 건너왔어요. 전 런던 거리를 기리고 싶었어요.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지는 문화 충돌이 일어나는 거리를요. 제 쇼는 정치적이에요. 오래된 모순의 아름다움에 활기를 불어넣으려 시도한다는 점에서요.

패션과 정치, 패션의 정치

웨일스 보너는 패션이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걸 똑똑하고 젊은 여성이 보내는 생기 넘치며 낙천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지려 들지 않죠. 각자의 경계선에 갇혀 있는 건 물리적인 사안이라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실 사람들의 이념적 네트워크가 분명히 존재해요. 초월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에너지와 연관성을 가진, 전 세계에 퍼진 제 세대 사람들의 네크워크죠. 공동체 의식이 강할뿐더러 더 희망적이며 정직한 방법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절박함이 있는, 시간이 지나며 더 담대해질 사람들 말이에요.”

10년 뒤를 바라보다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이 패션계의 안팎,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웨일스 보너는 국가보다 그 영토를 가로지르는 국민이 더 강한, 타자성과 기회가 함께 어우러지는, 아무도 그저 단순한 하나의 존재가 아닌, 모두가 도래를 희망하는 후기 주전론(전쟁하기를 주장하는 의견이나 태도) 세계의 앞서가는 정찰병일 수도 있다. 그녀의 스튜디오로 돌아와서, 내가 떠날 채비를 하기 전에 우리는 차를 나눠 마셨다. 나는 그녀에게 10년 뒤의 목표를 물었다.

“위치가 단단한 브랜드를 갖고 싶죠. 사람들과 다각도에서 관계 맺는 브랜드요. 그걸 뒷받침해주는 튼튼한 사업 능력도 갖고 싶어요.”

그럼 메이저 브랜드에 매각할 의향도 있다는 말일까?

“메이저 브랜드로부터 배우고 싶습니다. 팔 의향은 없어요. 웨일스 보너는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강인하면서도 희망찬 기운이 그녀의 작은 체구를 감싸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계단을 함께 내려가며 희망찬 밴드 음악이 그녀의 작업실 복도에 울려 펴지는 걸 들었다. 웨일스 보너의 발소리가 내 뒤로 멀어지면서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저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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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ANDREW O’HAGAN
사진JAMIE MORGAN AT SER-LIN ASSOCI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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