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세계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벨루티 매장을 발견했다. 패션 위크의 쇼들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샹젤리제 벨루티 매장에선 범상치 않은 오라가 느껴졌다. 나중에 들었다. 벨루티 창업자 알레산드로 벨루티의 손녀인 올가 벨루티가 오랜 시간 직접 운영한 매장이었다. 말하자면 벨루티 파리 1호점이었다.

올가 벨루티는 벨루티 1호점 안에 작은 철문 하나를 만들었다. 누구나 바깥문을 열고 매장 안으로 들어올 순 있어도 아무나 안쪽 철문 너머의 내실까지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올가 벨루티는 매장을 찾아온 고객 중에서도 벨루티에 어울린다고 인정하는 남자에게만 안쪽 문을 열어줬다. 내실 안에선 더 특별한 벨루티를 경험할 수 있었다. 벨루티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다 해도 소용없었다. 벨루티를 가치 있게 신을 줄 알아야만 했다. 벨루티를 가질 만한 취향을 품은 남자여야만 했다. 올가 벨루티는 남자의 취향을 통찰할 줄 알았다.

벨루티 쇼는 2018 S/S 파리 패션 위크의 절정이었다. 청량한 밤하늘 아래 고풍스러운 파리 조폐공사에서 열린 벨루티 쇼엔 패션계의 거물이 모두 모였다. 쇼가 시작되기 전 파리 조폐공사의 중정에 모여 루이나 샴페인을 마시며 친분을 쌓았다. 이젠 벨루티까지 소유한 LVMH 그룹의 후계자 부부는 파리 패션계의 황태자와 황태자비였다. 문득 모자를 쓴 키 작은 여인 한 명이 눈길을 끌었다. 올가 벨루티 여사였다. 모델 출신의 황태자비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허리를 굽힌 채 올가 벨루티 여사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훤칠한 키의 훈남 황태자 앙투안 아르노도 몸을 낮춰 올가 벨루티와 눈높이를 맞췄다. 기라성 같은 패션계 거물들 사이에서도 올가 벨루티는 만만찮은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제껏 권력이 곧 취향인 세계에서 살아왔다. 기업에선 이사님의 취향이 언제나 정답이다. 회장님의 취향이 늘 최고급이다. 회장님 와인이 남자 직원들 사이에서 이목을 끌고 이사님 가방이 여직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유다. 정치에선 취향이 없는 게 정답이다. 유권자의 취향은 다양해서 종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취향 따라 비싼 시계라도 찼다간 당장 의원실로 항의 전화가 빗발치기 일쑤다. 그곳은 권력자의 취향이 절대 우위인 그런 세계였다.

설사 권력자의 취향이 촌스럽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취향의 세련됨과 촌스러움을 가르는 건 안목이 아니라 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나 경제 분야에서 취향은 조작이 가능하다. 기업은 마케팅으로 대중의 취향을 조작한다. 평생 알지도 못했던 제품을 일생 동안 갖고 싶게 만들 수도 있다. 정치인은 이미지로 국민의 신념을 뒤흔든다. 결국 자신한테 하등의 유리할 것도 없는 정당에 투표를 하게 만든다. 그곳에서 취향은 권력의 하위개념이었다.

이번 파리 패션 위크에서 들여다본 패션계는 취향이 곧 권력인 세계였다. 올가 벨루티가 파리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권능의 정체도 취향의 힘이었다. 세련됨을 알아보는 안목과 벨루티 매장의 작은 철문 하나로 카리스마를 얻었다. 벨루티 쇼의 초대장은 벨루티 매장의 안쪽 철문과도 같았다. 초대받은 자들은 아름답고 세련된 취향의 일부가 되기 위해 빠짐없이 파리 조폐공사에 모여들었다. 날씨마저 우아했던 그날 파리 조폐공사의 중정은 벨루티 1호점의 내실과 같았다.

그 시절처럼 올가 벨루티도 아르노 부부와 함께 그 자리에서 초대받은 명사들을 맞이했다. 그곳은 취향이 권력을 지배하는 세계였다. 고상한 취향 앞에선 돈도 권력도 무상했다. 박찬욱 감독이 <친절한 금자씨>에서 배우 이영애의 입을 빌려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예뻐야 돼. 무조건 예쁜 게 좋아.”

권력이 취향을 지배하는 세계는 자칫 촌스러워지기 쉽다. 촌스러운 자가 권력을 쥐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다. 정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비판은 ‘부도덕하다’는 말이다. 재계에서 가장 치욕적인 비판은 ‘무능하다’는 말이다. ‘촌스럽다’는 말은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한텐 차라리 칭찬이다. 반면에 패션계에선 가장 폭력적인 비판이다. ‘부도덕하다’와 ‘무능하다’는 적어도 뭔가 들이댈 근거가 있을 때만 말할 수 있다. ‘촌스럽다’는 다르다. 주관적 잣대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취향이 권력인 세계에는 온통 싫은 것투성이인 사람이 늘어나기 일쑤다. 자신의 취향을 숨긴 채 상대방의 취향을 비판하려면 일단 싫어하면 되기 때문이다. ‘촌스럽다’고 해버리면 그만이다. 비겁한 짓이지만 취향의 세계에서 스스로의 우아함을 지킬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술책이다. 취향이 전부인 자가 돈과 권력 앞에서 열등감을 숨기고 자신의 우아함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역시 싫어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보그> 편집장이었던 전설적인 패션 에디터 다이애나 브릴랜드는 ‘우아함은 거절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무언가를 싫어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무언가를 앞장서서 좋아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에스콰이어>는 피처 부문에선 종합지지만 패션 부문에선 전문지다. <에스콰이어>의 절반은 권력이 취향을 지배하는 세계에 있고 다른 절반은 취향이 권력인 세계에서 산다. 권력의 세계에서 <에스콰이어>가 더 세련되려면 권력자부터 촌스러워서는 안 된다. 편집장 말이다. 그동안 취향의 불모지가 주 무대였던 탓에 제법 취향 있는 남자인 척 지낼 수 있었다. <에스콰이어> 편집장으로선 부족하다. 에디터들의 앞서가는 취향 앞에선 작아지기 일쑤다. 아직 벨루티의 내실로 초대받을 만큼 완성된 남자는 못 된다. 취향의 세계에서 <에스콰이어>가 비겁해지지 않으려면 무언가 촌스럽다며 싫어하는 데에서 끝나선 안 된다. 싫어하는 데에도 근거가 필요하다. 그게 취향을 다루는 올바른 태도다. 더 나아가 무언가를 앞장서서 용감하게 좋아해야 한다. 파리 벨루티 매장에서 첼시 부츠를 하나 장만했다. 벨루티를 좋아해서였다.

편집장 신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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