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 토리노와 로보캅 사이에서

오메가 시계 공장 안에서 별생각이 다 들었다.

오메가, 시계 - 에스콰이어

오메가 빌레레 공장은 아주 깊은 산속에 있었다. 가좌역보다 작은 비엘 역에서 내려 차를 타고 한참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창밖은 이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싶을 정도로 정연했다. 소들이 뜯는 풀이 서울 고깃집의 상추보다 깨끗할 것 같았다. 차는 특징이 없어 보이는 마을로 들어서 별 특징이 없어 보이는 건물 앞에 섰다. 오메가 공장이었다. 여기서 적어도 수백만원씩 하는 시계가 1년에 수백만 개씩 만들어져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는 사실이 믿기 쉽지 않았다.

보통 공장 하면 굉음이나 진동이나 위험 시설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금속 관련 공장에서는 금속성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날카로운 소리가 전두엽까지 파고든다. 이번에 본 곳은 오메가 공장 중 조립 시설이었다. 산사처럼 조용했다. 스님이 공장 한가운데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어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21세기의 스위스 시계 옆에는 늘 장인 정신이라는 말이 붙는다. 장인이라고 하면 노구에 눈빛이 형형한 고집스러운 숙련공이 떠오른다. 장인과 장인 정신이라는 말의 어감에 첨단 시설의 자리는 없다. 실제로는 반대다. 오메가의 공장은 최상급 집진 시설과 가장 발전한 생산 방식을 갖춘 최신형 공장이었다. 공장의 미래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았다.

오메가, 시계 - 에스콰이어

“오메가의 시계 생산 과정은 5단계로 나누어집니다.” 우리를 안내해준 오메가 직원은 산속에서 오랜만에 사람을 만난 것처럼 신나 보였다. 그의 영어는 프랑스풍 콧소리가 강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곳이 T0예요. T0에서는 시계 안에 들어가는 작은 구성품을 조립합니다. T0에서 조립된 구성품이 모여 T1 단계로 넘어갑니다. T1에서 무브먼트를 조립하죠. T1 과정이 끝나고 조립이 완료된 무브먼트는 옆 건물로 넘어갑니다. 우리의 메타스(METAS) 랩에서 무브먼트 안정성 심사를 거치기 위해서입니다. 메타스 랩에서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획득한 시계는 공장으로 돌아와 T2 단계로 들어 갑니다. T2에서는 시계 케이스에 무브먼트를 장착합니다. T2 단계가 완료된 시계는 T3로 보내 브레이슬릿이나 스트랩을 장착합니다. T4에서 케이스에 넣고 포장이 완료됩니다.” 대규모 회사다운 체계적 절차다.

기계식 시계의 전통적 이미지 뒤에는 늘 나름의 혁신이 있다. 오메가는 코-액시얼 무브먼트로 오차를 줄이고 헤어스프링 소재를 새로 개발해 자성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덕분에 더 정확하고 오차가 적은 시계를 만들었다. 뛰어난 제작 기술과 더불어 서유럽의 핵심 기술은 ‘우리가 이렇게 잘 한다’는 생색과 자찬과 인증의 기술이다. 오메가는 스위스의 어느 기관보다 엄격한 스위스 계측학 연방 학회(METAS)의 기준을 따른다. 10일 동안 진행하는 여덟 가지 테스트를 거친 시계가 오메가의 ‘마스터 크로노미터’라는 칭호와 인증서를 받는다. 인증서에는 RFID 칩이 들어 있어서 깐깐한 시계 주인은 인터넷에 접속해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확인할 수도 있다.

오메가의 진짜 혁신은 생산 방식이다. 공장의 한 층 전체를 감싼 컨베이어 벨트가 있다. 그 위로 조립 중인 시계 무브먼트가 회전 초밥처럼 움직인다. 조립 과정의 무브먼트는 벨트에 실려 가다 잔가지처럼 뻗어 있는 각 조립 라인으로 배달된다. 그 앞에 앉은 오메가 직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톱니바퀴를 끼우거나 나사를 조이거나. 자기가 맡은 부분의 일이 끝나면 직원은 다시 컨베이어 벨트 위로 무브먼트를 올린다. 무브먼트는 다음 초밥 요리사, 아니 다음 직원이 기다리는 경로를 따라간다.

오메가, 시계 - 에스콰이어

현대의 기계식 시계 제작 과정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부품을 깎는 건 초정밀 CNC 기계다. 기요셰 문양, 브러싱, 폴리싱 등의 장식적 금속 표면 처리도 기계가 더 잘한다. 사람은 이제 기계와 협력한다. 기계가 무브먼트에 아주 작은 ‘OMEGA’라는 글자를 새긴다. 사람은 그 틈에 미세한 양의 페인트를 집어넣고 삐져나온 걸 닦는다. 오메가의 언론용 보도 자료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전 과정은 미세한 조정 작업을 효과적으로 정확하게 실시할 수 있게 해주는 인간과 로봇의 상호 협력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인간과 로봇의 상호 협력 과정. 21세기 스위스의 시계 장인은 <그랜 토리노>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보다는 로보캅에 더 가깝다.

시계는 기계적 정밀도가 예술적 가치의 일부로 인정받는 특이한 사치품이다. 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한 도시에 살면 누구나 오차 없이 시간을 볼 수 있지만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아직도 백화점 1층에서 비싼 시계가 팔려나간다. 장인 정신은 기계와 어떻게 맞물려야 할까. 21세기의 기계식 시계는 어떻게 첨단 기술과 스스로의 전통을 지켜야 할까. 오메가와 스위스 시계업계는 답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자신 있게 공장을 공개했을 것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이제 스위스의 고급 시계회사는 최고급 건축가에게 공장 설계를 맡긴다. 브라이틀링 공장은 알랭 포르타가, 바쉐론 콘스탄틴은 베르나르 추미가 설계했다. 오메가도 반 시게루에게 설계를 맡긴 공장과 새로운 본사 건물의 완공을 앞두고 있다. 스위스인은 깊은 산속에 웬만한 미술관보다 더 멋있는 공장을 짓고 그 안에 최고급 집진 시설을 깔아둔 후 기계와 함께 정밀한 시계를 만들다가 6시에 퇴근한다. 신기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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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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