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와 언론

김영란법 덕분에 내가 ‘공직자 등’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잡지가 언론이라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난 공직자도 언론인도 아니다. 그 어디에서도 언론인 대접을 받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김영란법에서만 언론인 신분으로 분류돼 있을 뿐이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내 이름을 치면 인물 정보란에 출판인으로 분류되어 있다.

며칠 전 제자 겸 후배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겠다며 전통주를 한 병 사 들고 날 찾아왔다. 취업하고 첫 월급 받은 것을 기념하여 밥 한 끼 대접하려는 의도에서였다. 하지만 이것이 서로 원하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 사제 간의 정을 나누겠다는 것이 자칫 부정 청탁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나는 그에게 도리어 점심을 사야 했고 전통주는 되돌려 보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벌어졌다. 내가 언론인에 해당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나는 30년 가까이 잡지쟁이로 살아오면서 공문서나 출입국 서류의 직업란에 언론인이라고 써본 기억이 없다. 회사원 또는 기타에 해당된다고 그동안 철석같이 믿어왔다. 하다못해 실업 급여를 신청할 때도 직업란에 해당 사항이 없어 기타로 분류되는 상황이다.

내가 서울 시내 모 대학에서 잡지 저널리즘을 강의할 때 일이다. 언론홍보학과 교수들과 회식을 하던 중 끝장토론이 벌어졌다. 발단은 나의 말 한마디였다. 저명하고 고명하신 언론학 교수들 앞에서 ‘잡지는 언론이 아니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자 교수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론적 잣대를 들이대며 잡지는 언론이라고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잡지 콘텐츠 역시 기사고 기사는 보도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언론이라는 논리였다.

나는 이에 승복할 수 없었다. 잡지는 여론 형성 능력이 거의 없을뿐더러 기능적으로도 진실에 입각한 사회 보도성 기사라기보다는 실생활에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는 비보도성 글이기 때문에 언론이라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럼 잡지는 뭐냐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잡지는 인포테인먼트(information + entertainment) 즉 지극히 개인적인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오락이라고 일갈했다. 사실 잡지를 일 년 동안 한 번도 접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게 사실이다. 잡지는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범용적 개념의 저널리즘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보도의 기능은 신속한 전달이 생명인데 한 달을 주기로 발행하는 월간지는 속보의 기능이 퇴화된 지 오래됐고 실시간 업데이트되는 인터넷과 모바일을 물리적으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주요 일간지도 온라인 미디어의 속보 경쟁에서 밀리는 마당에 잡지가 보도의 기능을 유지한 채 언론임을 표방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시대상을 반영했다고 해도 소설이나 수필이 언론일 수 없듯이 잡지도 신문의 아류가 아닌 독립된 매체로서 대접을 받아야 한다. 잡지는 신문과 방송, 인터넷과는 구별되는 독립된 매체 그 자체다.  하지만 김영란법에서 잡지와 신문이 같은 언론으로 취급되면서 많은 혼선을 빚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협찬이다. 잡지 기사는 에디터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해야 한다. 더욱이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경우 브랜드의 협찬 없이는 잡지 제작 자체가 불가능하다. 협찬을 통해 제품을 경험해보고 비교해본 후 기사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호한 법 해석 때문에 현재 시승을 위한 자동차 협찬은 완전 차단된 상태다. 에디터에게 하루 이상 자동차를 대여해줄 수 없다는 게 브랜드의 입장이다. 자동차를 하루 이상 대여하는 것도 부정 청탁에 해당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다 앞으로는 파워 블로거만 득세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블로거는 공직자 등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브랜드 협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부 파워 블로거들이 돈을 대가로 브랜드 홍보를 자처하고 나서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다간 인터넷상에 떠도는 무수히 많은 정보의 옥석을 가리기 힘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앞으로 광고인지 블로그인지 경계가 모호한 글이 인터넷상에 넘쳐날 가능성이 높다.

얼마 전 프랑스 대사관에서 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프랑스 대사가 마련한 오찬에 참석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유력 잡지사 편집장들과 인플런스들에게 특정 프랑스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난 선뜻 참석을 수락할 수 없었다. 오찬이었기 때문이다. 오찬은 식사하는 자리다. 특정 브랜드를 홍보하는 자리에서 식사를 대접 받는 것 자체만으로도 김영란법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 더욱이 대사관에서 제공하는 식사라면 어느 정도 격식을 갖췄을 텐데 몹시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업계에서는 김영란법을 위반한 첫 사례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모두들 잔뜩 몸을 사리고 있는 중이다. 아직 판례가 없기 때문에 추이를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결국 프랑스 대사관 측에 정중히 불참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찜찜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 같아 마음이 영 불편했다. 일을 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취지 자체는 부정 청탁이 없는 깨끗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인데 그로 인해 특정 업계와 종사자들이 위축되고 피해를 볼까 봐 그것이 걱정된다.

물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세부법이 현실에 맞게 합리적으로 바뀌어가겠지만 지금 내가 겪는 혼란은 빨리 정리되길 바란다.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잡지가 현실에 맞지 않게 언론으로 묶여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왕 시작된 법,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청렴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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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